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학 칼럼] 우물 안에 갇힌 파견법

2023. 1. 1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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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학 이사 겸 편집국장

최근 카허 카젬 전 한국 GM 사장이 불법파견직을 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재판은 세계 각국에 생산기지를 둔 GM에 한국의 고용규제가 글로벌 기준에 후진적임을 각인시켜줬다. 유럽과 일본 등 웬만한 나라에선 제조업에 파견근로자를 얼마든지 써도 된다. 반면 한국에선 20년 넘게 불법화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행을 놓고 저울질해온 테슬라가 연간 전기차 1백만대를 만들 '제2 기가팩토리' 후보지를 인도네시아로 틀었다는 소식은 이상할 게 없다. 우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유치전에 나선들, 글로벌 기업으로선 "노동규제가 심한 한국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판단을 내리는 게 현명하다.

'우물 안 개구리' 규제로 일자리를 내쫓는 고용규제를 혁파하지 않고선, 우리는 신규 외자유치는커녕 있는 공장도 문닫게 할 판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근로자)는 우물 물(일자리)이 말라버리면 생계 터전을 잃는다. GM은 이번 판결을 전후해 "한국의 경직된 노동환경이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에서 전기차 투자는 어렵다"고 전했다. 항소심인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GM은 비정규직 1700명 정도(전체 고용의 20%)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5년간 최소 4000억원에서 1조원 안팎의 인건비를 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같은 이유로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국내 대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파견직을 직고용으로 돌리고 있다. 포스코는 작년 7월 대법원의 근로자 지위 소송 판결에 따라 이달 2일부터 55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2021년 7월 같은 판단을 받은 현대위아는 지난해 90여명을 정규직으로 뽑았다. 현대·기아차는 작년 10월 대법원의 직고용 판결 이후 정규직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정규직으로 전환될 파견근로자 입장에선 환영할 일이다. 반면 산업계는 인건비 상승이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며 제도를 글로벌 수준에 맞춰달라고 하소연한다. 이같은 재계의 요구를 윤석열 정부가 수용,개정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런 법률 개정 움직임에 노동계와 손잡은 거야(巨野)가 쉽사리 맞장구를 쳐주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는 17년전인 지난 2006년 일본의 파견법 실태를 취재한 적이 있다. 일본 국회가 노동자 파견법을 개정, 파견근로자 영역을 넓히고 파견 계약기간도 1년에서 3년으로 늘렸을 때였다.

인상적이었던 취재는 일본 노동단체 한 간부를 인터뷰할 때였다. 그는 "우리가 파견직 근로자를 허용하지 않으면, 파견근로자를 쓰는 외국에 비해 일본산 자동차나 배의 생산원가가 올라간다"며 "외국산과의 판매경쟁에 이겨야 우리의 일자리가 보장되는데 파견제도 확대를 찬성하는 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한국에 돌아와 르포 기사를 출고할 때 데스크로부터, 혹시 일본 노동단체가 아닌 경제단체 간부의 말을 잘못 기사화한 게 아니냐는 팩트 체킹 과정을 겪었다.

노동계 반발로 파견근로자에 대한 규제완화가 번번이 무산된 우리나라와는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일본 노동계의 글로벌 안목을 내심 부러워했다. 일본의 노사는 분배보다 자국 경쟁력을 우선시한다. 이런 강점은 도요타자동차가 지난해 세계 신차판매에서 3년 연속으로 1위를 지킨 원동력이다. 기업은 원가 절감에 목숨을 건다. 선발업체가 신상품을 계속 비싸게 팔면, 원가를 절감한 후발업체에 밀린다. 이런 시장경제의 자생적 질서를 현행 파견법이 막고 있다.

파견근로자를 늘리면 당장은 저임금 근로자가 증가한다. 길게 보면 정규직 전체 숫자와 파이가 줄어, 파견근로자의 임금이 오른다. 기업이 원가 부담을 덜 수 있어서다. 일본 도요타에서 파견직 근로자 임금이 일본 근로자 평균임금보다 높은 게 이를 증명한다.

노동시장의 임금 이중구조가 이슈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노(勞勞) 간 비대칭구조는 이중구조라기보다는 착취구조"라고 규정했다. 큰 파이를 움켜진 기득권 노조에 대한 비판이다. 파견법 개정은 분배 모순을 바로잡는 해법중 하나다.

정구학 이사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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