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입주해 목선 만드는 청년…영도소멸 막을 희망 될까

송진영 기자 2023. 1. 1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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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먼저 온 부산의 미래 <5> 귀향한 스타트업 대표의 꿈

- 초고령지역 산복도로 봉산마을
- 우든 보트 제작 업체 ‘라보드’
- 마을재생사업 선정돼 공방 차려

- 건조한 두 척 제주·영도에 정박
- 3·4호는 관광선으로 만들 계획
- 빈집 4곳 게스트하우스로 운영
- 음식점 개업 관광객 유입 노력도

- 무일푼 젊은이에 창업공간 희망
- 인구 유입으로 마을에 활력도
- 선박 작업장 ‘조선팩토리’ 목표

부산 영도구의 산복도로 주거지는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지역소멸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봉래동 봉산마을 일대는 10년 사이 취학 아동이 한 명도 없다. 인구 2명 중 1명이 만 65세 이상인 ‘초고령 지역’이다. 빈집도 급증하는 추세다. 도시재생사업으로 매년 예산이 투입되는데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낡은 집이 많다. 다행히 스타트업에 뛰어든 젊은층이 최근 바다를 품은 영도로 유입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 신호다. 국내에서는 매우 희소한 분야인 목조선박 시장을 개척하겠다면서 이곳의 빈집을 제조공방으로 활용하는 스타트업 ‘라보드’의 이경진 대표와 창업 동지 2명은 봉산마을의 스타다.

목조선박 건조 스타트업 라보드의 이경진(왼쪽부터) 대표와 박희원, 박종훈 팀장이 부산 영도구 봉산마을에서 목공 작업을 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어린 시절 영도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집과 골목이 좁은 게 아니라 동네 어디든 사람이 많아서 좁아 보인다고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사람들을 따라 가다 보면 고지대 급경사인지도 몰랐을 정도입니다. 어린 시절 영도에 살면서 불편한 것은 전혀 몰랐는데 다시 돌아와서 보니 사람은 빠져나가 썰렁한데 주거환경은 너무 열악해 마음이 아팠습니다.”

라보드의 2호 선박에 관광객이 탑승해 기념촬영을 한 모습. 라보드 제공


1983년생인 이 대표는 부산 영도초와 신선중·부산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도를 떠났다가 20년 만인 2019년 봉산마을의 도시재생 사업 공모(창업)에 선정돼 귀향했다. 유년 시절 내내 영도 앞바다를 보면서 “배를 만들어 저기에 띄워 보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한다. 강원도의 올리브선박학교(지금은 폐교)에 들어가 박종훈(37)·박희원(34)·구민섭(35) 씨를 만나 창업하기에 이른다.

이 대표는 도시재생사업 덕분에 봉산마을에 터를 잡게 됐다. 빈집 활용을 위한 창업 공간화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다. 동의대 신병윤(건설공학) 교수가 봉산마을 현장지원센터장을 맡아 도시재생을 이끌면서 시작된 사업이다. 신 교수는 생활인구 유입을 위해 ‘빈집 줄게 살러 올래’라는 이색적인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전국에서 예술인 7팀이 입주를 시작했다. 이 대표는 “만일 이런 사업이 아니었다면 열정만 있는 우리 같은 젊은이들은 창업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곳에 와보니 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이 내려다 보이더라”며 “이런 상징적인 공간에서 목조선박을 만들어 영도 앞바다에 띄워 보겠다는 평생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들떴다”고 회상했다. 영도는 모든 곳에서 뛰어난 조망을 선보이지만 봉산마을은 2030부산세계박람회 개최 예정지인 북항 재개발 지역과 해운대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 명당이다.

이 대표는 과거 “대평초등학교 옆에 다나카조선소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목조보트가 만들어진 곳이다. 국내 수리조선의 상징지인 깡깡이마을도 영도에 있다. 우리가 이곳에서 ‘우든보트(목조선박) 빌리지’라는 관광콘텐츠를 선보이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영도구 봉산마을 라보드 우든보트 웰컴 라운지 박희원 팀장(왼쪽부터), 이경진 대표, 박종훈 팀장. 이원준 기자


이 대표가 창업한 라보드는 배의 왼편을 뜻한다. “사람이 타는 곳이거나 배에 첫 발을 들이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성공적인 출발을 위한 이름으로 제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봉산마을에 있는 라보드의 공방은 두 곳이다. 산복도로를 사이에 두고 아래쪽과 윗쪽으로 각각 한 곳이 있다. 모두 빈집을 정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 곳에서 라보드는 두 척의 목조 선박을 건조했다. 박종훈·구민섭 씨가 각각 건조 공정 전반을 총괄과 선박 구조 설계를 맡았다. 이 대표와 박희원 씨는 각각 내부 설계와 엔진 정비를 담당한다. 이곳에서 설계 작업과 기초 공정을 마치고 주건조 작업은 녹산산업단지의 중소조선연구원에서 진행했다.

라보드의 1호 선박은 제주도에, 2호 선박은 영도 동삼어촌계에 정박 중이다. 하지만 생경한 이미지의 목조 선박을 관광상품으로 만들어보겠다는 라보드의 의욕은 생계 앞에 점점 꺾이기 시작했다. 목조 선박의 관광상품화는 시장성이 낮았다. 게다가 고정 수입이 없다 보니 당장의 생활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빈집을 활용한 게스트하우스 2곳을 운영하던 라보드는 올해 게스트하우스 2곳을 추가로 열었다. 최근에는 음식점도 개업해 젊은 관광객을 유인하고 있다. 라보드 식구들은 틈 나는 대로 선박 건조기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제3의 목조선박 제조를 위한 자본을 모으는 중이다. 이 대표는 “도전하고 실험하면서 부딪혀 보겠다는 정신으로 라보드의 1·2호를 만들었다면 3·4호는 대중성과 상품성을 염두에 두고 건조하고자 한다. 단순한 유람용 선박을 지양하고 라보드만의 메시지를 담은 관광선을 만들어 보겠다”고 밝혔다.

봉산마을 내 폐가 수준으로 방치됐던 빈집(왼쪽)이 도시재생 사업을 거쳐 라보드의 아랫공방으로 활용되고 있다. 라보드 제공·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동네 어르신들의 격려와 응원은 라보드 구성원들의 정착에 큰 힘이 됐다. 라보드 식구들도 어르신들의 도움 요청이나 부름에 적극적으로 응한다. 주민 모임에는 빠지지 않을 정도로 동네에 관심을 쏟았다. 이제 라보드 식구들은 ‘배 만드는 젊은이들’이 아닌 ‘라반장’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봉산마을 관리 사회적 협동조합의 김정환 이사장은 “우리 마을은 1959년생인 내가 제일 젊은 사람이라고 했을 정도로 고령화가 심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만 조금씩 마을이 정비되고 이 대표처럼 젊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들어오면서 마을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며 “젊은이들이 싹싹하고 인사성도 밝아 어른들과 잘 어울려 이질감도 없는데다가 궂은 일도 잘 도와줘서 사랑을 받고 있다. 라보드는 훗날 꼭 성공해 봉산마을 이름을 높일 것”이라고 응원했다.

이 대표는 “현실은 냉혹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운이 좋아서 하고 싶은 일을 30대 시작할 수 있었다. 만일 영도가 아니었다면 우리 같은 무일푼의 젊은이들이 창업공간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며 “지금은 힘들지만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는 어르신들에게 꼭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영도의 빈집을 잘 활용하면 바로 사용이 가능한 주거공간이 된다”면서 “이곳에서 몇 년간 생활을 해보니 도로·보행로 확장과 주차공간 확보는 정말 필요한 것 같다. 사람을 불러 모으려면 이러한 인프라 개선이 시급하다”는 생각도 덧붙였다.

이 대표는 라보드를 통해 조선1번지 영도를 부활하겠다는 야심찬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가진 것 없는 철부지들이 꿈만 크다고 할지 몰라도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도에 ‘조선 팩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돈이 있든 없든, 초보든 전문가든, 남녀노소, 국적 불문하고 모두가 어울려 선박 건조와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말한다”며 “배를 만들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팩토리가 생기면 영도가 조선 1번지의 명성을 되찾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공동기획=국제신문, 부산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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