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먹거리에 항생제가?
새해 한 해를 어떻게 잘 먹고 잘살아볼까 하는 계획을 세우다가 ‘잘 먹고’에서부터 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잘 먹는다는 게 뭘까? 건강한 식사? 맛있는 것? 좋은 분위기에서 진귀한 음식? 과거 미국의 오바마 정부 시절, 국민 비만을 줄이기 위해 메뉴에 성분 라벨링을 하는 정책에 대해 ‘먹을 자유’를 뺏는 것이라는 논쟁이 떠오르면서, 비록 포화지방으로 가득 찬 음식이라도 개인 기호에 따라서는 ‘잘 먹기’에 해당하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불안전한 먹거리’란 개인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닌, 비자발적으로 안전하지 못한 먹거리가 될 것이다.
주로 우리는 소 돼지 닭 등 3대 육류와 수산생물 중 양식어장에서 기른 어류를 섭취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은 사람에 대한 진료가 의사에 의해 이루어지듯이 식용 가축의 진료는 수의사에 의해 이뤄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축산농가의 소유주가 사육하는 동물을 상대로 진료행위를 할 수 있고, 수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하는 동물용의약품은 전체 동물 대상 의약품 중 16%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일반 약국에서는 수의사 처방전이 없어도 마취제 호르몬제를 구입할 수 있고, 주사제가 아닌 항균항생제도 구입이 가능하다. 끔찍한 사실은 2011년 전에는 닭의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사료에 항생제를 섞어 먹인 경우가 많았으나, 다행히 2011년에 첨가가 전면금지됐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2020년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과 농림축산검역본부가 공동조사한 결과, 2011년 이후 2020년까지 가축에 사용하는 항생제의 총판매량은 전체적으로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증가했다. 항생제 내성률은 미생물이 항생제에 저항해 생존하는 약물저항성을 의미하는데, 현대의료에서 가장 크고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가축용으로 판매된 항생제 중 여러 가지 종류에 대한 내성은 돼지와 닭에서 증가했다. 특히 판매량이 증가한 제3세대 세팔로스포린 계열의 항생제는 항생제 중 가장 상위에 있는 것으로, 시험 결과 닭에서 내성률이 매우 높고 연차가 갈수록 내성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식어류에 사료로 항생제를 섞어 쓴다는 것은 잘 알려졌는데, 2020년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양식수산물 310건을 수거 검사한 결과 동물용의약품 잔류 기준을 초과한 수산물이 4건 적발됐고, 뱀장어에서는 노출기준의 13배가 검출됐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2021년 9월 우리나라에서 열린 식품유래 항생제 내성 국제콘퍼런스에 영국의 항생제 내성 특별대사로 방한한 샐리 데이비스는 “항생제 내성문제가 코로나19보다 더 큰 사회경제적 여파를 미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축산동물에 대한 수의사 처방제도는 수의사법에 명시된 사항으로,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필수적 요소다. 그런데 현실이 이렇게 된 데에는 약국에서는 이러한 법 적용이 약사법에 의한 예외조항이라고 하니, 왜 잘 만든 법을 예외조항까지 만들어서 쓸모없는 법으로 만들었는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우리 정부는 먹거리 안전을 위해 매우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먹거리 생산부터 제조와 유통, 소비까지 국가가 책임진다는 문재인 정부의 4주년 식의약정책 성과 발표(2021년 5월)와 국정과제로 ‘먹거리 안전관리 강화’를 삼은 윤석열 정부 모두 중점 국가정책으로 먹거리 안전을 주창한다. 문 정부의 먹거리 안전정책은 주요한게 세 가지인데, 생산단계의 농산물에 미등록 농약 사용을 금지하는 허용물질목록 관리제도, 식품안전사고의 사전예방을 위한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 안전관리체계 확대, 신선하고 안전한 달걀 공급 제도 등이다. 윤석열 정부의 안심먹거리 정책은 ‘먹거리 안전’보다는 복지·영양·위생 쪽에 가깝다. 노인·장애인 급식의 영양·위생관리를 하는 사회복지급식관리지원센터 확대, 어린이 영양·위생 관리를 위한 급식관리지원센터 운영과 식생활 안전지수 조사가 주요한 내용이고, 일부 수입식품 방사능 안전관리가 포함됐다.
두 정부 어디에도 우리 먹거리의 항생제 남용 방지 부분은 찾아보기 힘들다. 앞서 말했 듯이 “코로나보다 더 심각한 항생제 내성” 또는 슈퍼박테리아의 출현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먹거리 항생제 남용에 대한 시급한 대책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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