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해외입양 방치한 책임 인정하고 친가족 찾기 도와야”
부모·형제 찾아 온 방문객 지원
지금까지 5000명 숙박 등 도와
정보 유실 등 이유로 5%만 재회
공공기관 전담 인력 턱없이 부족
“정부, 시혜적 접근해서는 안 돼”
2003년부터 서울 종로구에서 해외입양인들의 쉼터 역할을 해온 ‘뿌리의집’이 오는 7월1일 임대계약이 만료돼 새 터전을 찾아 나선다. 개원 이후 20년간 약 5000명의 해외입양인이 뿌리의집 쉼터를 거쳐 갔다.
김도현 뿌리의집 대표는 2003년 스위스에서 해외입양제도를 공부하다 귀국한 이후 쉼터 운영을 도맡아왔다. 그는 지금까지의 여정을 “뿌리의집 시즌1이었다”고 평가했다. 장소가 바뀌더라도 해외입양인을 돕는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이 지난 11일 뿌리의집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쉼터를 방문하는 해외입양인의 주된 목적은 ‘원가족 찾기’이다. 원가족은 입양되기 전 가정을 말한다. 김 대표는 이들에게 숙박뿐 아니라 통번역 서비스, 해외입양인 모임 소개 등을 한다. 김 대표는 “방문객들의 평균 체류기간은 10일 정도다. 여행을 왔다가 잠깐 방문하는 분도 있고, 한국을 알고 싶다며 수개월을 지내시는 분도 있다”고 했다.
해외입양인 유원희씨(47)도 한 달 전부터 이곳에 머물며 가족을 찾고 있다. 1976년 5월 태어난 유씨는 5개월 뒤 네덜란드 가정에 입양됐다. 20여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부모를 찾고 싶다고 생각했다. 유씨는 이번에도 부모를 찾지 못한 채 설 연휴 뒤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유씨는 “쉼터에서 여러 입양인 친구를 사귄 것이 다행”이라며 “다음에 왔을 때도 쉼터가 운영되고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희망을 걸고 한국을 찾지만 가족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이 유씨처럼 가족을 못 찾고 본국으로 돌아간다. 김 대표는 “가족을 만나는 비율은 5% 안팎”이라고 했다. 원가족이 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으면 입양인이 그들의 행방을 알 방법이 없다. 원가족 정보 자체가 사라진 경우도 많다고 한다.
김 대표는 과거 무분별한 해외입양이 ‘원가족 정보 유실’의 주된 이유라고 했다. 2011년 이전에는 민간기관이 입양을 전담했다. 입양 심사 등 공적 개입이 느슨한 상태에서 해외입양이 이뤄졌다. 입양기관이 의도적으로 원가족 정보를 누락·삭제·유실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부모 없는 아이’로 분류되면 입양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한 아이를 해외로 입양보내면 4만달러(약 5000만원) 정도의 수입이 생겼다. 그래서 입양기관들이 무분별하게 아이를 입양보냈다”고 했다.
김 대표는 2011년 국내 입양인단체, 공익단체와 함께 입양특례법 개정에 힘썼다. 법 개정 이후 ‘입양판결제도’가 도입됐다. 지금은 입양의 최종 단계에서 법원이 입양 부모의 자격을 심사한다. 김 대표는 “민간이 주도해서 입양 절차를 진행하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며 “공공의 영역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했다.
공공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이 해외입양인의 원가족 찾기를 돕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김 대표는 “e메일로 문의하면 기관에서 15일 내에 답을 해야 하지만 전담인력이 2~3명에 불과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정부가 해외입양 문제를 시혜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정부도 오랫동안 해외입양제도를 사실상 방치한 책임이 있다”며 “과거 해외입양제도의 어두운 그늘을 인정하고 이들의 알 권리를 적극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사진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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