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395배 차이 나는 건보료, 다 똑같은 대학등록금

김덕한 사회정책부장 2023. 1. 1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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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중견그룹 계열사 두 곳의 대표를 맡고 있는 A씨는 올해 연간 건강보험료가 1억원이 훌쩍 넘는다. 급여를 받는 두 회사에서 각각 직장 건보료 최고액을 내고, 급여 외 소득에도 건보료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전 국민 의무 가입제인 건보를 유지하기 위해선 소득별 차등 보험료도 필요하고, 부자들의 희생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49.5%의 최고세율 소득세에 더해 ‘세금’이 아닌 ‘보험료’까지 두 곳에서 다 상한액을 매기는 건 과한 면이 있다.

올해 우리나라 직장 가입자 건강보험료 상한액(월 782만2560원)은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는 일본(월 141만원·이하 2021년 기준·), 독일(95만원), 대만(86만원)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반면, 하한액(월 1만9780원)은 훨씬 낮아 건보료 상한액과 하한액 격차는 395배로, 다른 나라(12~24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 배수는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얼핏 극소수 부자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제도의 불합리를 방치하면 부작용이 모두에게 미칠 수 있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 건보를 회피하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보험 재정을 먼저 쓰고 보자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 외국에 나가 살며 건보를 유예하면 생활비가 빠진다는 말이 나오고, 농사를 짓지 않는데도 농업경영체로 등록해 건보료를 감면받으려는 꼼수가 이미 동원되고 있다. 도덕적 책임감이 흐려지면 건보 건강성은 훼손될 것이다.

역대 정부는 건보를 비롯, 연금·교육 개혁을 외쳐왔지만 항상 쉽고 안전한 길을 택해 왔다. 선거에 이기는 게 우선이고, 재정에 빨간불이 켜지는 건 그다음 문제였다. 부자들의 보험료를 올리는 건 저항도 적고, 다수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풀어줄 수 있는 쉬운 길이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연금 납입금 인상을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외면하고, ‘문재인 케어’라는 선심만 쓰다 건보 재정에 빨간불이 들어오게 한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이다.

대표적인 공적(公的) 서비스인 교육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15년째 대학 등록금을 동결했다. 대학 문턱을 낮추겠다며 가장 편리하지만 대책 없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한번 동결한 등록금은 앞으로 어느 정권도 올릴 수 없을 것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그 결과 대학 교육은 붕괴하고, 교수들의 상대적 급여 수준은 폭락, 우수 인재들이 대학을 외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강보험에 400배 차이가 나는 가격을 매기는 정부가, 학교마다 품질이 다른 대학교육 가격은 똑같이 동결시켜 사립 유치원보다 싸게 만들었다. 이 두 정책의 공통점은 시장 기능을 제한하면서 원칙과 합리성을 모두 무시하는 포퓰리즘이 바탕에 있다는 것이다.

연금 개혁에 나선 윤석열 정부는 대학 교육도 정부 예산을 지자체로 넘겨 확충하는 방식으로 살려나가겠다고 했지만 근본 대책일 수는 없다. 돈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는 건 막되, 대학이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경쟁할 수 있도록 등록금의 현실화를 꾀하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소득에 따라 너무 심한 격차가 나는 건보료 부과 제도는 고쳐져야 하지만, 이 원리를 대학 등록금에 적용하는 건 검토할 만하다. 계층별로 등록금을 차등화해 대학 재정의 숨통을 틔워주는 방식이다. 그렇게 되면 장학금도 늘릴 수 있다. 한국 대학을 등지고 탈출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기 전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소득에 따라 공적 서비스 가격에 어느 정도 차등을 두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미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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