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이재명’이 돌아오려면

김태규 2023. 1. 1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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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마이크 위치를 조절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김태규 | 정치팀장

지난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새해 기자회견에서 “이재명다움을 잃었다는 비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사이다 김빠졌다’ 이런 지적을 하시는데, 다수당의 대표로서 책임감과 무게 때문에 함부로 행동하지 않으려 한다. (…) 당 안에 제 개인적인 의지나 욕구를 그대로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검찰을 향한 발언에는 날이 서 있었다. ‘검사 신상공개법’에 대해 “공직자들이 공식적으로 하는 업무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대신 행사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정책실명제도 하고 행정공무원들은 이름표 붙이고 조직도도 다 공개한다. 판사들도 판결문에 이름 다 공개한다. 근데 검사만 왜 자기들이 하는 일을 공개하면 안 되는가”라고 말했다. “자신이 한 행위를 드러내는 것이 ‘조리돌림’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신들 행위가 부당·부정행위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의 발언은 여전히 알싸했다.

하지만 이 대표 발언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본인이 검찰 수사 대상인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일 터다. 검사 신상공개의 정당성을 주장해도 이는 자신을 향한 수사의 예봉을 꺾으려는 개인적인 목적으로 풀이되고 그렇게 발언은 힘을 잃는다.

이 대표가 ‘본인 이야기’를 하면서 김이 빠진 사례는 여럿이다. 그는 지난해 12월13일 ‘국민 속으로, 경청투어’를 시작한다며 천안 중앙시장을 방문했다. 최측근인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이 구속기소되고 4일 뒤였다. 그는 “우리 사회에 아무도 모르게 공포감이 젖어들고 있다”며 “국가가 혹시 나를 때리지 않을까, 나를 꼬집지 않을까 걱정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로 두려움을 느낄 법한 본인 이야기였다. 대중이 체감하는 정서와 차이가 나면 더 많은 지지와 동의, 공감을 끌어내기 어렵다.

지난 13일 당원 대상 유튜브 방송에선 “적이 몰려오는 시기에 꼬집고, 침 뱉고, 안 보이는 데 발로 차고 하는 것을 줄여야 한다”, “우리끼리 싸우는 것은 이적행위”라고 말했다. 성남에프시(FC) 사건으로 기소가 임박하고 당헌 80조에 따라 직무정지 여부를 심사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당의 단합’을 강조했지만 ‘기소를 계기로 나를 흔들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기 전 이 대표는 검찰 수사가 아닌 민생 메시지에 집중했다. 하지만 수사가 정점을 향해 가면서 관련 발언은 부쩍 늘고 있다. 이 대표는 새해 기자회견에서 “사법 리스크가 아니라 검찰 리스크라고 말해달라”고 했다. 검찰을 필두로 한 ‘수사권 남용’을 부각하려는 의도이지만 ‘검찰 리스크’라고 표현해도, 수사 상황에 따라 자신과 민주당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의 ‘검찰 리스크’는 주요 현안을 덮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6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이 대표는 “이적행위이자 군기 문란”이라며 북한 무인기의 비행금지구역 침범을 뒤늦게 인정한 군을 성토했지만, 뒤이어 기자들의 질문은 ‘1월10~12일 중 검찰에 출석한다’는 보도의 사실 여부를 문의하는 데 집중됐다. 그날의 뉴스는 제1야당 대표의 정부 비판 메시지보다 정확한 검찰 출석 일정이었던 셈이다. 향후 대장동·쌍방울 사건 등 이 대표를 둘러싼 수사가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집어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이 직전 대선에서 패배한 유력 정치인을 상대로 전방위 수사를 벌이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정적 죽이기’ 혐의가 짙다고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직무 수행과 권한 행사의 범위는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대표로서의 당무와 피의자로서의 변론이 뒤섞이면 어느 한쪽도 울림을 줄 수 없다. 검찰의 수사 대상은 민주당 대표가 아닌 ‘이재명 성남시장’ 시절의 일이다.

당이 나설 게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이재명 개인’ 또는 의원실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그렇게 ‘당당하게 임’해야 윤석열 정부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정치인 이재명의 ‘사이다 말발’이 먹히지 않을까.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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