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탄소국경세 비상에 … 정부, 온실가스 감축 체계 개편
상반기까지 가이드라인 마련
韓 부담액 2035년 4700억으로
2026년 인증서 구매 의무화도
한화진 "탄소 감축이 경쟁력"
유럽연합(EU)이 수입 공업품에 '탄소 국경세'를 물리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본격화하면서 정부가 국내 기업을 위한 온실가스 배출량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다. 기업이 탄소 배출량 보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도록 공식적인 보고 체계를 만들게 된다. 유럽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불리는 CBAM으로 EU 수출 규모가 큰 국내 철강·알루미늄 기업 등이 지게 될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15일 정부에 따르면 환경부는 이르면 이달 CBAM 관련 기업 지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올 상반기 중 CBAM 대상 품목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CBAM은 EU로 수출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에 따라 부담금을 매기는 것이다. 적용 품목은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등 6가지다. 오는 10월부터 관련 업체들은 현지 수입업체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고해야 한다. 2026년부터는 CBAM 인증서 구매 의무도 생긴다.
앞서 EU 집행위·이사회·의회는 지난해 12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CBAM 법률안에 합의했다. 정부는 EU가 올해 CBAM의 세부 절차를 명시한 법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기후변화 싱크탱크 E3G에 따르면 CBAM 시행으로 한국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2026년 9600만유로(한화 약 1322억6000만원)에서 2035년 3억4200만유로(약 4711억7600만원)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품목은 철강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EU 철강 수출 금액은 43억달러(약 5조6000억원)에 달하고 알루미늄은 5억달러, 시멘트는 140만달러, 비료는 480만달러 등이다. 이에 철강업계에서는 한국 기업의 불이익을 최소화하도록 제품의 배출량을 체계적으로 측정할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져왔다. 배출량을 따져 수입업체에 보고하는 과정에 제대로 된 산정·보고·검증(MRV)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MRV는 세금 책정의 기준이 되는 탄소 배출량을 산정해 보고하고 검증하는 체계다.
이에 환경부는 조만간 TF 등을 통해 MRV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기 위한 논의에 착수할 방침이다. MRV 기반을 마련해 국내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활동 검증 결과가 EU에서 중복 검증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환경부 목표다. 국내 기반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배출량 보고 시 해외 업체를 활용해야 하는데, 이 경우 막대한 비용은 물론 영업 비밀 유출 위험에 대한 부담이 따를 수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기술적 요소를 분석해 최대한 빠르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소·중견기업에는 MRV 관련 교육·상담도 제공한다.
환경부는 또 정기적으로 간담회를 열어 CBAM 시행에 따른 기업의 애로사항을 꾸준히 듣기로 했다. 올 하반기부터는 CBAM 관련 기업 문의사항을 받고 정보를 제공하는 '헬프 데스크'도 운영에 들어간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EU CBAM은 온실가스 감축이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의제가 됐음을 보여준다"며 "우리 기업이 CBAM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온실가스 감축이 세계적인 추세인 만큼 국내 녹색기업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환경부는 오는 19일 민관 공동 수출 지원 협의체인 '녹색산업 수출 얼라이언스'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정부가 민간기업과 소통하며 국내 녹색기업의 해외 진출 애로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협의체다.
환경부는 또 녹색산업 예비 창업자와 창업 초기 기업을 발굴해 판로 개척 자금과 상담 등 지원을 늘릴 계획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2억원이던 관련 예산을 올해 156억원으로 확대 편성했다. 배출권거래제 개편에도 나선다. 환경부는 올 상반기 중 배출권거래제 고도화 방향을 발표하고, 이를 반영해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을 조기에 수립할 방침이다. 배출권거래제 고도화 방향에는 배출 총량 강화나 유상할당 확대 등이 담길 예정이다.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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