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맞이 여행] 고택마다 서린 문향…‘인의예지’를 거닐다
기와집부터 초가까지 실존하는 옛선비 집 재현
사대부 권위 엿보여…한옥·전통문화 체험가능
바로 옆엔 세계문화유산 지정된 소수서원 위치
코로나19가 마침내 엔데믹(풍토병화)으로 접어들면서 올 설에는 만남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때 온 가족이 함께 한옥마을을 찾아 휴식을 취하는 건 어떨까. 화려한 호텔에서 머물러도 좋지만 수수한 전통 한옥에서 멋과 쉼을 느끼는 것도 좋은 선택일 테다. 양반의 고장인 경북 영주에서 한옥 체험에 제격인 선비촌을 찾았다.
◆고택을 그대로 옮긴 힐링 마을=높은 산, 새파란 하늘, 얇게 언 얼음 사이로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한겨울의 정적을 깨는 고즈넉한 마을. 순흥면 청구리에 있는 5만6000㎡(1만7000평) 규모의 선비촌은 고색창연(古色蒼然)한 한폭의 그림 같다.
선비촌은 관 주도로 2004년에 설립한 한옥마을이다. 죽계천 옆으로 사극에서만 보던 고래 등 같은 기와집과 단정한 초가 여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재미있는 건 선비촌 가옥은 모두 영주에 실존하는 집을 재현했다는 점이다. 각 집 앞엔 해당 가옥에 대한 설명과 주소가 쓰여 있는데, 실제 그 주소를 방문하면 똑같은 집을 만날 수 있다.
집은 영주에 살았던 선비들 행적에 따라 나뉜다. ▲스스로 갈고닦은 후 여러 사람을 이끈 지도자의 집은 수신제가(修身齊家) ▲중앙에 진출한 명망 있는 선비들 집은 입신양명(立身揚名) ▲본인의 편안함을 꾀하기보다 잘못된 건 날카롭게 비판하며 충언했던 선비들 집은 거무구안(居無求安)으로 분류했다. 집 규모나 대문 모양으로도 당대 사대부의 권위가 엿보인다. 높게 올린 솟을대문이나 말을 타고 내릴 때 디딤판으로 썼던 노둣돌이 그렇다.
선비촌에선 한옥 체험도 할 수 있다. 김문기 가옥, 김상진 가옥, 김세기 가옥, 만죽재 고택은 현대화 시설이 마련돼 편하게 이용 가능하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전통 그대로 체험하고 싶다면 두암 고택, 인동 장씨 종택, 해우당 고택을 추천한다. 대청마루에 앉아 햇볕을 쬐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기준 인원은 2∼4명이며, 가격도 1박당 5만∼12만원선이다.
주말엔 저잣거리에서 약선차 만들기, 염색 공예, 노리개 만들기 등 다양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 좋다.
김숙휘 문화관광해설사는 “영주가 선비의 고장이라 쉼뿐만 아니라 인성교육을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가족이 많다”며 “선비촌을 구경하고 머물며 인의예지(仁義禮智) 가치를 재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수서원·부석사·무섬마을…볼거리 가득=영주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많다. 선비촌 바로 옆엔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있다.
이 서원은 풍기 군수 주세붕이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곳이다.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하라’는 뜻의 ‘소수’라는 이름은 퇴계 이황이 풍기 군수를 역임했을 때 받았다. 이후 퇴계 이황 제자 4000명이 이곳에서 배출되며 명실공히 조선을 대표하는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국보인 안향 초상, 보물인 주세붕 초상, 문성공묘, 강학당 등이 있으며, 서원 자체도 깊은 문풍(文風)이 느껴진다.
선비촌에서 차로 17분 정도 가면 무량수전으로 유명한 부석사가 나온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이 창건한 절로,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무량수전은 앞면 5칸, 옆면 3칸 건물로 주심포식 팔각지붕에 배흘림기둥 구조이다. 배흘림기둥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기둥이 굵어졌다 가늘어지는 모양을 하고 있다. 또 부석사에선 아미타여래 좌상, 삼층석탑 등 유서 깊은 문화재를 볼 수 있다. 봄에는 꽃이 피어 더욱더 장관이다.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무섬마을도 빼놓을 수 없는 힐링코스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휘돌아 흐르는 곳에 있는 무섬마을은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의 집성촌이다. 전통 가옥이 38채 있고, 100년 넘은 사대부 가옥도 16채나 있다. 선비촌에 재현한 김규진 가옥, 해우당 고택 등이 무섬마을에 있다. 이 마을에 가려면 야트막한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
영주=박준하 기자, 사진=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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