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학로 빈집 늘자 “골목 출입말라” 부모는 자녀단속
- 인구 유출에 정비사업까지 겹쳐
- 초교 500m내 빈집 조사해보니
- 영도구 청학초 290곳 부산 최다
- 서구 아미초 274곳으로 뒤 이어
- 자녀 걱정에 등하교 동행도 다수
- 학부모, 우범지대화 대책 목소리
- 빈집 정비 부산형 모델 발굴해야
초등학생들의 통학 환경은 젊은층 인구 유출·입의 결정적 요인 중 하나다. 부산 원도심은 영도구 신선초등학교 일대처럼 빈집이 늘어나는 추세다. 재개발·재건축을 포함한 정비사업으로 이주민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인구 유출이 빈집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다. 통학 환경에도 빨간 불이 켜진 지 오래다.
국제신문은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영도·서·동구와 사상·남구의 초등학교 반경 500m 이내 빈집을 전수 조사했다. 한국전쟁 피란민촌이 형성됐던 서구와 영도구는 무허가 건물을 포함한 모든 빈집을 파악했다. 그 결과 영도구 청학초등 주변 빈집이 290곳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서구 아미초등 일대 274곳 ▷영도구 신선초등 일대 238곳 ▷서구 남부민초등 일대가 205곳으로 집계됐다. 영도와 서구의 빈집을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이용해 시각화했더니 통학로 주위의 빈집 규모가 확연히 드러났다.
실제로 취재진이 겨울방학을 앞둔 지난달 남구 동천초등 앞을 찾았을 때도 단독주택 밀집지역에 빈집이 즐비했다. 많은 학부모가 자녀들 등굣길을 동행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한 학부모는 “등교보다 하교가 더 걱정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교는 같이 한다.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귀가할 때까지 딸 아이와 통화를 한다”며 “통화를 하면서도 빈집이 있는 주택가 쪽으로는 절대 가지 말고 큰 길로 다녀야 한다는 말을 주문처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사상구 엄궁초등 앞도 자녀들과 등교에 나선 학부모가 여러 명 있었다. 이곳은 엄궁1 재개발 정비사업 대상지역인 탓인지 통학로를 따라 빈집이 많았다. 집집마다 출입을 금하는 ‘공가 안내문’과 함께 붉은색으로 ‘X’가 그려져 있었다. 먼저 들어선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이 이곳을 지나 등교하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높았다.
40대 초반의 한 학부모는 “10살이 넘은 남자 아이의 등하교가 불안할 정도인데 여자 아이 부모들은 어떤 심정이겠느냐”며 “정비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자치단체나 교육청·재개발조합이 등하굣길 안전은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재개발이 모두 끝나는 5~6년 동안 아이들이 이런 통학로를 지나 다녀야 한다”고 푸념했다.
학교 주변 반경 500m 내 빈집이 200곳이 넘는 남부민초등 앞 사정은 더욱 심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거주자가 있는 집보다 빈집을 찾는 것이 쉬울 정도였다. 1932년 개교한 남부민초등은 학생 수가 점점 줄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재학생이 131명에 불과하다. 6학년(2학급)을 제외하고는 학년당 1학급으로 구성됐다. 그나마 주변에 아파트가 생겨 학생 수가 유지되는 것인데, 단독주택가는 그야말로 빈집 천지다. 이곳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50대 여성은 “10년 전 막내아들이 남부민초를 다닐 때만 해도 한 학년에 4학급 정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학생 수가 줄었다”며 “그 뒤 빈집이 늘어나고 동네가 슬럼화하기 시작했다. 교통이 불편하고 주차 공간도 없어서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갈 것은 예상이 됐지만 예상보다 인구 유출 속도가 너무 빠르다. 관리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부모들은 더 많은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통학로 일대 만큼은 조속한 환경 정비와 함께 체계적인 치안 대책이 동반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부산시의회 기획재경위원회 소속 김형철(연제1) 의원은 “빈집을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산시와 자치단체가 손을 잡고 동 단위로 작은 시범지구를 지정해 빈집 관리·재활용을 위한 부산형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 특히 초등학교 주변의 빈집을 전량 매입해 청년창업자를 위한 주거단지나 오피스로 활용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 무허가 건물까지 더하면, 서·영도구 빈집 1000채 훌쩍 넘어
- 시·구 기준 차이로 통계 격차
부산시와 기초자치단체가 집계한 빈집 통계는 큰 차이를 보인다. 부산시는 명의가 있고 허가된 건물의 빈집 현황을 파악한 반면 자치단체는 무허가 건물을 더해 실태 조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15일 부산시가 집계한 빈집 현황을 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빈집은 총 4403채다. 남구가 685채로 빈집이 가장 많고 부산진구(552채) 사하구(515채) 해운대구(402채) 순이었다. 불량·철거대상 빈집만 보면 남구(227채) 사하구(210채) 부산진구(164채) 동구(151채) 순이다. 다만 부산시의 주거환경 실태 조사(2021년)에서 전체 주택 수 중 빈집 비율은 서구를 제외한 원도심 3곳이 부산에서 가장 높았다. 중구의 빈집 비율은 15.4%에 달한다. 이어 동구(12.6%) 영도구(11.5%)가 많다. 이곳에서는 주택 100곳 중 11~15곳이 빈집인 셈이다.
하지만 무허가 건축물까지 포함하면 빈집 수는 크게 늘어난다. 영도구와 서구가 무허가 건축물까지 더해 자체 집계를 한 결과 빈집은 각각 1099채와 1218채였다. 게다가 영도구의 노후주택률(30년 이상)은 2021년 조사에서 40.7%로 동구(48.2%)와 중구(42.7%)에 이어 부산에서 세 번째로 높았다. 결국 원도심은 인구 급감과 함께 노후화한 많은 주택이 빈집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큰 환경이다.
동의대 신병윤(건설공학) 교수는 “빈집을 매입하고 단순히 정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구 유출로 마을의 인구 밀도가 낮아지니 고밀도로 형성된 마을에서 건물은 줄이고 편의시설과 정원 등 주거단지로서의 공간을 확보하는 스마트축소 도시재생의 관점으로 빈집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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