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우주항공청이 불러올 미래
달 착륙선 프로젝트 주도…우주산업 강국 도약 기대
공기정화기, 대용량 배터리, 자외선 선글라스, 인공관절, 일회용 기저귀. 이들 기계나 제품은 별다른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연구를 기반으로 해서 개발한 상품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이것만이 아니다. NASA가 수행한 우주 프로그램을 통해 우주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엄청난 기술적 혁신이 이뤄졌다. 작고 좁은 우주선에 탑재하기 위해 컴퓨터 크기는 더욱 작아지고 성능은 향상됐다. 우주선과의 통신을 위해 원거리 통신 기술이 빠르게 개선됐고 이를 통해 통신위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정확한 위치를 잡기 위해 필요한 GPS 항법장치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우주선을 만드는 데 활용한 로봇은 자동차 생산설비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조립 라인에 사용된다.
이런 기술과 제품 외에도 NASA의 기술 덕분에 그전까지 세상에 없던 다양한 제품이 세상에 나왔다. 우주선의 비행과 조종을 위해 필요한 기술에서 발전한 비디오게임용 조이스틱, 항공기 충돌 방지 시스템은 물론 인공 심장과 연기탐지기, 소형 레이저, 소방관용 방화복, 태양전지의 원천 기술이 바로 우주로 가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심지어는 탄성 좋은 골프공이나 수경재배 기술조차도 그렇다. 실로 상상을 뛰어넘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쓰이는 원천기술이 NASA가 새로운 항공기를 개발하고 지구 궤도와 달을 비롯한 태양계 천체 곳곳으로 로켓을 쏘아 올리고 탐사선을 보내는 과정에서 세상에 선을 보였다.
이처럼 산업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크나큰 파급 효과를 낸 NASA가 순간에 만들어지고 그 역할을 수행해온 것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0여 년이 지난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 궤도에 쏘아 올리자 ‘스푸트니크 충격’을 받은 미국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1958년 7월에 우주 계획과 일반 항공 연구 등을 전담할 국가 기관으로 NASA를 발족했다. 이후 미국은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에서도 소련에 뒤처지기는 했지만 NASA의 활동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빠르게 소련과의 격차를 줄였다. 출범 첫해에 시작한 머큐리 계획에 이어 인간을 달 표면에 착륙시킨 뒤 안전하게 지구로 귀환시키는 아폴로 계획에 성공하며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에 올라섰다. 그 뒤 NASA는 우주왕복선 시대를 연 데 이어 꾸준히 태양계 탐사와 우주 관측에서 큰 성과를 낸다.
이제 우리나라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항공우주 분야 연구·개발에서 한 단계 도약할 ‘사천 우주항공청’ 시대를 눈앞에 뒀다. 1958년의 NASA나 1975년 출범한 유럽우주기구(ESA)는 물론 2003년 설립한 이웃 일본의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보다도 한참 출발이 늦었지만 조선과 반도체 등 우리나라의 여러 산업 분야에서 그랬듯이 우주항공청이 빠른 속도로 우주항공 선발 국가들을 따라잡는 데 앞장서리라 본다. 미국의 NASA처럼 전문가 중심, 프로그램 중심 조직으로 만들어질 우주항공청은 군과 관, 민간에 흩어진 우주항공 관련 조직을 통합해 국가적 노력이 중복되는 일을 피하고 항공우주 기술 개발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최고 전문성을 갖춘 조직으로 우주개발의 중추적 역할을 맡으리라 기대를 모은다.
조직이나 예산 규모가 애초에 기대했던 것보다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지만 전문가 집단으로 출범할 우주항공청의 설립 자체가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갖추려다 보면 출범 시기가 지연될 수도 있다. 목표로 한 올해 안에 출범하면 항공우주 분야 컨트롤타워를 맡아 점진적으로 여러 조직을 통합해 규모를 확장할 수 있다. 우주항공청 출범 후에는 당장 지난해 12월 달 궤도에 도착한 우리나라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에 이어 달 착륙선 개발을 포함한 후속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 누리호의 신뢰성을 높이는 작업은 물론 누리호를 잇는 차세대 발사체 개발 등 할일이 많다.
우주항공청이 출범하면 이처럼 우주 분야는 물론 항공 분야를 아우르는 정책 개발과 수행을 중심으로 사천이 자리 잡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주 탐사와 개발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파급되는 지식과 기술이 우리나라 과학계 연구를 자극하고 산업을 살찌우는 토양이 될 수 있다. 우주항공청이 출범하는 올해는 ‘한국판 NASA’ 설립 원년이자 ‘한국 항공우주 개발의 산실’이 만들어진 해로 기억될 것이다. 오늘의 NASA가 있게 된 출발점이나 마찬가지인 아폴로 프로젝트를 통해 달에 인류 최초로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의 말을 빌려 사천에 자리 잡을 우주항공청도 작은 한 발자국으로 출발하지만 미래의 우리 항공우주 기술과 산업에 거대한 도약을 이루기를 기대한다.
이진규 편집국 부국장 겸 경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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