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오늘은 이렇게 지나지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가 끝나간다. 지난해 11월24일 활동을 시작한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현장조사와 기관보고, 청문회에 이어 공청회까지 마쳤다. 하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절규는 여전히 허공을 맴돌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다. 이번 국조가 형식적으로 끝날 것이라는 것은. 국회 특위 위원들은 나름 열심히 했겠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여당과 행정부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애초에 진실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역시나 밝혀진 것은 없다.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실망도 안 했다.
대통령은 그닥 관심이 없어 보였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이번 국조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당부를 남겼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대통령실은 줄곧 정치적 부담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의중을 간파한 여당과 행정부는 딱 그 수준으로 움직였다. 국조를 여는 것 자체가 대단한 선심을 쓰는 양했다. 내 탓이라고 말할 사람, 나올 리가 없었다.
박근혜 정부와도 대비된다. 세월호 참사 당시 주무장관이던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은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136일 만에 정부세종청사로 돌아온 그는 가슴팍에서 미수습자들의 사진을 꺼내며 울먹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겠다”는 그의 말에 토를 달 사람은 없었다. 해수부를 출입했던 나에게 이날은 가장 숙연했던 기자회견으로 남아 있다.
당시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광장에서 기획재정부 관료 한 명과 마주쳤다. 관료들이 집회 현장에서 얼쩡거리는 것을 청와대가 불편하게 여길 때였다. 그는 “마음이 너무 안돼서 안 와볼 수가 없었다”며 “20여년을 관료로서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일했다고 자부했는데, 우리가 한 일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됐나 싶어 너무 죄스럽다”면서 고개를 떨궜다. 관료로서, 정치인으로서 ‘내 탓’이라며 유가족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그때는 있었다.
“유가족들이 멱살을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던 이주영 전 장관 수준까지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누군들 폼나게 사표 던지고 싶지 않겠느냐”(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스스로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한덕수 국무총리), “주말이면 저도 음주할 수 있다. 그것까지 밝혀드려야 하나”(윤희근 경찰청장) 등의 실언, 혹은 망언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무려 159명이 사망한 희대의 참사지만, 서울시장은 보이지 않았다. 서울시청에서 이태원까지 택시로는 10분 거리지만, 오세훈 시장에게는 너무 멀었다. 서울시 한 공무원에게 “박원순 시장이었다면 어땠을까요?”라고 물었더니 “지금과는 많이 달랐겠지요?”라고 되물었다. ‘구체적으로 뭐가 달랐겠느냐’고 굳이 묻지 않았다. 묻는 사람도 답하는 사람도 민망할 수 있어서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 13일 용산구청장과 용산경찰서장 등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로 했다고 밝혔다. 행안부 장관, 서울시장, 경찰청장 등 ‘윗선’은 무혐의 처리했다. 이 결과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국회에서는 국조 연장을 얘기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며칠 더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어 보인다. 이제 검찰이 나선다지만 기대를 갖는 것은 난망하다. 검찰 출신 대통령 휘하다. 그렇다면 끝난 것일까. 이들은 모두 면죄부를 받은 것일까.
2020년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은 2년 만에 전 정권의 핵심을 겨누고 있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은 조만간 법정에 선다. 문재인 정부의 ‘자진월북’ 발표를 아버지를, 동생을 잃은 유가족들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자 국방부와 해경은 “실종 공무원의 자진월북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애초 입장을 바꿨다.
159명의 희생자를 낸 이태원 참사는 어떨까. 단언컨대 현 정부 5년의 임기가 끝난다면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것이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의 목소리를 외면할 차기 정부는 없다. 정권교체라면 5년 뒤, 정권창출이라면 그보다 더 뒤겠지만 시간문제다. 40~50년 전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의 사건들도 줄줄이 재조사된다. 유가족들이 납득하지 않는 한 반백년이 지나도 사건은 다시 도마에 오르고 당시의 책임자들은 사법부의 판단을 받게 된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비록 오늘은 이렇게 지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박병률 경제부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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