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 갇힌 투사 vs 출구 잃은 요원 …'아바타' 누를 韓영화는

고보현 기자(hyunkob@mk.co.kr),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1. 1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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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2년간 창고에 쌓였던 한국영화가 다시 스타트라인에 섰다. 18일 동시 개봉하는 '유령'과 '교섭'이 첫 주인공이다. 관객 900만명을 돌파할 만큼 적수가 없던 '아바타: 물의 길'을 꺾을 자는 누구일까.

영화 '유령' 한 장면. 【사진 제공=CJ ENM】

아프가니스탄 자불 외곽도로에서 한국인 선교단이 탈레반에 피랍된다. 이제부터 '피랍자 23명의 생존'만이 유일한 목표다. 외교부 실장 정재호(황정민)는 외교부 전세기를 띄워 아프간에 도착하고, 현지 국정원 요원 박대식(현빈)과 만나지만 두 남자의 관계는 삐걱댄다.

주어진 시간은 24시간. 정재호는 아프간 정부를 통해 탈레반 수감자와의 인질 맞교환을 주도하다 실패하고, 박대식은 아프간 현지 부족장 회의(지르가)의 수장을 접선해 피랍자 구조를 꾀하나 역시 실패한다. 시한은 매일 끼니 때처럼 다가오는데, 협상금을 노린 사기꾼이 개입해 작전은 꼬여버린다.

'교섭'은 2007년 샘물교회 탈레반 피랍 사건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당시 비판과 논란을 유려하게 피해가며 황정민·현빈의 연기만으로 프레임을 다시 짠다. 길 없는 길에서 어떻게든 길을 찾아내야 하는 황정민의 분투는 객석에도 압박감을 준다. 탈레반과 직접 협상에 나선 그는 먼지 가득한 협상 테이블에 앉아 오직 논리만으로 탈레반 대표를 강하게 압박한다. 그래서 황정민의 후반부 30분 연기는 숨 쉴 틈을 불허한다. 대역을 안 쓰기로 유명한 현빈의 액션 연기도 영화 '공조' 시리즈의 액션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한국인 교포 카심 역을 맡은 배우 강기영의 파슈토어(語) 연기도 극을 이끈다. 뽀글 머리에 터번을 쓰고 오줌 지릴 듯 덜덜 떠는 강기영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말끔한 슈트로 시청자를 사로잡던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과 결이 180도 다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임순례 감독을 재평가하게 만든다. 2001년 황정민의 첫 영화 주연작 '와이키키 브라더스' 감독이던 임 감독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리틀 포레스트' 등 감동 연출의 마에스트로였다. 임 감독은 전작과 다른 문법으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란 질문을 관객 목에 들이댄다. 특히 '교섭'은 2004년 김선일 씨 '이슬람과 성전(IS 전신)' 피랍 사건에서 발생한 트라우마를 현빈의 사건 개입 동인으로 삽입하거나, 2011년 삼호주얼리호 소말리아 해적 피랍 사건을 황정민의 2번째 과제로 배치하는 등 부유하는 세계사에 휩쓸린 대한민국의 운명을 함께 전시한다.

영화 '교섭' 한 장면. 【사진 제공=플러스엠】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유령 같은 존재처럼, 그 시절 독립투사들은 곳곳에 숨어 자신의 조국을 지켰다.

1933년 경성, 항일단체 흑색단의 스파이 '유령'이 조선총독부의 신임 총독 암살 시도에 나선다. '성공하기 전까지 멈춰서는 안 된다'는 지령에 따라 움직이지만 수포로 돌아간 작전. 용의자 5인은 낭떠러지 위에 세워진 호텔 밀실에 갇혀 조사를 받게 된다.

유령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경호대장 카이토(박해수)는 총독부 감독관 무라야마 쥰지(설경구)와 조선 최고 재력가의 딸이자 암호문 기록 담당자 차경(이하늬), 정무총감 비서 유리코(박소담)등을 모아 두고 쫓고 쫓기는 수사를 이어 나간다.

영화는 추리극이라는 이름 아래 첩보와 액션이라는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대사를 최소화한 채 미스터리하게 시작되는 초반부에서 역동적인 액션이 즐비한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180도 반전된다. 일제강점기를 다뤘던 다른 작품과는 달리 암호 해독, 심리전 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차별화를 뒀다. 대저택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전개되지만 몰입도가 높다. 한쪽에선 서로를 죽고 죽이는 참상이, 다른 한쪽에선 남은 이들끼리 무엇인가를 지키려는 장면이 당시 구한말의 모습을 닮았다.

강인함으로 무장한 여성 투사들의 연대와 격투신은 또 하나의 볼거리다. 화려한 이미지를 벗고 강도 높은 액션 연기로 돌아온 이하늬는 "설경구 선배와의 몸싸움 장면은 '역도산'과 붙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6개월을 살았다"고 털어놨다. 이해영 감독이 "(영화 촬영 동안) 이하늬는 마동석이나 다름없었다"고 밝힐 정도로 힘의 대결에 밀리지 않는다.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되기까지 각자 배우들도 저마다 큰일을 치렀다. 박소담은 촬영이 끝난 뒤인 2021년 12월 갑상선 유두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마쳤다. 그는 11일 언론 시사회에서 "이하늬 선배의 '살아'라는 말이 저에게 굉장히 필요했던 말이었다"며 "많이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 큰 에너지를 받았다"고 말하며 눈물을 쏟았다. 이하늬는 지난 2년간 결혼과 출산, 육아 등을 거쳐 스크린에 복귀했다.

[고보현 기자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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