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건수 집착한 무차별 발의 … 과잉규제 부작용 수십년째 반복

우제윤 기자(jywoo@mk.co.kr) 2023. 1. 1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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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규제법안이 국회에서 의원입법 형태로 쏟아지면서 국회 입법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규제법안을 줄이기 위해 규제영향평가를 사전에 실시하고 국회의원 의정 활동을 평가하는 지표를 양에서 질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15일 전문가들은 국회에서 무분별하게 생산되는 규제법안을 제어하기 위해 국회 차원의 의원입법에 대한 규제영향평가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부가 법안을 제출하는 정부입법은 규제를 새로 만들거나 강화할 때 규제영향평가를 통한 자체 규제심사와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의원들이 대표발의하는 법안은 이런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기 때문에 규제가 시장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의원들이 일단 법안을 발의하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정부도 급박한 규제가 필요하거나 영향 분석에 대한 평가를 회피하고 싶을 때는 여당 의원을 통해 법안을 발의하는 우회로로 의원입법제도를 활용하는 일이 잦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은 "미국 의회는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부실 법안의 80%를 걸러내고 나머지 20%만 집중 심사해 법안 수준을 높이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입법예고, 규제영향평가, 법제처 심사 등 8단계를 거쳐 국회에 제출되는 정부입법과 달리 의원입법은 10인 이상 의원이 동의하면 검토 절차를 생략한 채 발의되고 있어 입법의 질적 저하가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의원입법도 사전에 규제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여당 의원들이 먼저 나섰다.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1일 국회법 개정안과 국회규제입법정책처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의원입법도 법률안 발의 시 규제사전검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존속 기한 또는 재검토 기한을 설정해야 하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또 소관 상임위에서 해당 법률안 심사 시 규제입법영향분석을 의뢰하도록 하는 한편, 의뢰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국회 내에 전담기관인 국회규제입법정책처를 신설해 의원입법과 입법심사의 질을 제고하는 것이 목적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의원입법에 대한 규제영향평가를 의무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할지 검토하고 있다.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 출신 규제 완화론자인 김진표 국회의장 역시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법을 모색 중이다. 국회사무처는 작년 11월 말 '입법 규제영향분석 시범 운영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논의가 결실을 맺을지는 미지수다. 이미 21대 국회 초기인 2020년 7월과 8월에도 당시 미래통합당에선 이종배 의원과 정경희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선 김태년 의원이 입법 영향에 대해 법안 발의 전에 평가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바 있으나 국회 심사 과정에서 입법권 침해 논란이 일며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또 사전에 규제영향평가를 하면 신속한 입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왔다. 작년 10월 일어났던 카카오 대란에서 보듯이 긴급한 입법 필요가 있을 때에는 이런 사전 절차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카카오 대란의 경우 카카오와 네이버 등에 대한 규제 공백이 문제라는 공감대가 여야 간 형성되면서 먹통 사태가 일어난 지난해 10월 15일로부터 2개월도 안 된 12월 8일에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일부 전문가는 사전적 규제영향평가가 대안이지만 예외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양용현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연구센터장은 "모든 규제법안에 대해 의무적으로 규제영향평가를 시행하게 하는 것은 신속한 입법의 걸림돌이 될 수 있으므로 여야 간 합의가 있으면 이를 면제해주는 등 예외 사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당과 시민단체 등에서 국회의원 의정 활동을 평가하는 지표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의원들은 자신이 대표발의한 법안이 몇 건이나 본회의를 최종적으로 통과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받다 보니 무작정 최대한 많은 법안을 발의하려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입법 발의 건수가 늘어나면 정교한 심사 자체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 회장은 "한국 국회의원의 1인당 입법 건수는 영국의 91배, 독일의 67배, 일본의 61배에 달하는데 우리나라가 얼마나 졸속 혹은 과잉 입법을 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고 말했다. 한국산업연합포럼 자료에 따르면 2017년에서 2022년까지 한국, 미국, 일본, 영국의 의원 1인당 법안 심의 건수를 국가별로 4년간 조사해보니 미국은 56.4건, 일본은 1건, 영국은 1.2건이었는데 한국은 81.9건이나 됐다.

[우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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