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식의 온차이나] 중국식 ‘가격 후려치기’ 화이자엔 안 통했다

최유식 동북아연구소장 2023. 1. 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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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의보국, 코로나 19 치료제 팍스로비드 가격 63% 깎은 박스당 100달러 요구했다 거절당해
화이자 CEO “세계 2위 경제대국이 저개발국보다 낮은 가격 요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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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적인 ‘위드 코로나’ 시행으로 중국에서 코로나 19 감염자가 폭증하는 가운데, 1월 초 베이징에서 큰 가격 담판이 있었습니다. 미국 화이자의 코로나 19 치료제 팍스로비드(Paxlovid)의 공급가격을 놓고 중국 국가의료보장국(의보국)과 화이자 간 담판이 벌어졌어요.

중국은 메신저리보핵산(mRNA) 방식인 서방의 화이자, 모더나백신은 도입을 허용하지 않지만, 먹는 치료제인 팍스로비드는 작년 2월 긴급 사용 승인을 내줬습니다. 화이자 1인분(30알)의 중국 도입 가격은 처음 2300위안(340달러)으로 책정됐다가 이후 1890위안(280달러)으로 내려갔어요.

협상은 결렬됐습니다. 중국 의보국은 “화이자가 너무 비싼 가격을 제시해 협상이 결렬됐다”고 했어요. 반면 화이자는 “저개발국 공급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에 달라는 요구에는 응할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화이자의 먹는 코로나 19 치료제 팍스로비드. /조선일보DB

◇4시간 협상 끝 담판 결렬

중국 매체에 따르면 가격 협상은 지난 1월5일부터 8일까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렸어요. 가격 협상에 참여하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다수인 만큼 제약사마다 매일 1시간씩 협상을 했다고 합니다. 나흘간 4시간 협상이 이뤄진 거죠.

의보국이 제시한 가격이 얼마였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중국 매체들 사이에서도 보도가 엇갈려요. 중국적십자회 의료구조부장을 지낸 런루이훙(任瑞紅)은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에서 “중국 측 제시 가격은 700위안 전후였다”고 했는데, 현재 환율로보면 100달러 정도 선입니다.

1월9일 CNBC 방송에 출연한 앨버트 불라 화이자 CEO가 중국 내 팍스로비드 공급 방안에 설명하고 있다. /CNBC 캡처

현재 공급 가격 1890위안을 기준으로 하면 화이자 측에 63% 인하를 요구한 거죠. 현재 공급가의 3분의 1선으로 가격을 내리라고 한 겁니다. 중국 의보국은 가격 깎는 데 일가견이 있는 곳이죠. 과거 다국적 제약사 협상에서 최고 62%까지 가격을 내리게 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도 그 수준으로 가격 인하를 요구한 거죠.

1월9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주최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참석한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인데, (저개발국인) 중남미 엘살바도르보다 더 싼 가격에 공급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암시장 가격 ‘1박스 920만원’

미국에서는 팍스로비드 공급 가격이 1인분에 530달러에요. 화이자는 잘사는 선진국과 중간 소득 국가, 저개발국 등 세 그룹으로 나눠 팍스로비드 공급가를 따로 책정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유럽 선진국, 홍콩, 대만 등에 공급하는 가격은 1인분에 500~700달러 정도라고 해요. 저개발국 공급가격은 220달러라고 합니다.

중간 소득 국가는 구체적인 가격이 나오지 않는데 중국에 처음 공급한 가격이 2300위안인 걸 보면 300~400달러 선으로 보여요. 이런 기준으로 보면 중국이 1인분에 100달러를 부른 건 저개발국 공급가(220달러)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라는 게 화이자 측의 입장입니다.

중국 포털사이트 텅쉰왕은 작년 12월 팍스로비드의 암시장 가격이 1박스에 5만위안까지 올랐다고 보도했다. /텅쉰왕

중국 안팎에서는 최근 중국 제약업체가 화이자의 라이선스를 받아 값이 싼 복제약(제네릭)을 생산할 것이라는 보도가 계속 나왔어요. 불라 CEO는 여기에 대해서도 “전혀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다만, 중국의 한 제약업체에 팍스로비드 생산을 의뢰했고, 이 제품이 중국 소매시장에 계속 공급될 것이라고 했어요. 이미 수천명분이 들어갔고 최근 몇 주 사이에는 수백만명분이 추가로 공급됐다고 합니다. 팍스로비드 1인분 한 박스는 중국 소매시장에서 2300위안(약 42만원)에 팔리는데, 품귀 현상이 빚어져 암시장 가격이 5만 위안(약 920만원)까지 올라갔다고 해요.

◇협상 결렬, 다른 이유 있나

팍스로비드는 지금까지 나온 코로나 19 치료제 중에서는 가장 효과가 좋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증상이 나타나고 5일 이내에 복용하면 입원·사망 확률을 89% 줄여준다고 하죠.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작년에 내놓은 분석 자료에 따르면 복용한 국내 환자의 81%가 “증상이 호전됐다”는 응답을 했다고 합니다.

협상 결렬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인터넷에는 “코로나 19로 사망자가 폭증하는데 말끝마다 ‘인민지상(人民至上)’을 외치는 정부가 그까짓 가격 때문에 국민 생명을 포기하겠다는 거냐”는 항의의 글이 올라오고 있어요. 중국 관영매체와 ‘우마오당(五毛黨)’으로 불리는 중국 선전 당국의 댓글부대는 여기에 맞서 “팍스로비드의 효과가 별로이고 부작용도 많다” “다국적 제약사가 코로나 19 폭증을 틈타 폭리를 거두려 한다”는 식으로 선전전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중국 국가의료보장국은 1월8일 홈페이지에 올린 발표문에서 "화이자가 높은 가격을 요구해 협상이 결렬됐다"고 주장했다. /국가의료보장국

중화권에서는 중국이 코로나 19 감염 폭증과 사망 책임을 다국적 제약사에 미루기 위해 일부러 협상을 결렬시킨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국민에게 좋은 약을 공급하고 싶은데, 다국적 제약사들이 약값을 너무 높게 불러 어쩔 수가 없다”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는 것이죠.

팍스로비드가 널리 보급돼 효과를 보면 그것도 중국 입장에서는 부담입니다. 3년 동안 제로 코로나 정책 고집할 게 아니라 진작에 서방 백신과 치료약을 공급받았어야 했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겠죠. 이런저런 이유로 화이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가격을 제시해 협상을 결렬시켜 버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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