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환칼럼] “핵 개발 않으나 능력은 갖추고 있다”

2023. 1. 15.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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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 ‘자체 핵무장' 언급 파장
북핵 고도화에 韓도 ‘능력' 피력
박정희 때도 美 압력에 개발 중단
심경 같은 듯 다른 듯 여운 남겨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국내외에 파장을 낳았다. ‘북핵 위협이 더 심각해질 경우’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한국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자체 핵무장’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핵 능력은 갖추고 있으나 개발은 하지 않는다”는 말로 한국의 핵무기 개발 관련 입장은 사실상 정리되었다.

그동안 한국의 안보는 미국의 핵우산 하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핵무장이 가시화된 시점에서 단지 미국의 핵우산에 우리의 생존 문제를 맡길 것인가. 북한이 미국을 동시다발로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국을 위협하는 경우 미국이 위험을 감수하고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여 한국에 핵우산을 흔들림 없이 제공할 것인가. 이는 확신할 수 없다.
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전 한국국제정치학회장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은 미국의 핵우산 하에 있어도 핵 사용 결정에 함께 참여하는 미국과의 핵 공유 체제를 마련했고 일부는 자체 핵무장을 했다. 윤 대통령이 조건부 핵 개발을 언급한 가운데 13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재천명했다.

1980년대 중반 미국 대학원 유학 시절 기숙사에서 우연히 만난 물리학 박사과정 유학생으로부터 국방과학연구소(ADD) 내 핵무기 관련 부서의 해체에 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 ADD는 핵무기 개발의 산실이었는데 해당 부서 해체와 더불어 관련 자료와 장비를 모두 폐기함으로써 공중 분해되었다. 다수 연구원이 실직하고 그 유학생처럼 해외로 뿔뿔이 흩어지기도 한 것이다.

당시 신군부가 12·12 군사반란에 성공한 후 합법적 정부로 인정받기 위해 미국의 요구대로 핵 개발을 전면 중단하고 해당 조직을 붕괴시킨 것이다. 이는 사실상 ‘핵 자주권’의 상실을 의미한다. 1972년 착수된 것으로 알려진 핵 개발이 1973년 미국에 의해 감지된 후 1975년 핵확산금지조약(NPT) 비준국이 된 이래 숱한 미국의 압력에 버텨오다가 결국 상황이 종료된 것이다.

전 주한 미국대사이자 1970년대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 총책임자였던 도널드 그레그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 미국이 북한으로부터 어떠한 공격에도 남한을 보호할 것이므로 남한이 핵무기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점을 확언했다고 한다. 이는 금번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미 백악관 측이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고 한·미는 공동으로 확장억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논평과 유사한 설득 논리이다.

1970년대 핵 개발 논란과 금번 윤 대통령의 자체 핵무장 언급은 서로 다른 상황에 근거한다. 1970년대에는 미국의 닉슨 독트린에 이은 주한미군 철수 주장에 직면하여 자주국방을 위한 압축 성장 방안으로 핵무기 개발을 급히 추진한 것이다. 반면 윤 대통령의 조건부 핵무장 논리는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에 직면하여 미국의 대(對)한국 방위 공약을 재확인하고 한국의 핵무장 능력을 피력하는 시위(示威)성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는 국민 여론은 과반수로 반대 여론의 두 배가량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 요인으로 둘러싸여 있다. 핵우산과 확장억제는 미국이 동맹국의 핵무장 도미노를 막기 위해 고안한 것인데, 북한 김정은이 한국을 명백한 적(敵)으로 규정하고 50기 안팎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우리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미국이 북한을 핵무장국으로 인정하며 한국의 안보 이익을 무시하고 양국이 핵 군축 협상을 하게 될 경우 더욱 그러하다. “핵 능력은 갖추고 있으나 개발은 하지 않는다”는 박 대통령의 고뇌와 “핵 개발은 하지 않으나 능력은 갖추고 있다”는 윤 대통령의 심경이 같은 듯 다른 여운을 남긴다.

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전 한국국제정치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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