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64㎞ ‘쾅’…운전석이 멀쩡하네
앞부분 처참히 부서졌지만
더미 탄 운전석은 손상 없어
전방·후방 충돌서 안전 입증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 12일 전기차 아이오닉 5의 충돌 시험을 언론에 공개했다. 최근 연이은 전기차 화재 사고로 이목이 더 집중된 시점이었다. 지난 7일 주차돼 있던 테슬라 모델X에서 불이 났고, 9일 세종시에서 추돌 사고로 모델Y에서도 화재가 났다. 아이오닉 5 충돌 시험은 전기차 화재에 대한 오해는 일부 해소하고,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명확히 보여준 자리였다. 전기차는 정면과 후면 충돌에선 내연기관차보다 오히려 안전할 수도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약한 측면 충돌이나 아래쪽 둔턱 충돌 때는 화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배터리 화재 사고를 어떻게 대응할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 정면, 후면 충돌은 오히려 안전?
지난 12일 경기 화성 남양읍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 안전시험동에서 전기차 아이오닉 5 충돌 시험을 지켜봤다. 정지해 있는 고정체, 일종의 벽에 시속 64㎞로 부딪치는 시험이었다. 작용-반작용 현상을 고려하면 시속 64㎞의 속도는 느리다고 볼 수 없다. 움직이지 않는 물체와 충돌하는 건 차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시험은 한 차례 진행됐다. 아이오닉 5가 고정체인 벽에 부딪치자 ‘펑’하고 폭탄이 터지는 듯한 큰 소리가 났다. 현대차 측에서 미리 귀마개를 제공했던 이유가 있었다. 차량 정면을 기준으로 좌측 40% 부위만 충돌하는 시험이었다.
기자들에게도 시험 후 차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됐다. 아이오닉 5의 왼쪽 충돌 부위는 처참히 무너져 내려 있었다. 전면 유리창은 금이 가 있었고 왼쪽 타이어는 주저앉았다. 범퍼부터 부서져서 왼쪽 부분은 깊게 들어가 주저앉았다. 보닛은 뒤틀려 올라갔고 냉각수 같은 각종 용액들이 흐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인간 모습을 한 더미가 탄 운전석 부분은 멀쩡했다. 운전자가 있는 A필러부터는 변형이 없었다. 에어백이 터진 상태인 운전석을 둘러보니 내부 손상이 없었다. 범퍼부터 모터가 위치한 앞부분에 변형이 심각할수록 충돌 에너지가 흡수돼 운전석은 오히려 충격이 적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운전석 뒤쪽에는 여성형 더미를 뒀는데, 운전석이 멀쩡했던 만큼 뒷좌석도 이상이 없었다.
전기차는 정면 및 후면 충돌 시에는 상대적으로 더 안전할 수 있다. 내연기관차보다 엔진룸이 단출해서 충격을 흡수해줄 공간이 더 넉넉하다. 현대차 통합안전개발실장인 백창인 상무는 “전기차는 엔진룸 공간 측면에서 빈 공간이 있어서 충격흡수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문손잡이 튀어나오지 않고
측면 충돌 때 화재 위험성 커
낮은 턱 부딪침도 보완해야
■ 나오지 않은 문손잡이
충돌 시험은 전반적으로 훌륭한 결과를 냈다. 졸음운전이 아니라면 통상 충돌 직전에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이기 때문에 시속 64㎞ 이상으로 고정된 벽에 부딪치는 일은 흔치 않다. 충돌 후에도 운전석을 잘 지켜낸 셈이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첫 번째는 운전석 문손잡이가 팝업(튀어나옴)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기차는 테슬라처럼 팝업형 문손잡이를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오닉 5도 마찬가지다. 운전자가 차 열쇠를 갖고 다가가면 문손잡이가 나와서 열 수 있는 방식이다. 평소에는 편리한 기능이지만 사고 시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2020년 12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지하주차장에서 테슬라 모델X에 충돌사고로 화재가 났고, 손잡이가 열리지 않아 구조가 늦어졌다. 운전자는 결국 사망했다.
현대차그룹은 충돌 시에 문손잡이가 튀어나오도록 설계했다고 질의응답 시간에 밝혔다. 그러나 실제 시험에서는 팝업이 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에선 이 경우 문손잡이의 앞쪽을 물리적으로 누르면 뒤쪽이 튀어올라와 열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테슬라의 경우 화재로 전원이 나가버려 손잡이가 작동하지 않았다. 현대차나 기아는 팝업 기능은 안 되더라도 눌러서 열 수는 있게 돼 있어 본질적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다만 교통사고나 화재가 났을 급박한 상황에서는 어딜 눌러야 할지 잘 모를 수 있어서 현대차그룹은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두 번째 개선돼야 할 점은 측면 충돌 시 화재 위험성이다. 정면충돌 시험에선 좋은 결과를 보였지만, 측면에서 충돌됐을 경우 배터리 손상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느 정도의 변형이 배터리에서 일어나면 화재가 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배터리가 어떻게 구성돼 있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적게는 20% 많게는 40% 정도 변형이 되면 화재가 날 수 있다”고 답했다. 차체가 약한 측면에서 충돌하면 셀이 크게 변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같은 위험성은 배터리가 아래에 깔린 전기차 밑쪽이 낮은 턱에 충돌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차량 하부 과속 방지턱, 도로 연석 충돌 시 위험성이 높다는 의미다. 전기차 화재 위험을 줄이기 위해 대비해야 될 지점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런 다양한 형태의 사고에 대해서도 시험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실사고 조건을 반영해 화재 위험 요소가 있는 부위는 별도 시험을 하고 있고, 또 화물차 밑으로 차량이 들어가는 상황도 시험하며 복합충돌 상황도 시험 중”이라고 밝혔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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