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도 놓치고" 송해·김신영과 눈물 젖은 '중꺾마' 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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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9월에 돌아가셨는데 제가 제사를 거의 못 드렸어요."
바람이 매서운 겨울엔 야외에서 '전국노래자랑' 녹화를 할 수 없어 9, 10월에 촬영이 몰려 제사를 못 챙기기 일쑤였다.
"송해 선생님과 지방 촬영 때 목욕탕 가서 씻고 나와 엄청 맛있게 먹었던 팥빙수가 생각나네요." KBS에서 20여 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지만 '전국노래자랑' 제작진 중에선 막내라는 고세준 PD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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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댕" 실로폰 2,000번, 원고지에 쓴 6만여 장의 대본
2017년 송해 1년간 링거 투혼도...'출근 1등'은 김신영
"과거에만 머물 수 없어, 유산 지키며 천천히 변화"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9월에 돌아가셨는데 제가 제사를 거의 못 드렸어요."
신재동 KBS1 '전국노래자랑' 악단장은 9월만 되면 가슴 한쪽이 저리다. 그가 '전국노래자랑'에서 연주를 시작한 건 1992년. 차에 악기를 싣고 전국을 누빌 때 신 단장의 부모는 눈을 감았다. 그 이후 제사는 그의 아들이 대부분 챙겼다. 바람이 매서운 겨울엔 야외에서 '전국노래자랑' 녹화를 할 수 없어 9, 10월에 촬영이 몰려 제사를 못 챙기기 일쑤였다. 그보다 1년 앞서 1991년부터 '전국노래자랑'에 합류한 정한욱 작가는 "추석이나 설 연휴에 생방송을 한 적도 있었는데 지방을 내려가면 3, 4일을 머물러 명절을 집에서 못 지냈다"고 했다.
'전국노래자랑'를 향한 박수 소리가 늘수록 두 사람의 일상엔 금이 갔다. 어떻게 버텼을까. 새해 첫날인 1월 1일 방송된 제주도 편 촬영장에서 정 작가는 방청객에게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절절하게 감사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더라고요." 이런 마음들을 받아 정 작가는 32년 동안 '전국노래자랑' 대본을 쓰고, 신 단장은 31년째 악보를 채웠다. 두 사람의 '꺾이지 않는 마음'이 쌓은 역사가 '전국노래자랑'이었다.
그 '전국노래자랑'이 최근 2,000회를 맞았다. 1980년 11월 9일 "딩동댕" 실로폰 소리가 처음 울려 퍼진 뒤 42년. "송해 선생님과 지방 촬영 때 목욕탕 가서 씻고 나와 엄청 맛있게 먹었던 팥빙수가 생각나네요." KBS에서 20여 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지만 '전국노래자랑' 제작진 중에선 막내라는 고세준 PD의 말이었다.
다음은 서울 여의도 KBS에서 만난 세 사람이 들려준 '전국노래자랑' 32년의 얘기들이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송해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일요일의 막내딸' 김신영과 함께 한 '중꺾마'의 시간들이다.
-시민에게서 받은 어떤 편지가 가장 기억에 남나.
"미국 촬영 때 받은 두 장의 편지다. 열어보니 10달러 열 장이 들어 있었다. 편지엔 '마음에 드는 옷 사 입으시라'고 적혀 있었고. 어린아이가 나오면 송해 선생님이 종종 만 원씩 용돈을 줬다. 주머니에 현금이 없으면 나를 불러 대신 용돈을 줬는데 그거 보고 그분이 내게 용돈을 준 거다. 안쓰러웠나 보다, 하하하."(신 단장)
-집 밖에서 쌓인 역사가 많겠다.
"녹화 끝나고 이동할 때 절경을 만나면 송 선생님이 '잠깐 차 세우자'고 하신다. 문경 산골짜기를 지날 때 노을이 좋은데 그때 도랑에 자리 잡고 소주 한잔하면서 악기 연주하고 그랬다. 버스에 양념통, 프라이팬 다 갖고 다녔으니까. 그런 낭만들이 마음속에 덩어리째 남아 있다."(신 단장)
"출장을 길게는 59박 60일 갔다. 집에서 반소매 입고 나왔다가 긴팔 입고 들어갔다. 예심도 준비해야 하니 본녹화 사흘 전엔 지방에 내려가야 하니까. 두 달 동안 밖에서 일하다 얼굴 새까맣게 타서 집에 가면 애들이 '이상한 아저씨 왔다'며 울고불고 난리였고, 하하하. 보람 없으면 이 일 못 했다."(정 작가)
-'금기의 땅'도 밟았다.
"2016년 송 선생님이 다큐멘터리 촬영차 두만강에 갔다. 배를 타고 한 바퀴를 도는데 송 선생님이 갑자기 주저앉아 '어머니!' 하고 통곡하더라.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전국노래자랑' 평양 공연(2003) 때도 일주일 동안 북한에 머물렀는데 고향 땅(황해도 재령) 한 번 못 밟아 안타까워하셨고."(정 작가)
"'전국노래자랑 세계대회'(2016) 때 러시아 사할린 망향의 언덕을 갔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에서 강제 노역하던 동포들이 광복 후 귀국하지 못하고 버려져 그 한이 서린 곳이다. 언덕에서 내가 기타를 치고 선생님이 몇 곡을 부르는데 펑펑 우시더라. 그 슬픈 역사에서 자란 사할린 동포 2, 3세들을 만나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고."(신 단장)
-대본을 원고지에 쓴다고 들었다.
"송 선생님 보기 편하라고 쓰기 시작했다. 편당 200자 원고지 50매씩 1년에 52주, 송 선생님과 25년여 했으니까 쓴 게 몇 장(약 6만 장)이나 되려나... 그 원고지도 인쇄소에서 직접 제작했다. 옛날엔 문방구 가면 쉽게 구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살 데가 없더라. 선생님 돌아가신 뒤엔 원고지 안 쓴다. 컴퓨터로 타이핑해 김신영한테 준다."(정 작가)
-위기도 많았을 텐데.
"2017년쯤인가 송 선생님 건강이 안 좋으셨다. 녹화 전 병원 가서 먼저 링거 맞고 무대에 올랐다. 근 1년을 그랬다. 말 그대로 링거 투혼이었다."(신 단장)
-그렇게 함께 버틴 송해가 이제 없다.
"코로나 19로 2년여 동안 야외 녹화를 못 하다 재개한 지 얼마 안 돼 송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선생님 발인 날 녹화였는데 눈물이 나더라. 그 감정 누르고 현장 지키는 게 정말 힘들었다. 사실 송 선생님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음악 프로그램 최고령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것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었다. '이제 다시 현장 나가셔야죠?' 했더니 나를 불러 '한욱아, 나 이제 방송 더 못 해' 하셨다.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정 작가)
"송 선생님이랑 했던 첫 녹화가 기억난다. 송 선생님께 '출연자랑 이런저런 말씀하셨는데 이런 부분은 좋았고 이런 부분은 좀 개선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 온, 그것도 막내 연출이 겁도 없이. 나중에 술자리에서 송 선생님이 'PD가 나한테 와서 그런 얘기해줘 정말 좋았다'고 하신 게 생각난다."(고 PD)
-김신영이 들어온 지 석 달이 지났다.
-"인간적이다. 엄마 출연자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서너 살 된 딸이 무대 옆에 앉아 있었는데 그때 김신영이 손바닥을 아이 머리 위에 올려 뜨거운 볕을 가려줬다. 악단과 진행자 자리에 차양막(파라솔)도 치려 했는데 거절했고. 시민들 다 볕 아래 구경하는데 혼자 파라솔 펴고 있을 수 없다고. 송 선생님도 KBS에서 따로 차를 내준다고 했는데 '버스로 스태프들이랑 같이 가겠다'고 한사코 고사했다. 그 생각이 나더라."(신 단장)
"'전국노래자랑'에 전념하는 게 보인다. 녹화장에 제작진들이 오전 8시 30분에서 9시에 도착하는데 가보면 김신영이 미리 와 있다. 녹화 전에 대본이랑 큐시트(진행표) 주면 노래 제목 한 글자만 틀려도 '이거 이 제목 아닌가요?라고 꼭 물어본다. 연말결산 녹화에 앞서 20년치 방송을 다 찾아봤다더라."(정 작가)
-20·30대가 찾는다. 변화가 어색한 시청자도 있고.
"예선 현장이 바뀌었다. 옛날에는 지방 가면 60·70대나 아예 어린 친구들만 왔는데 이제 20·30대가 많이 온다. 물론 송 선생님과의 추억을 잊지 못하신 분도 있고, 아직은 김신영이 마음에 쏙 들지 않는 분도 있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변화는 필요하다. 다만, 천천히 전통을 지키면서 가려 한다."(정 작가)
"김신영 첫 방송 때 양희은 선배님을 모신 것도 그런 이유다. 큰 어른이 김신영의 '전국노래자랑' 시작을 함께하면 시청자께서도 마음의 문을 열어 김신영에게도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전국노래자랑'은 유산을 지키고 이어갈 거다. 네 명의 PD 중 막내인 나만 변화를 고민하면서, 하하하."(고 PD)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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