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다 지난 이야기라고 말하기엔 너무 아파서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20년이란 세월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는 내용이다. 삶 전체를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살아온 여자 주인공 동은의 삶은 황폐하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 영혼은 부서지고 삶은 무의미해졌다. 그에게 남은 삶의 동력은 ‘복수’. 만약 내가 동은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다. 드라마를 보며 몇 년 전 인터넷에서 보았던 글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처음 학부모 참관수업을 했는데 아는 얼굴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학부모로 참관 온 학생 엄마는 학창시절 자신을 괴롭힌 학교폭력 가해자였다. 이렇게 만나게 되리라고는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교사도, 가해자였던 학생의 엄마도 몰랐을 것이다. 책상 서랍에 쓰레기가 가득 들어 있던 것은 기본이고, 교과서가 쓰레기통에 들어 있거나 찢어졌던 일은 아주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엄마는 교사인 동창에게 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다 지난 일이잖아.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아니지? 그때는 미안했어. 혹시 우리 애한테, 우리 애를 그러는 건 아니지? 아니지? 아하하.”
가해자는 그래도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이 앞에서 착하고 도덕적인 엄마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교사가 된 피해자는 다 지난 일이 아니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고통이었다. 시간이 지난다고 상처가 없어질 리 없다. 철없던 어린 시절 장난 좀 친 것 두고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꽁해 있는 속 좁은 사람으로 취급당하기엔 너무 깊은 상처였다. 피해자는 정신적 충격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는데 가해자는 멀쩡한 얼굴로 살고 있었다.
예전 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중등부 선생님이 반 여학생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중간고사 시험을 앞두고 있었는데 A가 보강을 나오지 않았다. 보강을 온 아이들이 A는 오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하며 남학생에게 심하게 맞았다고 했다. 일주일 뒤 학원에 나온 A의 얼굴은 멍으로 뒤덮여 있었다. A는 남학생에게 왜 맞았는지 이유를 몰랐고, 학교에서 내린 조치는 ‘전학’이었다. 가해자 학생이 아닌 피해자 학생의 ‘전학’. 담임선생님은 소문이 다 났는데 학교에 다닐 수 있겠느냐며 A가 전학을 가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여학생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런데 왜 내가 전학을 가야 해요? 왜 걔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가해자 남학생이 여학생을 때린 이유는 간단했다. ‘재미로’. 남학생은 툭, 침을 뱉듯 말했다. ‘재미로’. 요즘 학교폭력 사례를 보면 ‘재미로’ 친구를 따돌리고,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 괴롭힐 대상이 정해지면 재미없어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재미가 없어지고, 싫증이 나거나 망가지면 장난감을 버리듯 해 버리고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나선다.
드라마 속 동은, 교사가 된 피해자, 학원 여학생이 폭력에 시달렸던 이유는 하나였다. ‘재미로’. ‘재미로’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괴롭히는 동안 피해자를 지켜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드라마 속 동은 이야기가 가슴 아팠다. 내가 보았던 아이들의 어두운 세계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잘못한 사람도, 사과할 사람도 없다. 피해자는 나인데, 나는 선생님의 근무에, 학교에 오점이 되었다. 피해자인 나보다 가해자인 걔가 더 보호받는 느낌이다. 가해자인 걔는 진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담기지 않은 반성문을 던지고 고작 근신에 봉사 정도로 내가 받은 상처를 상쇄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학교폭력 피해자인 내가, 동은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어떤 것일까. 나는 동은처럼 하지 않을 거야, 라고 단호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학교폭력 피해자가 모두 동은처럼 하지는 않는다. 복수는 다시 나를 파괴하는 과정이다. 복수를 하며 행복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다 지난 이야기라고 말하기엔 아직도 너무 아파서. 20년 전 동은의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파서 나는 함부로 “멈춰”라고 말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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