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전세에 임차인들 "차라리 내가 산다"
'전세 낀 물건' 외면 심해져
세입자 '울며 겨자먹기' 입찰
시세가 보증금보다 떨어지면
직접 떠안아도 손실 불가피
지난해 11월 말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부동산 경매에서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다세대빌라가 새 주인을 찾았다. 이 물건의 감정가는 2억300만원으로 책정됐지만 두 차례 유찰을 거듭하면서 최저입찰가는 1억2992만원까지 떨어졌다.
최저입찰가는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낙찰가는 1억5500만원으로 최저입찰가를 훌쩍 뛰어넘었다. '부동산 침체' 속에서 이 같은 낙찰가가 나온 것은 낙찰자가 이 물건의 임차인이기 때문이다.
이 물건의 경우 임차인 전세보증금이 낙찰가와 동일한 1억5500만원이다. '깡통 전세'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역전세에 대한 우려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임차인이 늘어나면서 임차인이 '울며 겨자 먹기'로 경매로 나온 물건을 사들인 셈이다.
경매 시장에서 임차인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이 살던 주택을 낙찰받는 사례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지속되면서 상대적으로 '주거 약자'인 임차인들의 부담이 커지는 셈이다.
15일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지난해 하반기 임차인이 직접 거주하는 주택을 경매에서 낙찰받은 사례는 102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48건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전체를 기준으로 하면 174건으로 2021년 112건, 2020년 99건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 최근 전세 사기 문제가 불거진 강서구 화곡동 등의 빌라 경매가 증가한 영향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집값이 떨어져 '역전세' 우려가 심해지면서 세입자가 이미 납부한 전세보증금이 시세보다 높아진다는 점이다.
전세보증금 1억원짜리 주택을 임차인이 낙찰받았을 때 보증금보다 높은 금액을 써낸 경우가 아니라면 임차인이 돌려받지 못하는 금액은 변하지 않는다. 5000만원에 낙찰되면 법원으로부터 5000만원을 돌려받더라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어지고, 1000만원에 낙찰받는다고 해도 전체 보증금 1억원을 돌려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낙찰받은 임차인들은 전세보증금과 시세 격차가 벌어질수록 손해가 커진다. 위 사례에서 주택 시세가 80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낙찰받은 임차인은 2000만원 손해를 보고 주택을 사들인 셈이 된다. 주택 시세가 낮아질수록 임차인의 손해액은 커진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임차인이 자신이 거주하던 집을 낙찰받으면 본인 보증금 이상으로 금액을 써내지 않는 이상 낙찰가율은 별로 의미가 없다"며 "그러나 지금처럼 유찰이 반복되면 매매 시장에서 해당 물건의 시세가 감정가나 낙찰가보다 낮다고 판단하는 것인 만큼 낙찰받은 임차인은 금전적 손해를 피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실제로 경매 시장 한파로 대부분의 물건이 수차례 유찰되면서 지난해 12월 서울 빌라의 낙찰률은 11.1%로 집계됐다. 경매 물건 10건 가운데 1건 정도만 새 주인을 찾은 셈이다. 인천과 경기도 역시 같은 기간 각각 25.0%, 22.9%의 낙찰률을 보였다.
경매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임차인이 아닌 제3자가 낙찰받는 시나리오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제3자가 낙찰받으면 임차인 입장에서는 대항력이 생기면서 보증금 전액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경매 시장이 움츠러든 탓에 낙찰 금액과 보증금 모두를 부담하려는 참여자가 없어 임차인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선임연구원은 "지금처럼 경매 시장이 얼어붙으면 낙찰 금액과 보증금 모두를 부담하면서까지 낙찰받으려는 사람이 나오기 어렵다"며 "단순한 금액 손해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매매에 뛰어든 것인 만큼 금액 이상의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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