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중무장한 테러범을 선량한 나그네로 오인한 文정부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역사학 2023. 1. 1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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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8일 북한이 발사한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장면./조선중앙TV 뉴시스

“북한 선의(善意)에 의존하는 대북 정책은 실패했고 일방적 유화 정책은 우리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 지난 11일 외교부가 낸 공식 입장이다. 쌀로 밥을 짓고, 물로 차를 달인다는 말만큼 옳은 소리다. 이토록 당연한 외교의 기본 원칙을 천명하기가 왜 그토록 힘들었는가?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신의를 얻으려면 장시간, 꾸준히, 투명하고 성실하게 보편 가치를 선양하고, 국제 규약을 존중하고, 쌍방의 협약을 엄수해야 한다. 북한은 대놓고 보편 가치를 짓밟고, 예사로 국제 규약을 조롱하고, 멋대로 쌍방의 협약을 무시하는 불량 국가다. 지난 70여 년 경험으로 전 세계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북한 정권이 자행해온 만행과 범죄 사례는 무수하다. 인권유린, 정치 학살, 군사 테러, 마약 밀매, 사이버 테러 등 여러 항목으로 분류해야 할 지경이다. 오늘날 북한은 스탈린식 공포 통치, 히틀러식 인종주의, 마오쩌둥식 인격 숭배를 합쳐 놓은 전체주의 세습 전제정이다.

그런 북한 정권의 선의를 누가 믿을 수 있나? 그 누가 북한 정권에 소액이라도 선뜻 투자하겠는가? 김대중 정권은 대체 무엇을 믿고 북한 정권에 4억5000만달러를 몰래 건네주고 국제사회를 향해 “북한은 핵 개발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장담했는가?

돌아보면 ‘햇볕 정책’을 따 온 우화 속에 답이 있다. 해와 바람이 길 가는 나그네의 망토 벗기기 내기를 했는데, 강풍에는 망토를 안 놓치던 나그네가 햇빛을 받자 그늘에 앉아서 스스로 외투를 벗더라는 이야기다. 상식에 맞는 지혜의 말씀이지만, 햇볕 정책의 패착은 북한 정권이 길 가는 평범한 나그네가 아니라는 데 있다. 북한 정권은 망토를 벗으면 살상 무기와 험한 흉터가 드러날까 두려워 강한 햇볕 아래서도 망토를 못 벗는 중무장한 테러범과 같다.

중무장한 테러범을 선량한 나그네라 오인했기에 햇볕 정책을 신봉한 지난 정권은 북한의 선의만 믿고 김정은에게 끌려다니다 약점 잡힌 듯 “삶은 소 대가리”란 욕설까지 들어야만 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어떻게 테러범과 나그네를 구별조차 할 수 없었나?

지난 정권이 “우리 민족끼리”의 환상에 빠져 있었던 까닭이다. 남·북한 정권이 공동으로 발표한 6·15 공동선언(2000년), 10·4 선언(2007년)에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북한식 표현이 등장한다. 판문점 선언(2018년)도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 원칙”을 운운한다. 김정은의 표현대로 서로 “갈라서 살 수 없는 한 혈육이며, 그 어느 이웃에도 비길 수 없는 동족”이라 여겼나? 그랬다면 진정 이념, 체제, 사상, 가치가 전혀 다른데도 고작 피부색과 언어가 같다는 이유로 북한의 선의를 믿었다는 얘기다.

이 시대에 “우리 게르만 민족끼리” “우리 유대 민족끼리” “우리 앵글로색슨 민족끼리” “우리 라틴 민족끼리” 같은 구호가 나온다면, 국제사회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 민족끼리”는 그만큼 촌스럽고 퉁명스러운 구시대적 종족주의의 발상이다. 세계사적 견지에서 민족의 시대는 종말을 고한 지 이미 오래다. 참혹한 세계대전을 두 번 겪고 대륙적 통합으로 나아가는 유럽연합의 출현은 일례에 불과하다. 숱한 문제가 터지지만 21세기 현재 글로벌 세계 체제는 여전히 견고하다.

인류 사회는 배타적 민족의 굴레를 버리고 다인종, 다민족, 다언어, 다종교, 다원론의 초국가적 통합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 지구적 확산과 교류, 접변과 혼융이야말로 이 시대 인류의 가치다. 이미 대한민국은 전 세계 195국 중 191국을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는 열린 나라가 아닌가? 전 세계 모든 나라와 선린 관계를 이뤘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적 번영, 문화적 창달, 외교적 자주가 실현되었다.

작금 상황은 핵무장한 김씨 왕조가 남북한 8000만을 볼모로 잡은 한 판 인질극이다. 인질범이 외치는 “우리 민족끼리”는 민족 자멸의 구호일 뿐이다. 남북문제는 민족문제가 아니라 핵무장한 불량 정권을 다루는 인류 공동의 문제다. “우리 민족끼리”의 환상을 버려야만 망토를 벗지 않는 테러범의 실체가 보인다. 범인류적 시각에서 국제 공조를 강화하고 상호주의 원칙대로 북한의 도발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대북 정책의 기본 강령은 간명하다. 북한의 선의를 믿지 말고, 테러 정권의 실체를 직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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