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첫 입맞춤’… 함께할 5년의 하모니 기대

이강은 2023. 1. 1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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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즈베던 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 데뷔
이틀간 집중 리허설 뒤 무대에
브람스 교향곡 1번으로 첫 인사
2부 바그너·‘박쥐’ 서곡 등 선봬
힘차고 강렬한 연주 관객 갈채
세밀한 표현력 부족은 아쉬워
“단원들 간 끈끈한 유대감 형성
세계적 오케스트라 발전 돕겠다”

강렬했지만 달달함이 조금 아쉬웠던 첫 입맞춤!

‘오케스트라 조련사’로 불리는 야프 판즈베던(63) 뉴욕필하모닉 음악감독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첫 호흡을 맞춘 연주회에 대한 감상평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지난 12∼13일 서울시향의 올해 첫 정기연주회가 열린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은 이틀 연속 많은 관객이 들어찼다. 내분 사태와 단원 부족, 팬데믹 등이 겹치며 오랜 침체기를 겪은 서울시향과 차기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판즈베던의 하모니가 어떨지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이다. 당초 지휘봉은 지난해까지 서울시향 음악감독을 맡은 오스모 벤스케가 잡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벤스케가 모국 핀란드에서 낙상 사고로 수술하는 바람에 지휘자를 바꿔야 했고, 판즈베던이 예정된 일정까지 취소한 채 한국행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세계 최고 명문악단인 네덜란드의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RCO) 연주를 마친 후 지난 9일 서울로 날아왔다. 연습할 기회가 이틀밖에 없었음에도 판즈베던은 박력과 절도 있게 악단을 이끌었고 단원들도 악기군별 앙상블에 더욱 신경 쓰며 집중력 있게 연주했다.
‘오케스트라 조련사’로 불리는 야프 판즈베던 뉴욕필하모닉 음악감독이 지난 13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올해 첫 정기연주회에서 열정적으로 지휘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이들은 첫 합작품으로 베토벤의 뒤를 이은 음악 거장이자 맞수였던 바그너(1813∼1883)와 브람스(1833∼1897)의 곡을 내세웠다. 13일 공연도 전날과 같이 브람스 교향곡 1번으로 시작했다. 브람스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거인(베토벤)의 발소리를 의식하면서 완성하느라 21년이나 걸린 대작이다. 당대 최고의 지휘자 한스 폰 뷜로가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9번(합창)에 이은 ‘제10번 교향곡’이라고 칭송한 이 곡을 판즈베던은 힘차고 강렬하게 펼쳐 보였다. 한국인 청중이 대체로 선호할 만한 스타일이어서 관객 대다수가 갈채로 화답했다. 다만, 주선율에 힘을 강하게 주면서 브람스 교향곡 1번의 다채로운 음악적 색채를 세밀하게 그리지 못해 아쉬웠다는 평도 적지 않았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는 “현악기군을 중심으로 치밀한 앙상블과 부피가 큰 근육질 소리가 나온 건 매력적이었다”면서도 “브람스 교향곡 1번의 경우 주선율만 강조돼 그 곡 안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가 비교적 무심하게 지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2부에선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전주곡에 이어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의 오페레타 ‘박쥐’ 서곡이 연주됐다. 특히 두 오페라 곡의 경우, 홍콩필하모닉과 바그너의 ‘링 사이클’ 실황 연주를 녹음하는 등 바그너에 정통한 판즈베던답게 깊이 있고 맛깔스럽게 들려줘 호평을 받았다. 바그너의 ‘링 사이클’은 바그너가 26년에 걸쳐 만든 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4개 에피소드(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를 묶은 것이다. 이어 연주한 힘 있고 활기찬 음색의 ‘박쥐’ 서곡과 앙코르곡인 드보르자크(1841∼1904)의 ‘슬라브 무곡’ 제8번도 새해에 어울리는 생동감을 안겼다.

이날 연주는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렸겠지만 판즈베던과 서울시향의 첫 만남이었던 데다 리허설 기간이 짧았던 점 등을 고려하면 향후 기대해볼 만한 인상은 남긴 것으로 보인다. 판즈베던은 차기 음악감독 자격으로 오는 4월 제1 바이올린 악장 등 서울시향 신규 단원 채용 평가에 참여한 뒤 7·11·12월 서울시향과 함께 차이콥스키, 베토벤, 쇼스타코비치 등의 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이후 내년 1월 공식 취임해 5년간 서울시향을 집중 조련하게 된다. 서울시향 안팎에선 뉴욕필과 함께 이끌고 있는 홍콩필하모닉이 아시아 교향악단 최초로 ‘2019 올해의 오케스트라’(그라모폰 선정)가 되도록 한 그의 지도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판즈베던은 앞서 12일 음악감독 임명장 수여식에서 “서울시향과 연습을 해보니 세계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며 “훌륭한 오케스트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주자의 질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4월 신규 단원 채용 오디션에서 뛰어난 실력의 단원을 선발하고, 단원 간 강한 유대감을 형성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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