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택배 노동자의 외침 "누군가는 일하다가 죽어나가고 있다"
부산 대리점 수수료 20% 공제... 전국 평균에 비해 높아
부산의 업무상 질병 인정률은 전국 인정률보다 낮아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여러분은 택배를 자주 시키시나요? 라노는 자주 시키는 편입니다. 요즘은 택배로 배송이 안 되는 것이 없죠. ‘당일 배송’을 약속하며 새벽같이 택배를 배송해 주는 곳도 적지 않습니다. 택배 없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편안한 삶 뒤에는 택배 노동자의 고충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피곤해 죽을 것 같다”는 말 자주 하나요? 직장을 다니다 보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한 날도 있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이 많은 날도 있지요. 하지만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라노가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에 대해 여러분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8일 쿠팡 물류창고에서 야간 근무를 하던 협력업체 직원인 6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남성은 이날 첫 출근 뒤 새벽 1시 30분부터 4시까지 물품 분류 작업을 하다가 몸이 좋지 않다고 밝혀 협력업체 관리자 조기 퇴근을 권유 했고, 이후 휴게실에서 쉬던 중 화장실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사망했습니다.
쿠팡뿐만 아니라 택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과로사도 적지 않게 일어납니다. 2021년 한 해에만 과로사로 사망한 택배 기사가 22명이나 됩니다. 이는 과로사로 인정된 인원만 집계한 것으로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대부분의 택배 기사는 업무를 하는 도중 숨이 차고 심장이 조이는 듯한 통증을 느끼거나, 현기증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택배 기사들의 과로 원인은 ‘장시간 노동’입니다. 택배 기사는 하루에 40km 씩 이동하며 약 300개의 택배를 배송합니다. 월평균 5000~7000개의 택배가 한 명의 택배 기사에 의해 배송이 되는 것입니다. 택배 기사들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 하루 종일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택배 기사의 하루는 아주 일찍 시작됩니다. 그날 배송해야 하는 택배들이 오전 7시에 택배 터미널 분류 레일을 타고 내려오기 때문에 그전에 분류 레일 앞에 서있어야 합니다. 택배를 분류하고 차량에 물건을 적재하는 작업을 마치면 오후 1시입니다. 택배 배송은 그때부터 시작인 것이죠. 터미널에서 출발해 오후 2시부터 배송을 시작하면 오후 7시가 넘어서도 배송을 마치지 못할 때가 허다합니다. 하루에 12시간 노동이 불가피한 때가 자주 생긴다는 뜻입니다. 택배 기사들은 과로사의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습니다.
택배 기사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택배 분류 인력이 제대로 배치되고 있지 않아 택배 분류부터 배송까지 택배 기사가 전부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1년 ‘사회적 합의’로 택배 현장에 분류 작업만 담당하는 분류 인력이 배치되고 있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택배 현장은 분류 인력이 제대로 배치되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택배 기사는 월차나 병가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몸이 아파도 일터로 내몰려야 합니다. 정말 일을 하지 못할 것 같은 때에는 사비를 들여 퀵서비스나 용차를 불러 담당해야 하는 택배를 처리해야 하죠. 그렇게 하면 택배 기사가 하루에 받는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써야 하기 때문에 택배 기사들은 아파도 일을 하러 나가게 됩니다.
택배 기사가 일을 좀 줄이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배송 건당 수수료가 터무니없이 낮기 때문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을 줄일 수 없습니다. 택배 기사는 보통 회사와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대리점을 통해 계약합니다. 한 달 동안 일한 배송 물량에 따라 배송 수수료를 대리점에서 받는데, 이때 대리점이 관리비 명목으로 대리점 수수료도 공제하죠. 시간이 갈수록 오르는 물가 때문에 유류비와 차량 유지·수리비 등 택배 기사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입니다.
게다가 부산만의 문제도 있습니다. 부산은 대리점에서 공제해가는 대리점 수수료가 전국 평균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이죠. 가까운 울산이나 경남, 광주 같은 경우 적게는 5%, 보통은 7~8%, 많아도 10% 정도를 공제합니다. 그런데 부산은 20%나 공제합니다. 그나마 나은 대리점은 15%를 공제하는 수준입니다. 예를 들어 한 달 동안 고생해서 500만 원의 배송 수수료를 벌었다면, 대리점은 가만히 앉아서 20%인 100만 원을 떼가고 택배 기사에게는 400만 원만 준다는 뜻입니다. 대리점에게 고율의 수수료를 공제당하니 더 많이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산의 택배 기사들은 같은 수입을 벌기 위해 훨씬 많은 노동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과로사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까요? 과로사는 과중한 업무로 인해 고혈압 동맥경화증 등 질병이 악화돼 뇌출혈 뇌경색 지주막하출혈 등의 뇌혈관 질병, 심근경색증,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증상 발생 전 24시간 이내 급격한 업무 환경 변화 ▷발병 일주일 이내 업무량이나 시간이 이전 12주간 일주일 평균보다 30% 이상 증가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일주일 평균 60시간 초과 ▷발병 전 4주 동안 업무시간이 일주일 평균 64시간 초과 등을 기준으로 과로사냐 아니냐를 결정합니다.
과로사 인정률은 높은 편일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택배 회사들은 택배 기사가 과로사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회피하기 위해 각종 꼼수를 부리기도 합니다. 원래 지병이 있었다고 주장하거나 과음을 자주 했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다 등 장시간 노동 때문에 사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죠. 게다가 업무상 질병 인정률은 부산 질병판정위원회가 전국 최하위입니다. 과로사 원인이 되는 질병인 ‘뇌심혈관계질병’의 부산 승인율은 27.4%로 전국 승인율 38.6%보다 낮습니다. 10명 중 3명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과로사 인정률이 높은 것보단 과로사가 일어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더 좋을 텐데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숙견 상임활동가는 기존 제도를 보완·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특수고용현태종사자인 택배 노동자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넣어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죠. 주52시간제를 정부가 나서서 지속·확장해야 하며, 택배 노동자의 산재보험 혜택을 높이고,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를 다른 노동자와 똑같이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활동가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는다면 택배 노동자들이 사측에 요구하기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국택배노동조합 권용성 부산지부장은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을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 법은 현재 주5일제가 명시돼있지 않고, 택배 분류 인력에 대한 강제조항도 없습니다. 택배 기사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주 6일을 근무하며 한 달에 네 번밖에 쉬지 못하죠. 법 개정으로 주5일제를 정착시키고 법을 어겼을 때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권 지부장은 택배 기사의 과로사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택배 요금을 인상했지만, 그 비용이 오롯이 택배 기사에게 가지 않고 본사나 대리점장의 이윤을 추구하는데 이용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인상된 택배 요금이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에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권 지부장은 “당연하게 지켜져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고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또, 부산지역만 과도할 정도로 높게 공제되는 대리점 수수료를 전국 평균 수준(13~14%) 이하로 낮춰야 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더 많이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한 가장 실효성 있고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죠.
권 지부장은 과로사는 개인이 건강관리를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노동 조건과 환경 때문이라는 기업의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문제를 인식하고 제도를 개선해야만 과로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는 “기업이 비용을 투자해 택배 노동자가 과로하지 않아도 정당한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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