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껜 죄송하지만…” 젊은 세대가 차례상 차리는 법 [NOW]
“어머니, 이번 설 명절에는 절대 직접 요리할 생각 하시면 안 돼요.”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회사원 이모(36)씨는 설을 앞두고 최근 서울 본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이씨는 “(설 차례상에 놓을) 잡채랑 전은 온라인으로 미리 주문해놓고, 소고기 뭇국은 집 근처에서 사 들고 갈 테니 그냥 기다리시면 된다”고 했다. 평소에도 반찬을 자주 주문해 먹는 이씨는 “온 가족이 명절만 되면 요리하고 치우고, 서로 눈치 보고 스트레스받는 게 싫었다”며 “조상님께는 죄송하지만 어머니뿐 아니라 아내도 내심 기뻐하는 눈치”라고 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즉석식품이나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는 문화가 익숙해지면서 설 명절 차례상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고된 주방일과 재료 값 상승 등을 이유로 명절 차례상이나 가족 식사 자리에 직접 만든 요리 대신 반찬 가게나 마트에서 구매한 음식을 올리는 것이다. 최근 ‘설 차례상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라는 설문(인크루트)에서도 응답자 828명의 절반 이상(56.3%)이 ‘음식 전부 혹은 일부를 만들어진 식품으로 대체하겠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반찬 판매 업체, 즉석식품 업체는 물론 대형마트·백화점까지 나서 설 차례상 맞춤 세트를 늘리고 있다.
온라인 반찬 배송 업체 집반찬연구소는 이번 설을 맞아 산적, 조기, 모둠전 등 11가지 음식으로 구성된 명절 차례상 세트에 지역별 특산물을 추가한 상품을 출시했다. 지난 추석 시범 운영을 해봤는데 매출이 2022년 설보다 209% 급증하자 이번 설엔 지역 맞춤형 차례상 세트를 주력으로 내세운 것이다. 전라도는 꼬막 숙회, 경상도 문어 숙회, 강원도 고구마전, 충청도 계적(鷄炙)을 추가하는 식이다. 이 업체 박종철 대표는 “어르신들도 반찬을 사드시는 것에 거부감이 줄고 있어 명절에도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슷하게 차례상, 성묘 음식 세트를 파는 동원의 온라인 반찬몰 ‘더반찬&’ 관계자는 “부엌 노동이 거의 필요 없고 가격도 합리적이라는 점이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 업체 차례상(건대추, 깐밤, 떡만둣국 등 17가지로 구성)의 경우 가격이 25만원으로, 전통시장(약 23만원·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조사)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동네 반찬집도 대목을 기대하는 건 마찬가지다. 서울 시내에서 반찬 배달을 중개하는 모바일 플랫폼 ‘오늘반찬’ 장대석 대표는 “이번 설 명절에는 차례 음식 픽업 전담 직원을 뽑으려 한다”고 했다. 서울 방이시장의 한 반찬가게 주인도 “엊그제부터 동그랑땡, 산적꼬치 같은 전류 위주로 예약하겠다는 손님이 늘어 불경기에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도 바빠졌다. 홈플러스는 임대를 내줬던 델리(즉석 조리식품) 공간에 명절용 매대를 배치하고 직접 음식 판매에 나섰다. 현대백화점은 더현대 서울과 목동점에 있는 반찬 매장의 설 음식 품목 수를 전년보다 20%, 물량은 50% 이상으로 늘려 주문에 대비하고 있다.
롯데호텔 서울점은 이번 명절에 셰프들이 조리한 명절 음식 세트를 차에 탄 채로 받아 갈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를 진행한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기존에는 음식 구성이 명절 선물 세트 개념에 가까웠다면, 이번엔 고객 선호도를 반영해 갈비찜이나 떡국처럼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을 주력으로 내놓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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