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지각 등장’ 볼턴...목소리만은 ‘쩌렁쩌렁’
실력은 여전했지만
등장 전 게스트가 2시간 끌어 논란
“제겐 굉장히 특별한 곡입니다. 전 세계 1위(World best)를 한 곡이죠.”
14일 밤 서울 고척스카이돔 무대. 백발의 마이클 볼턴(70)이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를 불렀다. 그에게 1990년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3주 정상,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팝 보컬 퍼포먼스상을 안겨준 명곡. 마이크를 넘어 고척돔 천장까지 뚫을 기세로 쩌렁쩌렁 울리는 볼턴의 목소리는 여전히 튼튼했고, 특유의 감미로운 음색으로 1만여 관객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다. ‘오늘 밤 들은 소식을 믿기 어려웠죠’라는 가사처럼 일흔의 소리인 게 믿기지 않았다.
9년 만의 내한, 본래 지난해 11월 개최였지만 직전 벌어진 이태원 참사 추모의 뜻을 담아 연기한 공연이었다. 오후 8시쯤 직접 기타를 메고 첫 곡 ‘Stand by me(원곡 벤 E 킹)’로 공연 문을 연 볼턴은 “이태원 사람(사망자)들을 위한다”며 1분간 묵념했다. ‘When a man loves a woman’ ‘Dock of bay’ ‘said I loved you but I lied’ ‘Steel bars’ 등 이날 총 10곡을 술술 불러냈다. 세계 앨범 판매량만 7500만장, 그래미상 2개, 빌보드 차트 톱10 음반 8장…. 한 곡 한 곡이 볼턴이 걸어온 전설적인 경력을 상기시켰다. 볼턴은 여러 차례 관중에게 마이크를 돌려 떼창도 유도했다. 하지만 객석은 고요했다. 1시간가량 짧은 공연 끝엔 앙코르 요청도 전무했다. 그러기엔 관객들이 너무나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관객은 볼턴을 보기 위해 2시간을 기다렸다. 당초 예고됐던 볼턴의 공연은 14·15일 오후 6시, 100분간. 하지만 입장 지연으로 15분 늦게 시작된 이날 공연은 게스트로 출연한 가수 유미가 40분간 5곡을, 정홍일과 그가 속한 헤비메탈 밴드 바크하우스가 40분간 8곡을 불렀다. 여기에 두 게스트와 볼턴 무대를 위한 각각의 악기와 연주자 교체, 사회자의 각 게스트 소개 등에 30분 넘게 쓰였고, 볼턴은 본래 공연 종료 시각보다 30분 지난 오후 8시에서야 무대를 시작했다. 결국 게스트 공연 사이사이 “완전 사기야!” “볼턴 어딨어!” 등 고성이 쏟아졌다. 기다림을 못 버틴 관객 일부는 퇴장했다.
관객 분노를 잠재운 건 오로지 ‘블루아이드 솔(백인이 부르는 흑인 음악 솔)의 대가’로 불리는 볼턴의 목소리뿐. 이 수식어는 인종차별의 여지가 있지만, 볼턴의 독보적인 음색에 대한 찬사로 오래 쓰였다. 1979년 메탈그룹 ‘블랙잭’ 보컬로도 활동한 볼턴은 다소 거칠면서도 시원하게 뻗는 고음과 R&B 영혼에 최적화된 매력적인 중저음을 동시에 가진 드문 뮤지션. 음색 좋기로 이름난 가수 임재범이 1991년 자신의 솔로 데뷔곡 ‘이 밤이 지나면’의 홍보 문구를 ‘한국의 마이클 볼턴’으로 썼을 정도다.
그만큼 이날 공연은 마치 극악스러울 만큼 오래 기다려야 하는 맛집처럼 극과 극의 평가를 받았다. 경기도 안양에서 온 윤여길(59)씨는 “공연 운영이 너무 미흡했다. 애초에 합동 공연에 볼턴 깜짝 출연으로 홍보했어야 하지 않냐”고 냉소했다. 반면 이만행(47)씨는 “못 본 사이 머리가 하얗게 세 노래할 체력이 될지 걱정됐는데, 마네킹을 세워놓고 음원을 튼 게 아닐까 오해할 만큼 잘 불러 감탄했다”고 했다.
공연 직후 주최사 KBES 측은 공연 지연 사과문을 게재했다. 15일 공연 땐 게스트 무대와 악기 교체 시간을 약 1시간 10분, 전날보다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관계자는 “14일 리허설 때 공연 내용이 갑자기, 많이 바뀌어 운영과 대처가 미흡했다. 볼턴은 (공연장에 늦게 도착한 게 아니고) 공연 내내 무대 뒤 대기 중이었지만, 예상보다 앞의 게스트 공연 진행과 악기 교체가 오래 걸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터파크 티켓의 이 공연 평점은 5점 만점에 2점대로 떨어졌고, 일부 관객은 환불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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