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이동권 보장되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
지난주 월요일 새벽 재난문자 알림에 잠을 깼다. 강화도 인근 지진을 알리는 문자를 보며 강화에 사는 친구가 생각났다. 다행히 함께 있는 단체채팅방에서 괜찮다는 글이 올라왔고, 안심하며 다시 잠이 들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재난문자에 익숙해진 지 오래이다. 확산 초기에는 감염인의 개인정보를 지나치게 자세하게 알리는 등 감염병 예방과 무관한 정보들이 마구 오는 것에 문제제기도 있었다. 이에 행정안전부에서는 2021년 4월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을 마련하여 발송 근거와 체계를 정비하였다. 그럼에도 시시때때로 울리는 알람을 볼 때면 대체 기준이 무엇인지, 지침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곤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보내서는 안 되는 문자가 오기도 했다. 바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대한 재난문자다.
1월2일 오후 9시4분, 나를 포함해 많은 시민들이 ‘4호선 삼각지역 상선 당고개 방면 전장연의 지하철 타기 불법시위로 무정차 통과하고 있다’는 내용의 재난문자를 받았다. 이를 처음 보았을 때 든 생각은 ‘이게 재난문자로 보낼 내용인가’ 하는 황당함이었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나며 서울시의 이 같은 행태에 분노가 올라왔다.
불법시위라는 법적으로 근거 없는 용어 사용부터, 지하철 시위가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자연재난, 사회재난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해당 재난문자의 문제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내가 화가 난 것은 단지 법적 근거가 없이 문자가 보내졌기 때문이 아니다. 장애인이 이동권이라는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시위를 해야 하는 이 상황을 만든 서울시가, 무정차, 손해배상 청구, 재난시위 등으로 전장연을 계속 낙인찍는 무책임한 태도 때문이다.
지난해 8월 국토교통부는 ‘2021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조사에서 장애인이 고령자, 임산부, 어린이 등 다른 교통약자와도 구분되는 특징은, 대중교통 이용률이 낮다는 것이다. 가령 지역 내 이동 시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물었을 때, 비교통약자나 임산부, 고령자의 경우 약 60%가 버스라고 답한 반면, 장애인은 40.4%에 불과했다. 이런 결과가 장애인들이 대중교통 이용을 꺼려서는 당연히 아니다. 장애인이 차별 없이 이용 가능한 저상버스 등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하철 역시 마찬가지이다. 모든 지하철 역사에 100% 엘리베이터 설치는 2004년 이명박 시장 때 서울시가 약속한 사항이다. 2005년에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 즉 이동권을 보장한 교통약자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서울시의 약속 이행은 번번이 미루어졌다.
최근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서울시가 2024년까지 전 역사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로 한다’는 내용을 담은 조정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서울시와 교통공사는 전장연의 시위만을 문제 삼으며 이의를 제기했고, 추가로 6억원의 손해배상 소까지 제기했다. 이동권을 보장해야 할 자신의 책무는 외면한 채, 이를 공론장에서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전장연 시위를 낙인찍어온 것이 그간 서울시가 보여온 태도였다. 1월2일의 재난문자는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다가오는 22일은 설날이다. 그리고 이날은 22년 전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휠체어리프트가 추락하여 70대 노부부가 사망한 참사가 발생한 날이기도 하다. 이 참사는 장애인들이 이동권 보장의 필요성을 외치며 연대를 결성하고 투쟁을 활발히 전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응답 없는 외침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가. 2023년이 더 이상 차별과 혐오가 아닌 모든 사람의 이동권이 보장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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