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먹고 책에 낙서해도 OK”···산골 ‘전의마을도서관’[현장에서]
“책을 빌려줄 때 특별한 대출 절차가 없고 기록도 안합니다. 그냥 가져가서 읽다가 반납하면 돼요. 책에 낙서도 해도 됩니다. 다만 나중에 책을 읽을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낙서를 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요.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그어도 되고 요점을 정리해 써놔도 됩니다.”
지난 14일 찾아간 세종시 전의면 산골에 위치한 전의마을도서관은 여느 도서관과는 달랐다. 도서관을 찾은 사람들은 서가에 꽂힌 도서 중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편하게 읽으면서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음식 섭취가 가능해 미리 준비해온 도시락이나 간식을 먹으면서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다. 서가는 ‘초등학교 어린이를 위한 책’ ‘중·고등학교 청소년을 위한 책’ ‘어른을 위한 책’ 등으로 구분돼 있다.
전의마을도서관은 올해 여든 두살인 장인순 관장이 2021년 어린이날에 문을 열었다. 장 관장은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으로 스카우트된 원자력 분야 석학으로 한국원자력원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 소장을 지냈다.
장 관장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글을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며 “도서관은 은퇴 후 그동안 책을 써서 얻은 인세 수익 등 개인 돈을 털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도서관 자리는 그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고려전통기술 나연희 대표가 선뜻 회사 공간 2층을 내줘 마련한 것이다.
숨 죽이고 책만 봐야하는 다른 도서관과 달리 이 곳에서는 방문객들 사이에서 즉석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날엔 이가희 시인과 음악을 가르치는 김덕규 중부대 교수 등이 도서관을 찾았다가 서가에서 장 관장과 대화를 나눴다.
“글을 읽는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면 좋겠습니까.”(이가희 시인)
“글을 읽는다는 것은 ‘남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장 관장)
“사람이 글을 읽게 되면 뭐가 달라지는지요.”(김덕규 교수)
“책을 읽으면 책은 물론 책을 쓴 저자의 마음을 읽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책을 읽는 자기 자신을 읽게 됩니다. 독서는 결국 자기 자신을 읽는 작업이기도 하지요.”(장 관장)
이 곳에는 2만여권 장서를 갖춘 도서관 뿐 아니라 미술관과 칼 전시관이 함께 마련돼 있다. 도서관 바로 옆에 있는 ‘도검전시관’에서는 고려전통기술이 만든 각종 칼들을 전시한다. 고려전통기술은 국내 영화나 사극 등에 나오는 각종 칼을 만드는 회사다. 영화 <명량>에 등장하는 충무공 칼 등이 전시돼 있다.
“책과 칼은 국가를 지켜내는 힘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요. 붓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사람의 간절한 마음과 기도가 깃들어 있고요. 이 모든 것이 이 곳을 찾는 이들에게 큰 가르침을 줄 겁니다.”
도서관과 도검전시관 사이에는 ‘비빔밥화랑’이라는 이름의 작은 미술관이 있다. 수많은 화가의 그림과 도자기·조각 작품 등이 뒤섞여 있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장 관장은 “그림은 마음의 평온을 주기에 도서관 옆에 미술관을 만들었다”라며 “작품들은 주로 지인들을 통해 기증받은 것들”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 곳을 찾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단순히 책을 읽거나 칼과 그림을 관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글을 쓰는 능력을 키웠으면 한다고 했다.
장 관장은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글을 쓰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자기 글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일기”라며 “일기를 쓸 때는 가능한 ‘나’와 ‘오늘’이라는 단어는 빼고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좋다. 모든 사람들이 이를 실천해봤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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