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창수의 일본읽기]차선의 강제동원 피해배상안… 그나마 '현실적'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2023. 1. 16.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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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과거사 문제 불만은 1965년 '불완전 합의' 때문
정부, '장기적 과제' 인식해 피해자 구제 관심 가져야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서울=뉴스1)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 외교부가 지난 12일 '강제징용 해법 논의 공개토론회' 발제에서 그간 논의해온 해법을 공개했다.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이 공개한 안(案)은 작년 민관협의회에서 논의한 '제3자 변제'(중첩적 채무인수) 방식으로도 피해자 대상 변제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그 동의를 구하겠다는 게 골자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지급 주체가 되는 방안도 사실상 공식화했다.

앞서 '강제징용(동원)'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8개 항목에 포함됐다고 해 '완전히 해결된 문제'로 취급된 적이 있다. 그러나 징용 피해자들은 2000년대 초중반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및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에서 '승리'를 거두며 난제로 남게 됐다.

현재 한일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한 '불만'은 1965년의 '불완전한 합의'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은 양국이 1950년에 시작해 15년에 걸쳐 치열한 논쟁과 대립을 지속한 끝에 맺은 것이다. 당시 한국과 일본의 국력 차이를 봤을 때 한국 외교 당국자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기본조약은 몇 가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첫째, '일제 식민지 시대가 불법이냐 합법이냐'의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지 못한 채 '이미 무효'란 애매한 문구로 타협한 것이다. 그에 대한 불만이 결국 '식민지 시대는 불법이었다'는 2018년 한국 대법원의 판단으로 이어져 또다시 한일 간 대립이 시작된 것이다.

둘째, '개인 청구권'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1965년 당시 박정희 정부는 '국가보호권'을 요구, 개인 청구권에 대한 일본의 배상을 일괄적으로 받아 경제를 성장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에 불만을 가진 피해자들은 줄곧 개인 청구권이 남아 있다고 주장하며 현재까지 피나는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셋째, 한일기본조약은 식민지 시대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명문화하지 못했다. 1960년대 당시 일본엔 '역(逆)청구권'을 요구할 만큼 한국에 공헌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많았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2023.1.12/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지금도 일본엔 식민지 시대를 미화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 정치가들이 있다. 일본의 이런 태도는 한국의 감정을 건드리기 일쑤였고, 일본이 정말 식민지 시대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했는지에 대한 불신의 씨앗이 돼왔다. 이 때문에 1965년 조약에 대한 불만은 그 후에도 계속 한일 간 대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조약에 대한 불만을 보완하고 채워갔던 게 한일관계 역사였다. 현재 여야가 모두 동의하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小淵)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은 1965년 조약의 한계를 발전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일본은 이 선언에서 식민지 시대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천명했고, 한국은 전후 일본의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인정했다. 일본 여당인 자민당이 1993년 '고노(河野) 담화', 1995년 '무라야마(村山) 담화'에 이어 식민지 시대의 강제성과 피해를 인정하고 반성·사죄한 것이었다. 한일 양국 당국자들의 발언에 자주 등장하는 '과거 역사를 직시하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이후에도 한일 양국은 그 정신을 이어받아 발전시키고자 해왔지만 진통도 많이 겪었다. 한일 양국의 원칙론자들은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 등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졌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선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불만을 정치적 쟁점으로까지 비화시켰고, 이른바 '죽창가'를 앞세워 '사죄하지 않는 일본'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시절 한일관계는 더욱 더 악화됐을 뿐, 그들의 주장이 관철된 게 아니었다. 당시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불만 때문에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다. 그러나 그 결말은 한국이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제기할 수조차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일본의 역공에 문재인 정부도 2015년 합의를 "존중한다"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것이다. 그 결과, 유감스럽게도 한일관계에서 피·가해자가 역전하는 현상마저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의 역사수정주의를 정면에서 반박해 굴복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그 역풍 때문에 일본이 스스로 '피해자'라고 주장하게 만드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했다. 결국 위안부 문제는 아무런 해결 없이 원점으로 되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일부 후퇴까지 했다.

더욱이 2018년 10월부터 한일 간 외교쟁점이 된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선 문재인 정부 시절엔 '사법 판단에만 의거한다'는 미명 하에 오히려 아무런 해결의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또 대일 정책을 남북관계 카드로 이용해 일본이 한국과의 대화에조차 응하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2023.1.13/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이렇게 쌓인 정치적 부담이 현재 윤석열 정부에 지워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반일'(反日) 원칙엔 현실적 대안을 내지 못한 채 국내 정치적으로 악용된 측면이 있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왜곡된 반일 인식 때문에 한국이 외교에서 쓸데없는 비용을 치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아베 총리의 태도가 더 문제였단 것도 충분히 인정하지만, 외교를 남 탓으로 돌려 한일관계를 개선하지 못한 무능함은 지적할 수 있다.

결국 한일 간 과거사 문제 해결은 한국이 노력한다고 다 이뤄지는 게 아니라, 한국의 노력에 일본이 얼마나 성의 있는 자세를 보이는지에 달려 있다는 걸 역사가 알려주고 있다. 이번 강제징용 문제 해법은 정부가 민관협의회에서 제안된 내용을 갖고 일본과 교섭한 뒤 토론회에서 그 경과를 제시한 것이다.

피해자들 입장에서 보면 피고 기업의 기금 참여, 일본의 사죄 등이 분명하게 담겨 있지 않은 데 대해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강경하게 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원칙을 고수하는 한 피해자들이 원하는 해법을 달성하긴 어렵다.

이번 정부의 강제징용 문제 해법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차선을 택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지난 정부가 외교적으로 일본을 핑계대면서도 국내적으로 피해자 구제도 하지 않았던 걸 상기하면 이번 윤석열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노력은 평가해줘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 토론회에서 제기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다시 한 번 일본과의 교섭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강제징용 문제를 장기적 과제로 인식해 앞으로 피해자 구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번 토론회에서 제기된 '특별법' 추진도 정부가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여야 합의 하에 만드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선 여야 정치가들도 정쟁보다 국익의 관점에서 대일정책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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