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읽고, 타인을 쓰고, 타인을 잇다···당선자 3인 인터뷰[2023 경향신문 신춘문예]
창작 부문도 다르고, 개성도 제각각인 2023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자들 인터뷰를 쓰면서 발견한 공통점은 타인·타자에 대한 공감의 능력·지향이다. 강도희 평론가는 “독자들과 대화하는 능력”을 갖추고 싶어 한다. “개인 이야기이지만 결국은 우리 이야기”를 추구하는 이는 신보라 소설가다. 박선민 시인은 “다른 작은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는 시를 쓰려 한다.
박선민 “간섭하고, 귀찮게 하는 시 쓰겠다”
박 시인의 당선작 ‘버터’는 “인류세로 접어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시의 상상력이 요구되는 시대에 생태시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이 가능성은 다큐멘터리에서 시작됐다.
“우연히 황제펭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어요. 극심한 추위를 견디려 서로 흩어지고 뭉쳐지는 허들링 현상을 보면서, 문득 버터가 생각났어요.” 버터처럼 풀어지다가 다시 추위로 뭉쳐지는 만년설에 관한 시상을 구상했다. 기후위기 한 풍경을 배경으로 탄소발자국이 많은 음식인 버터의 항로를 기록한다. 타자와 자아에 대한 성찰도 녹였다.
“난민들은 추우면 뭉쳐지는 버터와는 달리 따뜻한 온도 쪽으로 뭉쳐지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함께했어요. 나는 어떻게 하면 방 밖을, 강의실 밖을 나가서도 나라는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박 시인은 청소년 때 자신에 관해 말하는 게 어려웠다고 한다. “질문도 대답도 할 줄 몰랐죠. 그래서 대상 없는 편지를 쓰고는 했죠. 주로 감정의 순간들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일기처럼 쓰기 시작한 게 시다. “시는 마치 예, 아니요로 끝나는 짧은 말 같아서 좋았던 것 같아요.”
박 시인은 명지대에서 문예창착을 전공했다. 지금은 한양대 대학원에서 일본 언어와 문화를 공부한다. 이 신인 시인은 ‘버터’에 난민에 대한 안타까움을 반영했듯, 자신의 ‘작은 힘과 관심’으로 다른 작은 존재의 의미를 일깨우는 시를 쓰려 한다. “작은 관심만으로도 큰 힘과 위안을 얻는 존재들이 많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줬으면 해요. 난민이든 동물이든 위기에 처한 자연이든 또 불합리를 겪는 사람이든 (이들이 연관된 일이나 대상에) 간섭하고, 귀찮게 하는 시를 쓰고 싶어요.”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1012155005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1012155025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1012155015
신보라 “위로는 함부로 할 수 없지만, 내 소설은 함부로 읽을 수 있기를”
신 소설가는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학부를 다니며 1년 휴학을 한 번 했다. 졸업하고도 1년 쉬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찾게 되는 것은 글이었어요. ‘이거 이제 어쩔 수 없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죠.” 같은 대학 같은 과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이어갔다. <휠얼라이먼트>는 그 결과물이다.
심사위원들은 “정체가 불분명한 인물들이 기이한 연극적 대화를 주고받는 한 편의 부조리극 같은” 이 소설의 일탈적·도발적 분위기, 단문 형태의 거칠고 시건방진 말, 의미를 알 수 없는 장면들의 불연속적 전개 등을 두고 오래 소회를 나눴다.
언뜻 난해한 이 소설은 ‘균형과 불균형’에 관한 이야기다. ‘휠얼라이먼트’는 차량 전체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을 뜻하는 말이다. 어느 날 ‘강정보 녹색길’로 산책을 나갔다가 먼지가 쌓인 채 오래 주차된 차를 보고 제목을 착안했다. 신 소설가는 인물들을 통해 한쪽으로 기울거나 고르지 못한 즉 불균형한 삶을 드러내려 했다고 한다. ‘버티기’란 말로 설명을 이어갔다.
“버티지 않는다는 것은 내게 ‘상실하다’라는 하나의 의미를 내포하지만, 버틴다는 것은 모든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일단은 버텨보거나 간당간당하게 버티거나, 버티는 것인지도 모르는 채로 버티거나. ‘넌 어떻게 버티니. 나는 이렇게 버티고 있어.’ 그런 것을 쓰고 싶었어요. 개인 이야기이지만 결국은 우리 이야기 말이죠.”
신 소설가는 “함부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도 했다. 소설에 묘사한 ‘힘든 다른 존재’에서 독자들이 자신과 겹치는 부분을 찾아내길 바란다는 뜻의 말이다. “위로는 함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독자들이 그의 바람대로 소설 인물들에게서 공유점을 찾는다면, 결국은 위로가 될 것이다.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1012144005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1012149015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1012149005
강도희 “한국 문학의 ‘기후’를 읽는, 일기예보 같은 글 쓰겠다”
강 평론가의 당선작 <비행하는 역사-쓰기, 미지의 ‘너’들에게로>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2021)와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2020)를 읽으며 “낯선 풍경 안에서 익숙한 죽음들을 기억하는 방식들”을 이야기한다. 그는 “각자만의 개성이 있는 분들이라 하나의 글로 다루리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각각 읽고 두 작품이 묘하게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강 평론가는 기억·추억·애도의 특정 공간에 가거나, 사진을 꺼내어 보는 즉 무정형의 기억을 물질적인(material) 것으로 바꾸어 나누는 작업이 두 소설에서 ‘모성적(maternal) 역사가들의 형상’으로도 나타난다고 봤다. 그는 “마침 공부하던 돌봄 윤리와 조에(zoe·‘살아 있음’ ‘생명’을 가리키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의 계보학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두 작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었기에 작가론을 꼭 한번 쓰고 싶었다”고도 했다.
강 평론가는 한국문학이 굉장히 역동적이고, 문학장의 동향이 사회 변화와 매우 밀접하다고 본다. “한 해 사이에 무수히 많은 작품이 나오고, 다양한 문예지들이 탄생했다 사라지죠. 휘몰아치는 한국문학의 ‘기후’를 읽는 일기예보 같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성균관대 국문과를 다니며 비교문화를 부전공으로 공부했다. “하나의 문학 작품이나 문화 현상이 얼마나 풍성한 분석을 이끌 수 있는지 배웠다”고 한다. “끊임없이 주어지는 새로운 대상과 ‘지금’을 연결하는 법을 더 배워보고” 싶어 서울대 대학원으로 가 현대문학을 공부했다.
지금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공부다. 그는 “더 많이 공부해서 서로에게 도움 되는 비평장의 한 참여자가 되고 싶다. 평론의 예상 독자들과 대화하는 감각을 기르려면 또 공부가 필요하다. 비평에 익숙하지 않았던 과거의 나 같은 이들을 새로 독자로 만든다면 더 좋겠다”고 했다.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1022147005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1022150005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1022149005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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