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내가 ☆이다] 승리 집착 버리고 마음 비웠더니…내 테니스는 이제 시작
100점 만점에 100점. 권순우(26)가 지난해를 돌아보면서 자신에게 준 점수다.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100위 밖으로 밀려나고 10개월 가까이 2회전 징크스에 시달릴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권순우는 지난 1년에 대해 남다른 만족감을 드러냈다.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기점이 된 건 지난해 8월 남자 테니스 메이저 대회 US오픈이다. 첫 경기를 이틀 앞두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현재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깨달은 권순우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권순우가 모든 면에서 성장한 만큼 한국 테니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올해 성적에 대한 기대감이 엄청났다. 지난해 새 시즌 시작에 앞서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한 권순우 역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지난 14일(한국시간)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막을 내린 남자 프로테니스(ATP) 투어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2차 대회에서 달라진 권순우가 대형 사고를 쳤다. 러키 루저로 나선 이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것이다. 러키 루저란 본선 진출자 가운데 기권하는 선수가 나올 경우 빈자리를 채우는 선수를 의미한다. 한국 선수 최초로 ATP 투어 2승 고지에 오른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 우승이라는 값진 결실을 맺었다. 앞으로도 스스로를 믿고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만성'형인 권순우는 대학교 진학 이후 기량이 만개했다. 2019년 세계랭킹 100위 이내에 처음 진입한 그는 2021년 9월 아스타나오픈에서 ATP 투어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발전은 멈출 줄 몰랐다. 최고 세계랭킹 52위까지 기록한 그는 2020 도쿄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는 등 한국 남자 테니스의 간판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지난해 위기가 찾아왔다. 2회전에서 탈락하는 부진이 완전히 징크스로 자리 잡으면서 권순우는 프로 데뷔 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 "'테니스를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하루하루를 답답함 속에서 보내던 권순우는 문득 '내가 좋아하는 테니스를 하는데 왜 스트레스를 받지'라는 생각을 했고 US오픈부터 마음가짐을 바꿨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난해 10월 출전했던 일본오픈에서 4강에 진출하며 2회전 징크스를 떨쳐냈고 올해 두 번째로 출전한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2차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권순우는 "지난해 8월까지 컨디션은 좋은데 성적이 나오지 않아 테니스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은퇴를 고민할 정도로 느끼는 부담감이 상당했다"며 "신기하게도 마음가짐을 바꾼 뒤 경기력과 자신감이 올라왔다.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테니스의 재미를 깨달은 지난해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올해 프로 9년 차가 된 그는 최우선 목표로 세계랭킹 100위 이내 유지를 잡았다. 권순우가 세계랭킹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다. 세계랭킹 100위를 기준으로 선수들이 받는 대우가 달라져서다. 권순우는 "출전하는 대회에서 상금과 환경 등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다르다"며 "지난해 잠깐 세계랭킹 100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있는데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 세계랭킹 100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100위 이내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성장을 위해서다. 권순우는 "100위 이내 선수들은 눈빛부터 다르다. 이 선수들은 100위 이내를 유지하고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한다"며 "투어에 처음 왔을 때는 경기를 앞두고 흰쌀밥에 생선을 먹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따라해보니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상위권 선수들과 경쟁하는 것 자체로도 성장할 수 있는 만큼 100위를 지키는 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약 한 달간 미국 플로리다에서 집중해서 훈련한 건 체력 키우기다. 1년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대회를 치러야 하는 만큼 권순우는 체력 훈련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기술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단점이 없고 모든 샷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는 권순우는 지난겨울 입에서 단내가 달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했다.
최고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체중 관리 등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권순우는 매일 정해진 식단만 섭취하고 있다. 프로로 전향한 2015년부터 절제하는 삶을 살아온 권순우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권순우는 "노력 없이 원하는 결과를 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성적을 내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즐거움이 크다"며 "패배한 뒤 각 대회를 마무리하는 날이 치팅데이인데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만 있다면 1년 내내 흰쌀밥과 생선을 먹으며 살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태극마크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권순우는 오는 9월 열릴 예정인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비장한 각오도 드러냈다. 권순우는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던 2017년을 잊지 못한다.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며 "한국을 대표해 출전하는 대회가 아시안게임인 만큼 금메달을 꼭 따고 싶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매 경기 차분하게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ATP 투어로부터 '공포의 포핸드'라고 인정받은 권순우는 16일 개막하는 호주오픈에서 자신의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 경신에 도전한다. 앞서 권순우가 메이저 대회에서 거둔 최고 성적은 2021년 프랑스오픈 3회전 진출이다. 권순우는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실력은 모두 뛰어나다. 하지만 내 실력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조금 더 집중해 공격하고 수비하면 메이저 대회에서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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