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독서할 결심

박정오 출판편집자 2023. 1.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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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오 출판편집자

2022년 12월 31일과 2023년 1월 1일은 고작 하루 차이다. 하루 사이에는 그 어떤 드라마틱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비슷한 시각에 해가 떠오르고, 또 비슷한 시각에 해가 지며, 우리의 일상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의 발걸음은 새해에 처음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인다. 추운 날씨에 사람이 붐비는 곳임에도 어떻게든 발을 디딘다. 어제 떠오른 해와 오늘 떠오른 해는 차이가 없지만, 우리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통해 새해에 강력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 부여에는 늘 특별한 다짐과 각오, 목표가 동반된다. 여기에는 작년에 목표로 했지만 달성하지 못한 아쉬움이 묻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한 모임에 참석했는데, 각자 새해 목표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독서모임처럼 책과 직접적으로 관련한 모임이 아니었음에도, 많은 사람이 새해 목표로 ‘독서’를 이야기했다. ‘독서’는 ‘운동’과 더불어 가장 많은 목표 중 하나였다. 이들이 어떤 책을 읽고자 하는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그동안 소홀히 했던 책을 다시금 가까이하고 싶다는 욕망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어렸을 적부터 새로운 목표를 세울 때면 늘 ‘독서’를 끼워 넣었다. 새 학년이 시작될 때, 방학이 시작될 때, 새 학기가 시작될 때,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 새해를 맞이할 때면 늘 새로운 목표를 세웠고, 그때마다 독서는 항상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매번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염치없이 ‘독서’라는 목표를 참 많이도 이야기했다. 세월이 흘러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지금도, 새해를 맞이할 때면 여전히 ‘독서’라는 목표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독서율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고, 이에 따라 출판 시장도 계속해서 얼어붙고 있지만, 여전히 새해만 되면 많은 사람이 ‘독서’를 이야기한다. 다들 먹고살기 바쁘고, 책보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콘텐츠가 차고 넘치는 시대라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읽으려고 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새해 목표로 ‘매일 2시간씩 유튜브 보기’ 혹은 ‘넷플릭스 드라마 10편 정주행하기’, ‘매일 밤 유튜브 보다가 잠들기’ 등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실제로 책을 읽느냐는 것과 별개로, 누군가 이야기하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책이 여전히 우리 삶을 풍성하고 윤택하게 해줄 거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믿고 있다는 의미다.

2023년을 맞이하며 새해 목표로 ‘독서’를 이야기한 많은 사람 중, 그 다짐을 온전히 지키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중요한 건 그 다짐을 결과적으로 지켰느냐가 아닌, 여전히 책이 주는 긍정적인 영향을 믿으며 바쁜 일상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 독서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저 세상 탓만 하기보다는, 비록 작심삼일일지라도 이들이 책을 읽기 위해 서점이나 도서관을 기웃거릴 때, 우연히 손에 잡힐 만한 책을 만들기 위해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책이 과거의 명성을 되찾으며,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이기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지하철에는 스마트폰 대신 책을 읽는 사람으로 가득해지고, 최근에 어떤 드라마를 정주행했느냐가 아닌 어떤 책을 읽었느냐가 대화의 주요 소재가 되는 세상은, 그렇게 출판 시장이 다시금 호황을 맞이하는 세상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새해 다짐으로 ‘독서’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출판 시장은 계속해서 줄어들지언정 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새해 다짐으로 ‘독서’를 떠올린 그 마음과 의지가, 오늘도 전국의 수많은 출판인이 땀을 흘리며 새로운 책을 만들어야 할 이유이다. 바로 그 한 사람의 존재가,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도 새로운 저자를 발굴하고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세상 밖에 선보이며, 책을 알리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할 이유이다. 독서의 부흥을 위함이 아닌, 올해도 독서를 결심한 이들의 마음과 의지를 지키기 위함이다.

2023년 새해가 밝았다. 결국 실패할 거라는 걸 알더라도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쳐보자. 유행이 조금 지난 말이긴 하지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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