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하버마스 스캔들’ 뒷이야기
(시사저널=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아주 흥미로운 책이 나왔다. 이시윤 박사가 쓴 《하버마스 스캔들》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국내 사회과학계를 휩쓸다시피 했던 하버마스 열풍이 왜 누구에 의해 생겨났고 어째서 특정 시점에 쇠퇴해 버렸는가를 치밀하게 추적한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국내에서 하버마스 열풍을 이끈 학자는 당시 서울대 사회학과 한상진, 계명대 철학과 이진우, 한림대 철학과 장춘익이었다. 그리고 변혁을 꿈꾸는 젊은 그룹들과 사회주의 붕괴 이후 새로운 이론적 전망을 갈구하던 신진 연구자들이 이들을 뒷받침했다.
대학원 시절 하버마스에 심취했던 '신진 연구자' 중 한 사람으로서 소감을 남길 의무감을 느낀다. 이시윤 박사는 하버마스 열풍이 불게 된 계기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1980년대에 마르크스에 대한 연구가 금지된 상황에서 '우회로'로서 도입됐다. 또 하나는 1990년대 초반 마르크스주의가 위기에 처하게 되면서 그 대안으로 하버마스가 재부상했다.
돌이켜보면 하버마스라는 이름이 돌풍을 일으키게 된 것은 '프랑크푸르트학파' 신드롬을 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가 그들인데 1980년대에는 단연 마르쿠제였다. 이유는 딱 한 가지, 헤겔과 마르크스의 중간쯤에 위치한 그의 책들이 마르크스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성과 혁명》.
그러고 나서 다음 세대로 이미 독일에서 하버마스가 부상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 무렵 그의 대표작 《인식과 관심》이 국내에도 번역됐다. 그런데 어떤 철학교수가 번역한 이 책은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런 엉터리 번역이 당시에는 오히려 하버마스를 더 신비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사실 이 책이 제대로 정확히 번역되어 그 책 내용이 알려졌다면 그에게 막연한 기대를 가졌던 사람들은 일찍이 실망하고 딴 길을 갔을 것이다. 이 책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학문이었던 '해석학'을 알지 못하고서는 접근이 불가능한 책이다. 특히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이라는 책을 정확히 이해할 때 《인식과 관심》이라는 책은 파악이 가능하다.
하이데거 뒤를 이은 위대한 해석학자 가다머는 진리란 방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의 다양한 접촉과 경험이 축적된 뒤에 파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방법은 독립된 과학성 보장 장치가 아니라는 말이다.
실은 이 또한 아주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그것은 과학과 기술 중에 어느 것이 먼저인가라는 20세기 초 서양철학계 핵심 논쟁에서 나온 것이다. 애초에는 과학이 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이니 과학이 우선이라는 주장이 강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현장에서의 기술 체험이 축적되어야 과학도 발전한다는 주장이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를 철학적으로 정리한 것이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이고 이를 조금 응용해 방법을 인식, 진리를 관심으로 고친 것이 하버마스의 《인식과 관심》이다.
여기에 약간 새로운 점이 있다면 관심(Interesse) 정도인데 그것은 과학이나 방법을 이해관계(Interesse)라는 차원에서 새롭게 풀어냈다. 이게 전부다. 그러니 《인식과 관심》에서 마르크스적 관점이나 세계관을 찾으려는 시도는 마른 우물을 찾아가 물을 먹으려는 시도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엄청난' 오역 덕분에 '하버마스, 하버마스' 외침은 그치지 않았고 1990년대에는 이 박사 지적대로 동구권 몰락 이후 대안의 하나로 불러들였지만 필자는 이미 실패를 예상했다. 이 박사는 1996년 하버마스 방한 이후 갑자기 그의 인기는 쇠퇴했다고 본다. 왜 그랬을까? 난해한 책이 아니라 국내 미디어를 통해 그의 생생한 육성을 들으면서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그를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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