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되풀이되는 헨리8세의 실패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또 올렸다. 연 3.5%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1월(4%) 이후 최고치다. 물가를 잡기 위해,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시장은 기준금리 인상이 거의 끝에 다다랐다고 보고 있지만(기대하지만) 고물가 때문에 언제든지 '매파'가 득세할 수 있다.
한은은 홈페이지에 "기준금리는 (중략) 장단기 시장금리와 예금 및 대출금리 등의 변동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실물경제 활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명시했다. 대체적으로 기준금리를 높이면 대출금리도 상승한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멈추지 않는 이상 대출금리도 오른다는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대출금리가 한없이 높아질 순 없다. 법정최고금리 때문이다.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에 따라 대출금리는 연 20%를 넘을 수 없다. 돈 있는 금융회사와 부자들의 폭리를 막고 돈이 필요한 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다.
금리 하락기에는 최고금리 부작용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금리 상승기엔 부작용이 커진다.
가장 큰 부작용은 서민들이 제도권 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수 없다는 점이다. 대출금리는 조달금리에 리스크비용 등을 더해 산출된다. 금리 상승기에는 조달금리가 오를 뿐만 아니라 리스크비용도 상승한다. 금리가 높아지면 갚을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도 더 많아져서다. 금융회사 대출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더 많이 오르는 이유다.
그나마 고신용자는 금융회사가 감당할 만하다. 반면 신용점수가 낮은 서민들에게 금융회사가 돈을 내주기 위해선 예전보다 많은 리스크를 져야 한다. 리스크는 대출금리에 반영되고 대출금리가 연 20%를 넘어가는 저신용자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연 25%의 이자를 받으면 돈을 내줄 수 있지만 최고금리 때문에 불가능하다. 실제로 대부업체를 비롯해 일부 2금융권이 저신용자 대출을 중단하고 담보대출만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돈이 필요한 서민들은 불법사금융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서민들은 불법사금융을 이용할 때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법을 어기는 위험 때문이다. 최고금리가 없을 때 제도권 금융권에서 연 25%에 돈을 빌릴 수 있었다면 불법사금융업자로부터는 연 30% 이상의 높은 금리에 돈을 빌려야 하는 셈이다.
금융이 경제 혈류라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부작용 중 하나다. 서민에게 돈을 빌려주지 못하는 것은 대표적인 예다. 최고금리에 발목이 잡혀 경제활동 곳곳에 돈을 보내지 못할 수 있다. 시장금리가 급변동하는 등 일시적인 이유로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금리가 20%를 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해당 부동산개발사업이 사업성이 우수하다고 판단한 금융회사가 대출을 내주고 싶어도 최고금리 때문에 돈을 빌려주지 못하면 유망한 부동산 개발사업이 좌초될 수 있다. 결국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지난해 수많은 부동산 PF 관련 ABCP(자산유동화 기업어음) 유통금리가 20%를 넘은 적이 있다. 스타트업을 비롯한 수많은 위험 사업에 대출은 거의 없고 '투자'만 있는 것도 최고금리 때문이다.
금융회사 자율성도 떨어진다. 어떤 금융회사는 리스크를 안고서도 특정 기업과 사업에 대출을 해주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최고금리가 가로막고 있으면 해당 금융회사의 자유는 사라진다. 최고금리 아래에서 모든 금융회사가 비슷한 기업과 사업에만 대출해준다. 대한민국에 하나의 금융회사만 있는 꼴이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 고전인 '국부론'에 "헨리 8세의 제37년(1545년)에 10%를 초과하는 모든 이자는 불법이라고 선포됐다. (중략) 그러나 이 금지령은 같은 종류의 다른 모든 금지령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과도 없었으며, 고리대의 악을 감소시키기보다 오히려 증가시켰다고 한다"라고 적었다.
최고금리의 순기능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순기능보다는 부작용을 더 생각할 때다.
이학렬 금융부장 tootsi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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