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오류투성이 한국전 ‘추모의 벽’
철자 오류·전사자 제외 등 잘못돼
美 국방부, 알면서도 수정엔 난색
우리 정부 적극 나서 바로잡아야
6·25전쟁에 참전해 오른팔과 다리를 잃은 윌리엄 웨버 미국 육군 대령은 예편 후 6·25전쟁을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 웨버 대령은 1951년 2월 강원도 원주 전투에 중대장으로 참전해 큰 부상을 입고도 전투를 지휘해 고지를 지켰다. 이후 1년여의 수술과 치료를 거쳐 현역에 복귀하고 1980년 대령으로 예편한 뒤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재단을 이끌었다. 1995년 미국 워싱턴 링컨기념관 인근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설립을 주도했고, 곧장 한국전 참전 미군과 카투사(주한미군 한국군지원단) 전사자 명단이 새겨진 추모의 벽 설립을 추진했다.
웹사이트가 참전용사와 가족들에게 알려졌고, 형제의 활동이 미국 CNN 방송에 소개됐다. 바커 형제는 밀려드는 전화와 편지, 이메일을 받았고, 참전용사들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다. 형제는 자료 수집과 연구, 제보 등을 통해 미국 국방부의 6·25전쟁 미군 전사자 명단 일부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차례에 걸쳐 국방부 등에 명단 오류를 지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할 바커는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수십년간 오전 5시에 일어나 오후 10시 잠들 때까지 6·25전쟁을 연구했다”며 “내 연구는 참전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는 신문지면 1면 기사와 별도 1개면을 할애해 바커 형제가 제기한 추모의 벽 오류 문제를 보도했다. 추모의 벽 명단 가운데 철자 오류가 1015개에 달하고, 6·25전쟁과 관련이 없는 군인 245명의 이름이 포함됐으며 정작 포함돼야 할 500여명의 이름이 빠졌다는 참담한 내용이다.
바커 형제의 작업이 추모의 벽 전사자 명단에 반영되지 않은 이유는 너무나 현실적이다. 웨버 대령과 바커 형제는 2014년과 2015년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 바커 형제가 기자에게 전한 당시 이메일 사본을 보면 웨버 대령은 “나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전사자 명단이 미국전쟁기념비위원회 명단보다 더 정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이번이 나의 마지막 전투다. 나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바커 형제에게 전사자 명단 협조를 요청한다. 바커 형제는 국방부 명단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하면서도 “전사자 명단은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웨버 대령과 바커 형제의 대화는 더 진전되지 못했고, 추모의 벽은 결국 국방부 전사자 명단을 토대로 건립됐다. 바커 형제는 당시 웨버 대령과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재단이 자신들 평생의 작업을 아무 대가 없이 받으려고 했다고 주장한다. 기념재단은 바커 형제가 명단 제공 대가로 20만달러를 요구했다고 맞서고 있다. 누구 일방을 탓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미 국방부가 추모의 벽 오류를 인정했지만 100장의 화강암 대리석에 새겨진 전사자 명단 수정 작업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한·미 동맹의 상징인 추모의 벽이 오류투성이로 남아서는 안 될 일이다. 참전용사들의 희생은 말할 것도 없고 웨버 대령과 바커 형제의 노력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추모의 벽 오류는 바로잡아야 한다. 한국 정부 역시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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