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이약의 진수 '린치 바쥐'..환상적인 아로마, 산도, 타닌 '궁극'을 경험하다
[파이낸셜뉴스] 가난한 자의 무똥 로췰드(Mouton Rothschild), 1등급에 버금가는 '수퍼 세컨드(Super Second)' 와인.
프랑스 보르도(Bordeaux) 뽀이약(Pauillac) 지방의 와인 '샤또 린치 바쥐(Chateau Lynch Bage)'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입니다. 샤또 무똥 로췰드(Chateau Mouton Rothschild)는 보르도를 대표하는 그랑크뤼 클라세 1등급 와인으로 진한 아로마와 강렬한 질감으로 유명합니다. 린치 바쥐 또한 입안을 꽉 채우는 화려한 아로마와 균형잡힌 질감으로 뽀이약을 대표하는 특급 와인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린치 바쥐는 보르도 그랑크뤼 클라세(Grand Cru Classe) 5등급 와인임에도 수퍼 세컨드 와인을 논할 때 빠지지 않습니다. 이미 웬만한 2등급 와인의 품질을 훌쩍 넘어 1등급 와인 곁에 다가섰다는 것이죠. 실제 런던국제와인거래소(London International Vintners Exchange, Liv-ex)의 거래가격에서도 이를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7년 기준 1박스 가격은 1056 파운드로 2등급 와인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2등급 중 위로는 라 미숑 오브리옹(La Mission Haut Brion), 팔머(Palmer), 레오빌 라스 카스(Leoville Las Cases), 피숑 롱그빌 꼼떼스 드 라랑드(Pichon Longueville Comtesse de Lalande), 스미스 오 라피트(Smith Haut Lafite) 등 6개 밖에 없습니다.
샤또 린치 바쥐의 오너 장 샤를 카즈(Jean Charles Cazes)가 와인수입사 에노테카와 함께 지난 10일 한국을 찾아 몇몇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카즈 가문이 가지고 있는 와인들을 소개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카즈 가문은 1939년 샤또 린치 바쥐를 인수한 후 1940년 샤또 오름 드 페즈(Chateau Ormes de Pez), 2017년 샤또 오 바따이(Chateau Haut Batailley)를 차례로 그룹내로 편입시킨 보르도 와인 명가입니다.
장 샤를 카즈가 이 날 선보인 와인은 오 바따이 베르소 2019, 오 바따이 2019, , 오름 드 페즈 2011, 에코 드 린치 바쥐 2018, 린치 바쥐 2014, 린치 바쥐 2015 입니다. 카즈 가문의 울타리에 모여 있지만 각기 와인이 가지는 특징은 극명히 다릅니다. 오 바따이 와인은 뽀이약 와인이지만 견고한 구조감보다는 우아한 생 줄리앙(Saint Julien) 느낌이 강합니다. 아무래도 인접해 있는 떼루아 때문이라고 장 샤를 카즈는 설명합니다. 생떼에스테프(Saint Estephe)에서 나는 오름 드 페즈는 스파이시 한 느낌의 지역 특징을 정확하게 반영합니다. 린치 바쥐는 뽀이약 특유의 견고한 구조감을 바탕으로 진하고 화려한 아로마가 매력적입니다.
■오 바따이, 부드럽고 우아한 모습의 밝은 와인
오 바따이는 보르도 그랑크뤼 클라세 5등급 와인입니다. 당시엔 바따이였지만 1942년 바따이와 오 바따이 두 개의 와이너리로 쪼개진 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 바따이의 세컨 와인인 '샤또 오 바따이 베르소 2019(Chateau Haut Batailley Verso 2019)'는 보랏빛이 강한 루비색 와인으로 잔에서 올라오는 아로마는 블랙 계열입니다. 뽀이약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특유의 매콤한 향과 산도 좋은 와인에서 나는 독특한 향이 같이 올라옵니다. 잔을 입에 기울이면 블랙 계열 아로마와 부드러운 질감이 먼저 느껴집니다. 질감은 미디엄 풀바디 정도로 너무 무겁지는 않습니다. 엷고 부드러운 타닌과 함께 피니시까지 이어지는 산도는 중상 정도로 와인을 신선하게 만듭니다.
샤또 오 바따이 2019(Chateau Haut Batailley 2019)와 비교해 봅니다. 색깔은 세컨 와인과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거의 같습니다. 잔에서 느껴지는 아로마도 블랙 계열이고 매콤하고 좋은 감칠맛이 기반된 향기가 와인의 성격을 가늠하게 만드는 것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와인을 입에 흘리는 순간 완전히 다른 와인으로 들어옵니다. 굉장히 두껍고 진한 타닌이 입안을 촤악 발라버리며 블랙 계열의 아로마를 더욱 상승시키는 느낌을 줍니다. 산도도 더 좋습니다. 와인이 입안에서 사라지고 나면 블랙 커런트 느낌의 아로마와 스모키한 타닌이 길게 이어지며 피니시를 장식합니다.
샤또 오 바따이 2019는 까베르네 소비뇽 76%, 메를로(Merlot) 24%의 블렌딩이며 오 바따이 베르소 2019는 까베르네 소비뇽 65%, 메를로 35%가 섞인 와인입니다. 장 샤를 까즈는 "2017년 오 바따이를 인수한 후 과거 보다 과실 아로마를 중시하고 밝은 모습의 와인을 추구하고 있다"며 변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름 드 페즈, 생떼에스테프의 만만치 않은 고급 와인
샤또 오름 드 페즈 2011(Chateau Ormes de Pez)은 생떼에스테프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으로 그랑크뤼 클라세가 아닌 크뤼 브루주아(Cru Bourgeois) 와인입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높은 엑셉시오날(Exeptionnel) 등급으로 시장에서는 그랑크뤼 클라세에 준하는 가격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옅은 루비빛 와인으로 잔을 기울여보면 12년이 지난 와인답게 테두리에서 가넷빛이 확연합니다. 아마도 시음 적기를 맞은듯 잔에서 올라오는 블랙 커런트 향과 스파이시 한 민트향이 매력적입니다. 이는 생떼에스테프 와인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와함께 산도가 기반된 잘 익은 과일향이 매혹적입니다. 잔을 입으로 가져가면 블랙 계열의 매혹적인 아로마가 확 들어오는데 산도가 아주 좋습니다. 밀도감이 거의 안느껴질 정도의 가벼운 질감의 와인입니다. 타닌도 있는듯 없는듯 살포시 혀에 내려앉는데 부드럽고 잘게 쪼개져 있으며 와인이 사라질 때쯤에야 존재감을 살짝 드러냅니다.
오름 드 페즈 2011은 점토가 많은 생떼에스테프 와인임에도 의외로 까베르네 소비뇽 비율이 50%로 높습니다. 메를로 41%,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7%, 쁘띠 베르도(Petit Verdot) 2%가 섞였습니다.
■에코 드 린치 바쥐, 그랑뱅 못지않은 모습이지만..
샤또 에코 드 린치 바쥐 2018(Chateau Ecco de Lynch Bage 2018)은 린치 바쥐의 세컨 와인입니다. 불투명한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진한 자줏빛 와인입니다. 그러나 아직 어린 와인이어서 그런지 테두리 조차 변하지 않았습니다. 잔을 코에 가져가면 블랙 커런트 느낌의 진한 과실향이 제일 먼저 반깁니다. 워낙 아로마가 강해서인지 다른 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잔을 스월링해봐도 강렬한 과실 아로마만 휘몰아칩니다.
와인을 입에 살짝 흘려봤습니다. 잔에서 느껴지던 그 폭발적인 블랙 계열의 아로마가 인상적입니다. 타닌도 아주 굵고 거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힘이 좋습니다. 밀도감도 굉장히 뻑뻑합니다. 그런데 산도가 중간 정도로 평소 모습과 좀 다르게 풀이 죽어있습니다. 에코 드 린치 바쥐는 제가 한 달에 두 병 이상 즐길 정도로 좋아하는 와인이어서 잘 아는데 이날 와인은 평소 모습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에코 드 린치 바쥐는 진한 아로마와 강렬한 산도, 입안을 점점 말려버리는 강력한 타닌, 은은하게 이어지는 연유향이 특징적인 와인입니다. 2018 빈티지는 보르도 전체에서 그레이트 빈티지로 꼽히는 와인인데 굉장히 의외의 경험을 했습니다. 에코 드 린치 바쥐 2018은 까베르네 소비뇽 62%, 메를로 36%, 까베르네 프랑 2%의 블렌딩입니다.
■린치 바쥐, 빈티지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 인상적
샤또 린치 바쥐(Chateau Lych Bage)는 까즈 가문을 대표하는 와인으로 이 날 얼굴을 내민 와인은 2014 빈티지와 2015 빈티지입니다. 2014 빈티지는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현지에서는 평균 이상의 좋은 빈티지로 평가받고 있으며, 2015 빈티지는 2000년대 들어 가장 훌륭한 빈티지로 손꼽히는 몇 개의 빈티지 중 하나입니다.
두 와인 모두 검은빛에 더 가까울 정도로 진한 보라색을 띠지만 잔을 기울이면 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2014 빈티지는 테두리 색이 살짝 변해 시음 적기에 진입하고 있지만 2015 빈티지는 테두리 조차 진한 보라색을 유지할 정도로 생생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두 와인은 잔을 코에 가져가는 순간부터 완전히 다른 와인이 됩니다.
2014 빈티지의 경우 아주 진한 블랙 계열의 아로마가 들어오는데 강렬한 햇살에 그을린 모습이 연상되는 바짝 마른 느낌의 아로마입니다. 입에 넣어보면 산도가 아주 자극적으로 들어오는데 이게 다시 높아집니다. 침샘을 자극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눈시울까지 그렁그렁거리게 만들 정도로 치솟습니다. 밀도도 상당히 좋지만 무거운 풀바디의 질감이 아닙니다. 그러나 타닌은 또 굉장히 두껍게 깔립니다. 피니시도 굉장히 길게 가져가는데 마지막에 남는 것은 스모키 한 타닌과 블랙커런트 향, 쨍한 산도입니다. 반전에 반전을 주는 좋은 와인입니다.
2015 빈티지는 완전히 다릅니다. 잔에서 올라오는 향은 블랙 계열의 진한 아로마로 같지만 2014 빈티지보다 살집이 훨씬 좋고 과즙이 주르륵 흐를 것만 같은 느낌을 줍니다. 연유 향도 살짝살짝 스쳐가면서 고급스럽다는 말이 계속 흘러나옵니다. 입에 흘려보면 더욱 다릅니다. 밀도가 뻑뻑할 정도로 높은 풀바디 와인입니다. 산도는 아주 높지만 날카롭지 않게 고급스럽습니다. 시음 적기에 들지 않은 잠재력이 좋은 와인 특유의 모습입니다. 타닌은 의외로 곱고 두껍게 깔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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