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인구 절벽' 낮추는 이주민들‥"우리는 함께 살 준비가 됐나"

윤상문 2023. 1. 1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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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마지막 날, 충청북도 음성군의 버스터미널.

마치 명절을 맞은 것처럼 북적입니다.

그런데 누굴 마중 나온 게 아니라 다들 버스를 타러 나왔습니다.

[구마 쓰시마 / 네팔 출신] "‘해피 뉴이어’ (모임) 있어서 친구들을 만나서 재밌게 놀 거예요."

새해를 맞아 친구나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라비오 · 이스마일 / 방글라데시 출신] "<서울 가요?> 동서울 가요. <가서 뭐 하세요?> 가족들 거 선물 사요. 테크노마트."

충청북도 음성군.

점점 내국인 인구가 줄어들어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 곳입니다.

그런데도 인구 10만 명 선은 몇 년째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1년 6천 2백 여 명이었던 외국인이 10년 사이 2배 넘게 늘어난 덕입니다.

인구절벽이 가져온 이런 변화, 더 이상 음성군만의 이야기는 아니죠.

외국인 비율이 5% 이상인 기초자치단체는 57군데에 이릅니다.

올 한 해 스트레이트는 변화를 맞은 우리 사회 공존의 문제도 여러분과 함께 고민해보려 합니다.

다시 음성군으로 가보겠습니다.

한 비닐하우스 농장.

붉게 물든 쌈 채소를 수확하는 노동자들은 석 달 전 캄보디아에서 왔습니다.

[링호어 / 캄보디아 출신] <뭐가 제일 어려워요?> "괜찮아요."

한국인 인력은 아예 씨가 말랐습니다.

[김근식 / 시설농가 운영] "아예 (한국) 사람이 없습니다. 시설하우스 하는 데는 오질 않습니다. <왜요?> 힘들죠. 아무래도 농사라는 게 이게 또 하루 종일 또 엎드려서 해야 되고."

그러다 보니까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 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버섯 농장은 일하기가 좀 낫다고 해 가봤는데요.

역시 이주 노동자 없이는 일이 안 돌아갑니다.

[최인영 / 버섯농장 대표] "30명이 다 외국인이고… (한국 사람은) 오셔서 하시는 분이 없어요. 거의 배우려고 하시는 분들도 없고."

소규모 공장들이 밀집한 산업단지.

해 뜨기 전부터 대형버스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인력사무소에서 주변 공장들로 노동자들을 실어 나르는 겁니다.

대부분 이주 노동자들입니다.

[우즈베키스탄 노동자] <어디서 일하세요?> "한국말 몰라요.

공장마다 정식 고용한 이주 노동자들이 있지만

그래도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불법 체류자나 취업 불가능한 비자를 가진 외국인까지 가리지 않는 겁니다.

이주 노동자들에게 의존하는 건 생산 현장 뿐만이 아닙니다.

대소면은 음성에서도 이주민이 가장 많은 곳인데요.

번화가엔 외국인 손님이 끊이지 않습니다.

[로카 썬도스 / 네팔 출신] "오늘 일 없어서 저 먼저 와요. (네팔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따로 있어요. 네팔 사람들 머리 스타일, 이렇게 이렇게 <표정이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인데‥> [마음에 안 들어?]"

바로 옆 금왕읍의 무극 시장에 가봤습니다.

분식집 앞에 줄지어 선 손님들 대부분이 외국인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가.> 네 감사합니다."

[이명호 / 식당 주인] "외국인들 비위 잘 맞춰야 돼요. 손님 단골로 하려면 잘 해줘야 돼. <단골들 좀 있어요?> 있죠. 외국인 단골이 많았어요. 외국 (사람)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들어요. 여기는."

식당 안으로 들어가봤는데요.

미얀마에서 온 세 친구가 족발 안주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옆 테이블에서 소주를 마시던 어르신들께 외국인들과 뒤섞인 자리가 어색하지 않냐고 여쭤봤습니다.

[성낙유] "젊은 애들이 와서 도와주니까 얼마나 좋아. 나도 뭐야 자식같이 생각하고 손자같이 생각하고. 내가 나이가 70이 넘었거든. 그렇게 생각해야지 뭐"

정육점 사장님 역시 큰 손님은 이주 노동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 우즈베키스탄 청년은 소고기를 자주 사가는 단골입니다.

[이광진 / 정육점 주인] "자주 오는 친구예요. 이 친구는 이제 잘 먹는 게 소고기를 먹는데, 수입 소고기 갈아서 자기네들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해 먹는다고 고기 갈아 가는 거예요."

주말에 5일장까지 겹치면, 이곳 무극시장은 말그대로 '외국인 시장'으로 변합니다.

한달에 한번 장을 보는 외국인 손님들은 이제 '큰손'이 됐습니다.

[김용남 / 시장 상인] "그 사람들은 보통 사가면은 아무리 못 사가도 거의 한 5만 원씩?"

이주 노동자 없이는 지역 사회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 음성군 만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전체로 봐도 2019년부터 생산가능인구, 즉 15세 이상에서 65세 미만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는데요.

30년 뒤엔 무려 1천만명 넘게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이른바 3D(삼디) 업종 뿐만 아니라 좀 더 숙련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과 지역으로까지 퍼져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철희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한 5년이 지나고 나면 35세 이하의 젊은 노동 인력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줄어들거든요. 그렇게 되면, 지금 젊은 고졸 인력에 의존하는 그런 업종 같은 경우에는 사람이 부족해질 텐데, 저숙련의 3D 업종이 아니고요. 중간 정도 이상의 숙련을 필요로 하는 그런 업종들입니다."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규용 /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전보다는 좀 더 숙련된 자격 요건을 갖추도록 우리가 만들 필요가 있고요. 사회 적응이라든가, 지역사회 통합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될 거고."

우리 사회는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얼만큼 돼 있을까요?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의 한 원룸촌.

얼핏 봐선 외국인을 발견하기 힘든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러시아어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쓰레기를 무단투기하면 1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로사 / 키르기스스탄 출신 고려인] <안녕하세요> "나는 한국말을 모르요."

[박안나 / 러시아 출신 고려인]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 러시아?> "네 러시아."

김씨, 이씨, 박씨... 대부분 한국 성을 가진 고려인들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연해주로 이주했다가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 각지로 흩어진 이들의 후손인데요.

2004년 재외동포로 인정되면서 한국에 정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신창면 인구 2만 7천 여 명 중, 등록된 외국인은 8천 6백 여 명.

3명 중 1명 꼴입니다.

1년 사이 1천 명 가까이 늘었습니다.

그러나 정착만 했을 뿐 아직 이들의 삶은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분리수거 같은 생활 습관 차이마저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는 겁니다.

[유금미 / 충남 아산시 신창면] "많이 심각해요. 쓰레기봉투가 있다 싶으면, 거기가 쓰레기 버리는 곳이구나 하고 다 버리는 경우가 엄청 많았어요."

그래도 분리수거는 문화 차이의 문제라 소통만 잘 되면 해결이 될 겁니다.

신창면이 마주한 진짜 큰 고민거리는 따로 있다는데요.

바로 '교육'입니다.

한 아파트 앞에 어린이집 승합차가 도착합니다.

"안녕하세요."

신창면에서 가장 큰 이 어린이집엔 한국인보다 고려인 아이가 더 많습니다.

자기들끼리는 러시아말로 대화하다가도 한국어 수업이 시작되면 곧바로 집중합니다.

"우리, 밑에도 한 번씩 읽어볼게요. 손전등" <손전등!> "다시, 시작!" <손전등!>

한국 학부모들은 이런 환경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습니다.

[방소인 / 한국 학부모] "한국에서 한국인만 사는 게 아니고, 다양한 나라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같이 사는데,같이 살면서 계속 배워야 되고 써야 되다 보니까, (다른 문화를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하지만 이런 기회를 거치지 못하고 곧바로 초등학교로 가면 학생들 사이에 큰 장벽이 생깁니다.

고려인 학생 비중이 60% 가까이 되는 신창 초등학교.

교무실 입구에 러시아어 안내문이 붙어있습니다.

대부분 한국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교육 과정을 따라오기 힘들어합니다.

[박일생 / 신창초등학교 교사] "예를 들면 교과 놀이를 했을 때 아이들이 이해를 못 하다 보니까 그걸 설명하다가 끝이 나는 거예요."

가정 학습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들도 한국어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김마리야] "엄마 한국말 못해요. 잘 몰라요. 엄마 나 숙제한대요. 근데 엄마가 한국말 몰라서 못 도와줘요."

학교에서 따로 한국어 교육을 하지만 수업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고, 눈높이를 고려인 학생에게 맞추다 보면 한국 학생들이 수업에 흥미를 잃습니다.

이렇다 보니, 한국인 학생은 계속 전학을 가고, 고려인 학생은 계속 들어와서 불균형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대현 / 신창초등학교 교사] "(고려인) 학생들이 소수였을 때는 어떻게든 한국 학생들과 친해지려고 노력을 하고 한국말을 배우려고 노력을 했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 학생 수가 너무 많아진 상황에서는 그 필요성을 못 느끼니까 그냥 이렇게 단절된 채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거든요."

이들에 대한 한국어, 한국 문화, 생활 습관 교육까지 일선 학교에서 오롯이 책임지기엔 버거운 게 현실입니다.

[임태규 / 신창초등학교 교감] "학교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럽죠. 언어가 안 된 상태에서 교실로 들어오니까… 그런 부분을 좀 더 완충할 수 있는 그런 기관을 만들어서 그 아이들이 좀 더 준비된 상태에서 학교로 왔으면 하는‥"

언젠가부터 모여 살기 시작한 이주민들.

처음부터 이렇진 않았을 텐데요.

그럼 대체 한국인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음성군으로 다시 가보겠습니다.

[홍승주 / 충북 음성] "제 친구들 같은 경우는 직장을 다른 도시 쪽으로 잡은 친구들도 많고, 이 동네 자체가 대학교 자체가 별로 없다 보니까 젊은 층 인구도 없는 것 같고… 이제 바로 옆에 혁신도시가 생기다 보니까 다 그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충북혁신도시.

2010년대 중반부터 공공기관이 이전하면서 조성된 신도시입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혁신도시 상가를 찾은 사람들.

이곳에선 반대로 외국인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준영 / 충북 음성] "금왕(읍)이나 대소(면) 이런 데, 집 같은 게 외국인들이 살 수 있는 집 같은 게 많으니까, 여기(혁신도시) 또 집값도 비싸고."

[임민아 / 충북 음성] "(이곳이) 도시 같으니까 한 번씩 오게 되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는 (외국인들과) 이제 많이 같이 어울리는데 이쪽에서는 (어울릴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섞일 듯 섞이지 않는 사람들‥

같은 지역이지만,서로 분리된 채 살아 가고 있습니다.

물론 공존의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들도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고 소피아 / 음성외국인도움센터장] "제일 일차적으로 했던 일이 거리 청소였어요. 그래도 눈을 한 번은 마주치면서 '우리가 존재합니다' 그러한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전한 거죠. 어떤 분들은 참외도 주는 분도 있으시고 그렇게 변하더라고요."

"이땅에 와 있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 이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그런 좋은 공동체‥"

필리핀 주민을 위해 영어미사를 따로 하고 있는 성당에선, 조금씩 한국 교인과 이주민들 사이의 접점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최법관 / 대소성당 신부] "영어도 배우고 외국 친구들 만나고 싶어서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이주민들을) 성당에 초대해서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거나, 무료 의료 진료를 한다든가 이런 활동들…"

이런 현실을 정부도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는 이민청 신설 등 이주민들을 통합 관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주 노동자의 숫자를 정부가 정하는 '고용 허가제'를 개편하겠다며 발표한 자료를 볼까요.

'준숙련인력'을 양성해 기존 최대 9년 8개월이던 체류 기간을 10년 이상으로 늘리고, 이주 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업종도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악탈 / 방글라데시 출신] "아이고, 오랜만이에요. 아이고 오랜만이야."

방글라데시에서 온 칸 씨 가족이 모처럼 부인의 오빠 가족과 만났습니다.

정성스레 차린 방글라데시 음식을 나눠 먹습니다.

[악탈 / 방글라데시 출신] "맛있어요?”

[마리샤 / 방글라데시 출신] "(무슨 말인지) 몰라요"

[악탈 / 방글라데시 출신] "한국에 처음 왔으니까 한국말 잘 못해요."

각각 9년 전과 10년 전 '고용 허가제'를 통해 홀로 한국을 찾았던 두 사람.

[악탈/방글라데시 출신] "처음에는 나 혼자 살았으니까, 가족 생각 많이 했어요. (지금은) 나 기분 진짜 진짜 좋아요."

얼마 전 '숙련기능인력' 비자를 받는 데 성공하면서 이제는 가족과 함께 한국에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정부가 발표한 대책이 시행되면 아마 이들처럼 가족과 함께 코리안 드림을 꿈꾸게 될 이주 노동자들이 더 많아질 겁니다.

[칸 / 방글라데시 출신] "앞으로 5년 동안 (더) 일하고 있어요(싶어요). 그다음에 돈 벌어서 집에 가서 건물 하나 만들어서 옆에 하나 가게도 만들고 싶어요."

하지만 현장의 활동가들은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 빠져있다고 지적합니다.

바로 '차별 방지 대책'입니다.

스리랑카에서 온 지 벌써 13년이 된 박소윤 씨.

모국이 가난하다고 무시를 당한 동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어 왔습니다.

[박소윤 / 스리랑카 출신 결혼이민자] "우리 농장에 다니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분들한테는 '너는 이렇게 쌀도 여기(한국) 와서 먹는 거야?' 그런 것까지 얘기 몇 번 했대요.'너 나라는 이거 신발 없어요?'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하나의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씨는 한국 국적까지 취득했지만, 여전히 외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차별을 느끼고 있습니다.

[박소윤 / 스리랑카 출신 결혼이민자] "면접 때문에 전화했더니 ‘죄송한데요. 우리는 외국인 사람 안 뽑아요, 내국인만 (뽑아요)’ ‘아니 우리는 [한국 국적] 갖고 있는데’ 했더니, ‘아니. 당신은 아직 [외국인]이야’ 그런 얘기까지 내가 들었어요."

소년병으로 징집되기 전 예멘에서 탈출한 모하메드 씨.

'인도적 체류자'로 인정받은 뒤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직장 동료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공장 직원 A씨] "여기 쳐다보지마. 그리고 여기 앉아 있지마. 이 XX야 눈 똑바로 뜨지 마. 카드 찍을 때 외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넌 알아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이 XX야." <왜 지금 나쁜 말 이야기해요, 나한테?> "그니까 눈에 보이지 말라고 XX야."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공장 사장] "여기는 인종 차별이라는 말조차도 없는 나라야"

[직장 동료 B씨] "인종차별이니 뭐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껄이지마. 알았어? 너는 그냥 네가 스스로 그냥 기분이 나빠서 그만두는 거야. 알았어?"

변호사의 도움으로 방법을 찾아봤지만 결국 할 수 있었던 조치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엔 인종 차별을 처벌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삼열 /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 “인종차별에 대해서 아무런 정책도 없는 정부가 이민청을 만든다? 이건 이미 1층을 만들지 않고 10층에 방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바닥을 다지지 않았는데. 바닥을 다지지 않았는데. 인종차별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이주민 정책을 만든다고 한다면, 그것은 허상입니다.”

"우리는 노동력을 불렀는데, 사람이 왔다"

‘나의 가족 나의 도시’란 독일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영화는 튀르키예에서 독일로 건너 온 이주노동자 가족의 고된 삶을 다뤘는데요.

독일은 1950년대부터 저임금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주 노동자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을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독일에 체류하는 외부 노동력으로만 취급하는 정책은 20세기 말까지 남아있었습니다.

이민자에 대한 혐오가 국가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고요.

지금 우리 사회는 독일의 이런 과거를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삼열 /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 "필요한 인력을 손쉽게 충당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이주 노동자를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의 산업현장에서는 그렇게 희망이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주 노동자로 충원을 하겠다'라고 하는 식의 땜질식 처방이 계속되는 것을 20년 가까이 지켜보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런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겁니다."

윤상문 기자(sangmoo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straight/6445865_289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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