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적 가치 상실로 한국 사회 사실상 내전 상태" [상실에서 회복으로]
'갈라치기' 편승하는 정치권도 문제
편집자주
한국 사회가 3년의 팬데믹을 거치는 동안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오피니언 리더 100명에게 물었습니다. 이들의 성찰과 제언을 통해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길을 찾아봅니다.
"만인에 의한 투쟁의 시대라 할 만큼 사회 구성원들의 적대감이 높아졌다. 정치적 진영의 적대, 경제적 계급 간·세대 간·젠더 간 적대 등이 훨씬 심화했다. 한국 사회는 사실상 정치적 내전 상태다."
이주엽 JNH뮤직 대표가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한국 사회가 사회적 연대와 신뢰, 관용 등 공동체적 가치를 잃어버리자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노골화했다는 것은 그의 우려만은 아니다. 지역별·성별·이념 간 갈등에다 경제적·사회적 격차가 더 확대돼 집단적 편가르기와 적대감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것은 대다수가 느끼는 위기감의 실체다.
한국일보가 각계 전문가, 칼럼니스트 등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상당수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단절과 고립이 심화하면서 서로에 대한 관용과 이해, 소통 대신 불신과 적대가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이주엽 대표는 "지금 한국은 보편적 합의의 영역이 매우 좁은, 사회 구성원들이 정신적·감정적으로 날이 서 있는 '피로 사회'"라고 표현했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도 "집단적으로 모두가 곤두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번 조사에서 공감 능력 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으나 김 교수는 "'공감'이라는 말조차 자기 편만을 향하는 것처럼 오염됐다"고 우려했다.
전염병 확산을 막는 것이 우선 과제였던 팬데믹 기간에도 예외는 없었다. 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코로나 확산의 책임에 대해서도 진영 논리에 따라 잘잘못을 가리려는 분위기가 퍼져 서로 믿지 못하는 신뢰의 위기가 발생했다"고 돌아봤다.
팬데믹 기간 더욱 높아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의존도도 구성원 사이의 단절을 심화시켰다. 특히 SNS는 각자의 편견과 선입견을 더 공고하게 만들었다. 공론장은 사라지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현상이 보편화됐다는 것이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만 제공하고 온라인 커뮤니티는 비슷한 사람끼리만 모여 확증편향을 강화한다”면서 “’나와 다른 타인’과 마주할 기회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보는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내 편'과 '네 편'을 더욱 노골적으로 나누게 됐다는 얘기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도 “보고 싶은 뉴스만 SNS로 취사선택하는 일상이 흑백 논리를 심화시키고 있다”면서 “진짜와 가짜 뉴스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문화”라고 우려했다.
확증편향에 편승하는 정치권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 대신 '갈라치기' 화법으로 교묘하게 편 가르기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양극화와 함께 모든 것이 진영화되고 있는데 그 수장은 정치인"이라면서 "자기 편의 흠은 눈감고 상대에게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공동체 의식이 더욱 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주엽 대표는 "정치인들부터 상대 진영을 전인적으로 부정하는 '악마화'를 중단하고 극성 유튜버들이 내뱉을 법한 조롱과 비아냥의 언어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극단적 양극화 그 이후다. '내 편'과 '네 편'이 공고해지면 위기 상황에서 해법을 찾는 대신 위기의 책임을 상대에 떠넘기는 데만 골몰할 수밖에 없다. 김형배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은 “사회적 결속력이 점점 약화돼 분열과 갈등의 사회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가 위기와 맞닥뜨릴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만드는 아킬레스건이 될까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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