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지도 못하는 소 수백마리 13년째 돌보는 사람
후쿠시마 원전 서북 14㎞ 위치
원전 사고직후 며칠 비웠지만
소 굶어죽을 걱정에 돌아와
정부 살처분 명령도 거부
외부 이동도, 도축도 금지된 소
한때 500마리, 지금은 200마리
"모두 자연사할때까지 돌볼 것"
2011년 3월 11일 폭발한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전에서 서북쪽으로 14㎞ 떨어진 곳에 '희망의 목장'이 있다. 사고 원전에서 차로 10여 분밖에 안 걸릴 만큼 가깝다. 사고 원전 반경 수 ㎞에 걸쳐 세슘 등 방사능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제염작업이 진행 중일 만큼 방사능 공포가 여전한 곳이다. 그런데도 이곳 희망의 목장에는 200여 마리 소를 돌보며 생활하고 있는 목장주 요시자와 마사미 씨(68·사진)가 거주하고 있다. 요시자와 씨는 6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그가 머무는 컨테이너 건물엔 그를 인터뷰하러 왔던 전 세계 취재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여러 장 걸려 있었다.
평범한 시골 목장주인 그가 이처럼 국제적 관심을 끈 건 사고 원전 지근거리에 있는 다른 목장주들과는 달리 방사능 공포에도 목장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고 직후 일본 정부가 이곳을 거주불가지역으로 지정해 강제 퇴거조치를 내리면서 잠깐 목장을 비웠지만 며칠 후 소먹이를 주려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그날 폭발한 원전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걸 봤다"며 "하지만 방사능 공포보다도 소에게 여물을 안 주면 굶어죽을 텐데 결코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정부의 소 살처분 명령도 거부한 채 12년째 희망의 목장을 지키고 있다.
요시자와 씨는 "원래 기르던 소가 300여 마리였는데 사고 직후 이곳저곳에서 자신들이 기르던 소까지 맡아달라고 하면서 한때 500여 마리까지 늘었었다"며 "세월이 흘러 절반 정도는 자연사하고 현재 목장에 200여 마리의 소가 남아 있다"고 전했다. 이곳의 소는 모두 중성화 수술을 마친 상태로 외부로 이동시킬 수도, 도축해서 고기로 팔 수도 없다.
원전 사고 후 반핵운동가로 변신한 요시자와 씨는 "사고가 난 1년쯤 후에 원래 기르던 330여 마리의 소 가운데 20여 마리에게서 새까만 소인데도 군데군데 털이 하얗게 변색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방사능 낙진에 오염된 풀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소들이 갑작스레 폐사하는 일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요시자와 씨는 "기형소가 태어나거나, 암 등 병에 걸리거나, 다른 일반지역 소들과 비교해 더 빨리 폐사하거나 하는 등의 이상현상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사고 6년 후인 2017년 목장이 위치한 나미에마치 지역의 방사능 수치가 거주 가능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이곳 목장의 방사능 수치는 후쿠시마 시내에 비해 20배 정도 높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나미에마치 지역 주민의 80%인 2만명은 여전히 되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방사능 피폭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요시자와 씨는 "휴대용 방사능측정기로 매일 체크는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방사능이 무섭지는 않다"며 "사고가 발생한 해 7월에 검사했을 때 몸에서 6600베크렐의 세슘이 검출됐지만 이후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이 정도 수치는 엑스레이를 두 번 찍은 정도다. 요시자와 씨는 "매년 건강검진도 받고 유전자 손상 검사도 두 번이나 했는데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건강하게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원전 사고에 분노해 반핵주의자 길을 걷고 있지만 방사능 위험이 실제보다 과장됐음을 몸소 보여주는 산증인의 역할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요시자와 씨는 "이곳 목장의 모든 소가 자연사할 때까지 이곳 희망의 목장을 끝까지 지킬 것"을 약속했다.
[후쿠시마/박봉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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