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14년째 연봉 묶인 교수들
지난달 서울의 S대학 J 교수 정년퇴임식에 참석했다. 행사를 보면서 부러웠다. 150명쯤 될까, 동료 교수와 제자들이 함께 자리했다. 지인과 동료들이 그와의 추억을 회고하고 지나간 세월을 담은 사진들이 열람됐다. 본인도 인생 역정을 펼쳐놨다. 편안하게 인생을 되돌아보는 만족한 얼굴을 보면서 참 좋은 직업을 누렸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교수는 선망의 직업이다. 강의와 연구만 제대로 하면 간섭이 없다. 출퇴근 따지는 사람 없고, 방학·안식년 있고, 좋아하는 공부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사회적 지위도 남부러울 게 없다. 자기 관리 잘하고 인정을 받으면 고위직에 발탁될 수 있다. 혼자만의 공간을 가진 것도 장점이다. 몇 년 전 J 교수 연구실을 가봤는데 아담한 진공관 앰프에서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요즘 대학 분위기는 좀 달라졌다. 서울의 K대학 R 교수에게 들었다. 학부생 한 학년이 70명인데 외국인 학생 수는 80명이라고 했다. 대부분 중국 학생이라고 했다. 대학 측이 정원 규제를 받지 않는 외국 학생 유치에 열심이라는 것이다. 2009년 이후 14년째 등록금이 동결된 탓이 크다. 외국 학생 등록금으로 겨우겨우 학교를 유지하고 있다. 교수 급여는 당연히 올릴 수 없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오르고 있으니 월급이 깎이는 셈이다.
▶학위 따느라 5년 이상 사회 진입이 늦은데도 교수 초봉은 요즘 은행, 대기업과 겨우 비슷하거나 되레 밀린다고 한다. 아이 교육비까지 대려면 허덕댈 수밖에 없다. 지방대 교수 연봉이 중고교 교사보다 못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급여가 비교적 세다는 서울의 다른 K대 H 교수는 “과 후배 교수 두 명이 거의 원룸 수준에서 사는 걸 보고 놀랐다”고 했다. 다른 직종에서 14년간 월급이 동결됐다면 무슨 일이 나도 났을 것이다. 그러나 집단 항의라도 했다가는 여론에 두들겨 맞을 것이다. 그러니 외국 학생 뽑게 된다.
▶지방대들은 임계점을 지난 지 한참이다. 실험 기자재 살 돈은 고사하고 승강기와 냉·난방기 돌릴 여유도 없다. 2019년 기준 대학생 1명에게 투입되는 연간 공교육비가 1626만원이었다(OECD 통계). 초등학생(1922만원)보다 적고, 중·고교생(2461만원)의 3분의 2밖에 안 된다. 정부가 초·중고생에게 돌아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작년 76조원) 가운데 3조원을 대학에 지원하려 했는데 교육감과 야당의 반대가 심해 1조5000억원으로 줄였다. 대학이 쓰러지고 나면 나라는 버틸까.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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