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호 칼럼] 선거제도 개혁, 반성과 열정들

기자 2023. 1. 1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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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 의지가 알려졌다. 국회 또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등을 통해 지속적인 논의를 진행해 왔고, 국회의장은 최근 헌법개정·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선거법과 개헌논의를 동시에 진행할 의지를 보여주었다. 바야흐로 우리 정치시스템의 제도개혁에 대한 논의에 본격적인 불씨가 댕겨진 것이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 지면에 지난 1년 동안 지속적으로 우리 정치의 제도적 문제들과 관련된 논의를 꾸준히 진행해 왔지만, 2023년이 시작되는 오늘, 우리 정치는 적어도 여야,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다음과 같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우리의 현 정치는 건강하지 않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첫 단추는 제도를 바꾸는 일이라는 점, 그리고 그 제도 개혁의 첫 입구는 선거법 개정이라는 것. 적어도 우리 정치가 그 일에 나설 준비가 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것은 새해 벽두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소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우려들 또한 반드시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선거법 개정 논의에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 자명하다. 이해 당사자인 의원과 정당의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갈등이 병존할 것이며, 구체적인 디테일에서 동의와 타협을 구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의원 개인과 정당의 생사(生死)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반 법안도 제대로 합의하고 통과시키지 못하는 현재의 국회에서 과연 개정 선거법을 제 시간에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라는 크나큰 문제는 차치하고 말이다.

본지면에서 주장한 바처럼(“국회의 셀프개혁이 가능하려면”, 2022년 10월24일자), 한 가지 방안은 선거법 등의 정치관계법은 이해 당사자인 의원들이 직접 발의,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위원회에 위임한 후, 제안된 법안에 대한 찬반 표결권만 주자는 것이다. 우리 선거법에 이미 존재하는 선거구획정위원회를 통한 위임이 그렇게 진행되는 선례가 있으니, 그 방식을 선거법이나 정치관계법 전반으로 확대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도 누군가에 의해 법안으로 쓰여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것이므로,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포기” 없이는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선거구제 개혁의 방향에 대해서 다들 동상이몽인 것도 매우 우려스럽다. 왜냐하면 “중대 선거구제”라는 말속에 포함할 수 있는 선거제도는 너무나 많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 지방선거 기초의원선거에서 보았던 것처럼, 수도권 2인 선거구에서 양당이 1명씩만 공천하여 무투표로 동반당선된 의석이 약 180석에 달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2인 선거구는 “양당 공생 대립체제”를 오히려 공고화시킬 수 있는 제도인 것 같다. 반대의 극단인 가장 “큰” 대선거구제는 전국이 1개의 선거구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이나 네덜란드에서 볼 수 있는 제도인데, 그렇게 되면 지역구가 없어지는 형국이 되며 마치 현행 비례대표제처럼 정당이 명부를 작성할 권한을 가지게 될 것이고, 대중적 지지나 이해를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아마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사이 어디쯤일 텐데, 예컨대 3인 선거구가 적정한지 30인 선거구가 적정한지는 지속적으로 논의해 봐야겠지만, 우리의 일상적 정치적 공동체의 단위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더 어려운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문제들을 토의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 선거법이 규정하고 있는바, ‘국회의원지역구’를 선거 1년 전까지 확정해야 하니(24조의2), 이제 석 달도 채 시간이 남지 않은 것이다. 예컨대 국회의원 정수에서 시작해서 지역구-비례대표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소선거구제를 어떻게 바꿀지를 먼저 결정해야 ‘국회의원 지역구’를 확정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논의의 진행이 매우 시급한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는, 우리 정치의 문제들을 어떤 제도적 디자인들과 맞물려 풀어갈 것이며, 어떤 새로운 정치를 우리가 탄생시킬 것인지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과 노력이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정치가 “건강하지 않다”는 진단보다 더 심도 있는 진단이 필요하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정치의 어떤 문제들이 한국정치의 고질적 문제들인 영호남 지역주의와 도농, 수도권-지방, 세대 간, 이념 간, 계층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정치적 양극화라는 전면적 대립으로 악화시켰는지를 되새겨보는 반성과 열정이 필요할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 논의는 그 첫발일 따름이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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