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질척거리다’도 성적 수치심을 일으킨다
지난해 한 국회의원이 국민권익위원장에게 ‘질척거리다’라는 표현을 써 ‘성적 수치심’ 논란이 일었다. 얼마 후 다른 국회의원이 국립국어원장에게 ‘질척거리다’에 외설적 의미가 있느냐고 질의했고, 국립국어원장은 “질척거리다는 ‘질다’라는 형용사에서 나온 말로 습기가 많다는 뜻”이라고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뜻풀이를 전했다.
얼핏 들으면 외설적인 낱말이 아니라는 답변 같았다. 하지만 그 의원이 “질척거리다가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표현으로도 쓰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면 국립국어원장의 답변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언어는 사전적 의미로만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적 쓰임이 더 많다.
예를 들어 ‘오빠’의 국어사전 뜻풀이인 “남매간의 호칭이나 지칭” 또는 “남남끼리에서 나이 어린 여자가 손위 남자를 정답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 등에는 외설적 의미가 없다. 그러나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직장 상사가 자신을 오빠로 불러 보라는 소리를 듣고 한 직원이 성적 수치심을 느껴 분노하는 장면이 나온다.
‘질척거리다’도 마찬가지다. 이 말의 국어사전 뜻풀이는 “진흙이나 반죽 따위가 물기가 매우 많아 차지고 진 느낌이 들다”이다. 그러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나오듯이 일상생활에서는 “나는 질척거리는 남자 질색이야”처럼 남녀간의 부적절하거나 불편한 관계를 뜻하는 비유적 표현으로도 널리 쓰인다.
이렇듯 대부분의 단어는 사전의 뜻풀이와 상관없이 말을 주고받는 상대나 그 말을 사용하는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아울러 대화는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이 중심이 돼야 소통이 이뤄진다. 아무리 명연설을 해도 청중이 못 알아들으면 말 귀에 대고 하는 염불에 불과하고, 개떡처럼 말해도 찰떡처럼 알아들으면 명연설이 된다. 성인지 감수성 논란을 일으키는 언어도 마찬가지다. 성적 수치심은 말하는 사람이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듣는 사람에게 상처로 남는 일이 많다. 설망어검(舌芒於劍)이라 했다. 혀가 칼보다 무섭다는 의미다. 말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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