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위정책 변화, 민의는 어디로 가는가

한겨레 2023. 1. 1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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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2월16일 ‘적 기지 반격 능력’을 명시한 국가안보전략을 각의(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뒤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세계의 창] 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끝을 맺지 못한 채, 새해를 맞았다. 신년 인사로 ‘올해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란다’는 덕담을 주고받곤 하지만, 2023년 많은 일본인은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큰 불안을 안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처럼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불안이 일본에선 방위력 증강의 근거가 됐다. 그리고 지난달 16일 기시다 후미오 정권은 앞으로 5년 동안 방위비를 2배 늘려 국내총생산(GDP)의 2%로 하고, ‘적기지 공격 능력’(반격 능력)을 보유하는 내용이 담긴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을 결정했다.

일본이 방위력을 강화하는 그 자체는 여론의 지지가 높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방위력 강화에 ‘지지한다’는 응답이 55%로 ‘지지하지 않는다’(36%)보다 19%포인트 높았다. 두배나 늘어나는 방위비로 무슨 장비(무기)를 갖추고, 자위대 편성은 어떻게 바꿔나갈지에 관한 구체적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는 국민으로선 거액의 방위비는 자신을 지켜주는 ‘부적’과도 같을 것이다.

국민이 진심으로 안보에 우려하고, 방위력 강화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이를 위한 재원 마련 문제도 국민적 합의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방위비 증액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하는 경우, 여론의 반응은 복잡해진다. 일본 민영방송 <티비에스>(TBS)가 이달 초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방위비 증액에 찬성이 39%, 반대가 48%로 집계됐다. 앞서 실시된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와 반대로, 반대 의견이 찬성보다 10%포인트가량 많았다. 이는 지난달 정부·여당의 정책 논의에서 방위비 재원 마련을 위해 조만간 1조엔을 증세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티비에스> 여론조사에서는 방위비 증액을 위한 증세에 71%가 반대했다. 찬성은 22%에 그쳤다.

방위정책을 둘러싼 여론 움직임을 보면, 일본 국민이 직면한 이런 정책과제에 관해 냉정한 논의가 어렵다고 느껴진다. 정치란 국민 앞에 놓인 공통된 어려움이나 과제를 국민 협력을 통해 해결하는 활동이다. 현재 일본 국민 앞에는 인구의 급속한 감소, 경기 침체, 과학기술 발달의 지연, 안보환경의 악화 등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다. 다른 한편 일본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2배를 넘어서는 등 선진국 가운데 최악이다. 또 지난 연말 이후 국채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서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과 저금리 유도라는 정책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마음껏 국채를 발행할 수 있는 시대는 곧 끝날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갖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다. 하지만 막연한 불안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방치하면 일본의 몰락은 계속될 뿐이다. 인구 감소나 경제침체는 원인이 있다. 지금 일본에는 불안을 초래하는 원인을 정확하게 인식한 뒤 비용·효과를 따지고 합의된 정책에 한해 재정을 투입하는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일본의 오래된 ‘하이쿠’(일본 시문학의 한 종류)에는 ‘유령인가 하고 잘 보니 마른 억새더라’는 내용이 있다.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성이 필요하다. 지식과 문화를 가볍게 여기는 일본의 정책은 근거 없이 공포를 조장하고 정부는 불안한 분위기를 틈타 효과를 알 수 없는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

민주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증세에 대한 반발이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방위 증세’에 대한 반발이 큰 것은 건전한 민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한 돌파구가 될지는 분명하지 않다. 지금 우리는 젊은이들과 아이들에게 어떤 사회를 남기고 싶은지, 그것을 위해 얼마나 큰 비용을 지불할 결의가 돼 있는지 추궁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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