화니와 가든, 송원의 추억…광주 향토백화점 흥망성쇠
광주신세계, 롯데 입점…외환위기에 역사 속으로
[편집자주] 지난 대선 이후 복합쇼핑몰이 광주의 최대 이슈 중 하나로 떠올랐다. 광주시는 복합쇼핑몰 사업계획서 접수를 공식화했고 국내 유통 빅3 중 신세계와 현대백화점 그룹이 제안서를 접수했다. 롯데도 복합쇼핑몰 입점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뉴스1은 본격적인 '복합쇼핑몰' 유통 대전을 앞두고 지역 상생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광주 유통사'를 연재한다.
(광주=뉴스1) 박준배 이수민 기자 = 광주 백화점의 역사는 '광주의 명동'으로 불리는 '패션 거리 1번지' 충장로에서 시작한다.
충장로는 1가부터 누문동 144번지까지 1093m에 이르는 도로다. 일제강점기에는 본정통(本町通)으로 불렸다. 1885년 일본 공사관이 들어서고 이른바 혼마치(本町)라는 일본인 촌이 형성되면서 붙은 이름이다.
충장로라는 명칭은 해방 이후인 1946년부터 생겼다. 충장동 출신 김덕령 장군(1567~1596)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그의 시호를 따서 이름 붙였다.
충장로 상가는 1910년 한일합방을 전후로 광주에 진출한 일본인들이 광주우편국(현 충장우체국)을 중심으로 충장로 1~2가 일대에 잡화상을 차리며 시작됐다.
1920년대에는 한국인들도 충장로에 점포를 차리기 시작했다. 이들이 문을 연 곳은 충장로 파출소 길 건너편부터 시작하는 충장로 4~5가 일대였다.
해방 이후 일본인 상점은 문을 닫았고 1950년대 후반기부터 60년대 초반까지 양동시장과 계림시장 상인들이 시내로 진출하면서 규모는 더 커졌다.
1970년대 들어 충장로 상가는 임대백화점의 초기 형태인 아케이드와 슈퍼마켓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형태로 재편됐다.
광주 최초의 정식 백화점은 1977년 6월20일 충장로 4가에 문을 연 '화니(funny)'다.
전남 나주 출신인 이연술씨가 계림동에 일성상회라는 잡화점을 운영하다 삼양 시내버스를 창립하고 화니백화점을 개점했다.
지상 6층에 매장 면적 1900평으로 당시 호남에서 가장 큰 판매점이었다.
백화점을 선망하던 광주·전남 시도민들을 끌어모으며 급격히 충장로의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1980년대부터는 연간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보이며 광주 유통업계를 선도했다.
화니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을 무렵이던 1984년 7월7일 충장로3가 호남은행 터에 '태산백화점'이 개점했다.
그러나 이미 자리 잡은 화니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태산은 1990년 호남백화점으로 재편하며 도약을 꿈꿨으나 2년 만에 장기 연체업체가 됐다.
1995년 11월 신원유통이 백화점을 인수해 '더 프라이비트'라는 의류전문 백화점으로 새출발했지만 2000년대 후반 'ZARA 광주점'으로 임차하며 사라졌다.
화니와 쌍벽을 이룬 백화점은 가든이다.
가든백화점은 1986년 3월 충장로3가(현 와이즈파크)에 문을 열었다. 주식회사 청전이 소유주로 지하 3층에 지상 7층, 대지면적 550평, 매장 면적 2200평으로 규모 면에서 화니보다 더 컸다.
가든은 당대 인기배우였던 하희라와 음정희, 이병헌 등을 모델로 내세우며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든백화점은 이후 10여 년간 화니와 함께 광주 시장을 양분했다.
향토 백화점의 막내인 송원은 1995년 3월10일 주식회사 금광기업이 광주역 앞에 개점한다.
송원은 규모와 매출에서 압도적이었다. 지하 5층, 지상 11층에 연면적 1만3000평, 매장만 8000평이었다. 주차도 1000여 대를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로 건립했다.
개점 첫해인 1995년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1500억원을 넘어섰다. 1996년 여수점과 1997년 익산점을 연달아 개점했다.
하지만 화니와 가든, 송원의 영광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95년 8월25일 광천동 광주종합버스터미널 옆에 광주신세계 백화점이 문을 열면서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광주신세계는 매장 면적 6400평으로 화니보다 3배나 컸다. 브랜드 매장도 훨씬 많았다.
여기에 당시 업계 1위였던 롯데백화점 광주점도 대인동 버스터미널 부지에 백화점 건립 허가를 따내며 대규모 공사를 시작했다.
뉴코아, 나산, 거평, 한신코아 등 대형 유통업체들도 속속 광주에 진출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면서 시장 경쟁은 치열해졌다.
가든과 화니의 매출액은 줄었고 경쟁력 제고를 위해 사업다각화를 시도한다.
1995년 매출 1460억원을 기록한 가든은 높은 수익성을 바탕으로 사업의 외연을 확장했다. 새 사업은 '아파트' 건립이었다. 운림동 수원지 일대에 주택을 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무리한 투자에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자금 압박을 받다 1998년 3월 최종 부도 처리됐다.
1998년 의류 전문 쇼핑몰 '이프유(IF U)'로 재편했으나 2010년 영업을 중단해야 했다.
광주 최초의 백화점 화니도 매출 감소와 치열한 경쟁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화니 역시 '외연 확장'이 문제였다.
화니는 부도 직전까지 본점 매장 확대와 리뉴얼, 할인매장 등으로 사업다각화를 시도했다. 본점은 인근 건물을 매입해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650평 규모의 신관을 증축했다.
남구 주월동(현 광주 남구청 부지)에 지상 9층 지하 6층, 매장 면적 1만1000평의 대형 백화점 건립을 추진했다.
광주와 전남북에 대형 슈퍼마켓을 추가로 건설하고 화니마트 지점을 늘리는 등 유통업으로 사업 확장도 시도했다. 당시 백화점과 슈퍼 외에 화니종합건설, 화니음료, 화니주택 등 7개 계열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주월점을 신축하면서 자금 압박을 받아오다 1997년 한보 사태 이후 국가신용도 하락으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게 됐고 외환위기가 불어닥치면서 어음을 막지 못해 해를 넘기지 못하고 9월에 부도 처리됐다.
본관은 1997년 부도 이후 중저가 브랜드를 판매하는 상설할인매장으로 전환했다. 일부 의류매장을 내보내고 가구점이 들어오면서 실상 명을 다했다.
본관은 2011년 철거 후 오피스텔이 됐고, 남구 신규점은 흉물로 남아 있다가 2013년에 남구청사로 리모델링했다.
송원은 대기업인 현대가 갖고있는 브랜드 협상력을 이용해 점포를 활성화하고자 1998년 6월3일 위탁 경영 제휴를 맺는다.
하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다 2013년 현대백화점과 위탁경영이 종료된 후 NC백화점 광주점으로 개점하며 송원은 막을 내렸다.
화니가 문을 닫으며 '충장로' 백화점 시대는 끝이 났고 송원이 사라지며 향토 백화점 시대는 종말을 맞았다.
향토 백화점이 사라진 광주에서는 신세계와 롯데 등 거대 자본을 앞세운 국내 대형 유통업체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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