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칼럼]일본 항공모함이 독도에 출몰하는 날?

천광암 논설주간 2023. 1.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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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 탑재 호위함 슬금슬금 F35B 스텔스용 항모로 바꾼 日
‘전수방위’도 이렇게 허물어 와
군사대국 ‘꽃길’ 깔면 한국에 부메랑 될 것
천광암 논설주간
일본 히로시마현 구레(吳)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초대형 전함 ‘야마토’를 건조한 공창(工廠)이 있던 항구다. 이곳에서는 현재 길이가 248m에 이르는 대형 호위함 ‘가가’를 개조하는 작업이 8개월 넘게 진행되고 있다. 개조 작업이 끝나면 가가는 최신예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 F35B를 탑재하는 항공모함으로 변신하게 된다. 가가의 자매 격인 ‘이즈모’는 2021년 6월 F35B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갑판 개조 작업을 마쳤다.

이즈모와 가가의 당초 용도는 헬리콥터 탑재용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전투기 탑재용 항공모함으로의 개조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라는 의혹이 줄기차게 제기됐었다. 일본 정부는 자위대 여성 간부용 방이라고 주장했지만, 함재기 조종사와 정비사를 위한 공간으로밖에 안 보이는 선실이 100개 가까이 만들어져 있는 등 의심스러운 대목이 많았다. 일본 정부의 본심이 드러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2018년 말 이즈모와 가가를 항공모함으로 개조한다고 공식화했다. ‘공격용인 항공모함을 보유하는 것은 평화헌법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 등에 대해 당시 일본 정부의 한 관계자가 내놓은 답은 “재해 대응 등에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너무나도 옹색한 변명에, 일본의 재무장에 민감한 중국에서는 “F35B를 재난 구조에 쓰는 나라는 일본뿐”이라는 등의 비아냥이 쏟아졌다.

이즈모와 가가의 사례에서 보듯 일본 정부는 ‘공격 받을 때만 최소한으로 자위력을 행사한다’는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교묘한 구실과 논리를 동원해 형해화시켜 왔다. 다만 지금까지는 슬금슬금, 야금야금 행동에 옮겨 왔다. 그러나 작년을 전환점으로 노골적인 ‘전수방위 이탈’과 군사대국화에 나서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1% 범위 안에서 억제하도록 돼있던 방위비 지출을 GDP의 2%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계획을 내놨고, ‘적 기지 공격능력 보유’를 3대 안보 문서에 명기했다.

물론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 굳건한 이상 ‘적 기지 공격능력 보유’가 한국을 겨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방위비 증액도 현재로선 중국의 팽창에 대응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 일본 정부 싱크탱크에서는 ‘공격하는 측은 방어하는 측보다 병력이 3배 많아야 한다’는 ‘공자(攻者) 3배’의 법칙을 방위비 증액의 명분으로 세우기도 한다. 현재 일본 국방비가 중국의 6분의 1 수준이기 때문에 GDP 대비 비율을 2배로 올려야 중국의 공격에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즈모와 가가의 항공모함화만 하더라도 중국과 영토 갈등을 빚고 있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게 일본 정부 안팎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한국이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 없는 이유는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몰고 가려는 일본의 도발 수위가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적 기지 공격능력’을 명기한 3대 안보 문서에는 “일본 고유의 영토인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에 대해 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기초해 의연히 대응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직전 문서인 2013년 판 ‘국가안보전략’에는 ‘다케시마’라고만 표기했으나 이번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수식어가 추가됐다.

독도를 둘러싼 갈등으로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 2006년 4월 한국 측의 독도 주변 해류조사를 둘러싸고 양국은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갈 뻔했다. 이때는 한국 해경과 일본 해상보안청이 대치 전면에 나섰지만, 2018년 12월에는 우리 군과 자위대가 갈등의 당사자가 됐다. 일명 ‘초계기 갈등’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독도를 끊임없이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이다. ‘전수방위’ 원칙이 완전히 무너지고 일본 정치의 우경화가 심화한다면, 이즈모와 가가를 센카쿠열도에는 보내고 독도 해역에는 안 보내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도 웬만한 돌발 악재에는 흔들리지 않도록, 탄탄한 우호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이 중요하다. 원활한 소통채널도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마냥 상대방의 선의에만 기댈 수는 없는 것이 안보다. ‘설마’에 기대서도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일 “일본도 이제 머리 위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 날아다니니까 방위비 증액하고, 소위 반격 개념을 국방계획에 집어넣기로 했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하지 않는 게 나았을 말이다. ‘공격할 수 있는 나라 일본’에 꽃길을 깔아줬다간 언제 우리에게 부메랑이 될지 모른다. 역사가 말한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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