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MZ 사무관의 ‘조용한 퇴직’
지난달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무하는 한 3년 차 사무관이 사표를 냈다. 청춘을 불살라가며 어렵게 고시를 통과했는데 ‘본전’을 뽑기도 전에 그만둔 이유는 로스쿨 진학이었다. 이 사무관의 상사들은 “도대체 왜?”라며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의 동기·후배들은 부러워하며 새 출발을 축하했다. 새내기 외교관, 경찰대 출신 경위, 입법고시를 통과한 국회 공무원 등 기자 주변에도 이미 사표를 썼거나 업종 전환을 망설이고 있는 또래들이 꽤 있다.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공직 사회에서도 이른바 ‘MZ 사무관’들을 중심으로 ‘조용한 퇴직(Quiet Quitting)’ 바람이 거세다. 청운(靑雲)의 꿈을 안고 공무원이 됐지만 관료주의와 보수적인 조직 문화에 좌절한다. 공무원으로서 보람이나 효능감을 채 느끼기도 전에 대통령실·입법부에 휘둘리는 선배들을 보며 또 한번 좌절한다. 20~30대 공무원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는 이런 질문들이 자주 올라온다. “5년 차 사무관인데 지금 로스쿨 가는 게 너무 늦지 않을까요?” “다시 수능 봐서 의대 가는 건 어떤가요?”
예전처럼 이들을 어르고 달래가며 이끌어줄 사수, 멘토도 요즘엔 거의 없다. 선의(善意)라도 괜한 잔소리를 했다가는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니 선배들은 말을 줄인다. 한 정부 부처 과장은 “꼭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있어 야근 좀 하자고 말한다거나 회식 장소, 메뉴를 정하는 것도 너무 어렵다”고 했다. 소통이 없으니 오해와 불신, 갈등이 싹튼다. 정부 부처 고위 공무원들이 가장 자주 하는 토로는 이렇다. “요즘 젊은 직원들은 소시민이 됐다. 사명감이 없고 이기적이기만 하다.”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관(官)의 영역에 예전만큼 진출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민간에 훨씬 많은 기회가 있고, 성취에 따른 보상도 그곳이 더 큰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비 사무관들이 업무 부담을 이유로 국무조정실·기획재정부 같은 ‘컨트롤 타워’는 기피하고 ‘서울에 있는 아무 부서’를 지망 1순위로 꼽는 것을 방관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항상 자부심을 품고 국민, 국익을 위해 헌신해달라.” 최근 열린 외교부 5급 공채 신규 임용자 임용장 수여식에서 장관이 이렇게 말했다. 2023년에도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公僕)일 테고, 요즘 말로 ‘누가 칼 들고 공무원 하라고 협박’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들이 “공직 사회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탓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하면 젊은 공무원들을 뛰게 할 수 있을지 보상 체계나 조직 문화를 고민해야 한다. 공무원 연금 개혁만큼이나 중요한 일이고 단순히 MZ 사무관들 몇 명 불러 밥 먹고 셀카 찍는다고 될 일은 더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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