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1월의 이른 아침…순천만 흑두루미가 기지개를 켰다
순천시, 철원∙여수 등 다른 지방정부와 보전 협약
전문가 “개체 절멸 막기 위해 서식 공간 늘려야”
“저기 움직이기 시작하네요. 일찍 깬 녀석입니다.”
지난 12일 아침 7시13분 전남 순천 용산전망대. 순천만습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강나루 순천만 명예습지안내원이 흑두루미 무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갯벌에 모여 한쪽 다리로 선 채 잠들어 있던 흑두루미 중 일찍 일어난 개체들이 다리와 날개를 쭉 펴고 ‘뚜루루’ 울고 있었다. 새벽부터 전망대에 올라 흑두루미가 자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불도 켜지 않고 기다린 끝에 본 광경이다.
어둠이 걷힐수록 흑두루미가 우는 소리도 점점 커져 순천만을 가득 메웠다. 해가 뜨는 시각인 아침 7시30분쯤 되자 흑두루미 수천 마리가 인근 논으로 날아갔다. 이날 순천시는 순천만의 흑두루미를 5117마리로 집계했다. 순천만에서 겨울을 보내는 흑두루미들은 밤에는 포식자로부터 안전한 갯벌에서 자고, 아침이 되면 2㎞ 가까이 날아 먹이를 구하기 쉬운 농경지로 이동한다. 지난 11일 낮 순천만 주변 농경지에는 검은 새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흑두루미는 전 세계 1만80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으로, 대부분 한국과 일본에서 월동한다. 일본 규슈의 이즈미 지역이 세계 최대 월동지고, 한국에서는 3천여 마리가 순천만에서 겨울을 난다. 그런데 올겨울에는 순천만을 찾은 흑두루미가 폭증해 한때 예년의 3배에 달했다. 지난해 11월21일 순천만의 흑두루미는 9841마리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이즈미 지역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해 지난 5일 기준 흑두루미 1294마리가 폐사하는 등 서식환경이 나빠지자 국내로 유입된 것으로 분석한다.
이후 순천만의 흑두루미 수는 증감을 반복했지만 대체로 감소했다. 지난해 11월24일 7168마리, 11월27일 8818마리, 12월3일 7050마리, 12월10일 3544마리, 12월17일 4182마리, 12월26일 4701마리 등이다. 여전히 올겨울 전까지 최대였던 2021년 3451마리보다 많다.
흑두루미 수가 9841마리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한 이유는 일부 개체가 일본으로 돌아갔고, 일부는 광양만·갈사만 등 국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24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환경부 ‘겨울철 조류 동시 총조사(센서스)’를 보면, 이 시기 국내 흑두루미 수는 5373마리로 순천만·여자만 4708마리, 광양만·갈사만 408마리, 고흥호 118마리 등이다. 같은 달 9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조사에 견줘 전체 흑두루미 수는 1364마리 줄고, 순천만·여자만에서는 414마리 감소했지만 광양만·갈사만에서는 123마리 증가했다.
순천만을 찾는 흑두루미가 예년보다 크게 늘자 순천시는 평년보다 한 달 이른 12월부터 흑두루미에게 먹이를 주는 등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순천시는 62㏊의 흑두루미 희망농업단지를 조성해 농민들이 비축한 볍씨를 철새 도래 시기에 맞춰 먹이로 뿌려주고 있다. 농민들에게는 환경부와 순천시가 생태계 서비스 지불제 사업을 통해 보상해준다. 장익상 순천시 순천만보전과장은 “1만 마리 가까운 흑두루미가 순천만에 오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다. 잘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했다”고 털어놨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흑두루미가 서식할 수 있는 곳을 넓히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순천시는 희망농업단지를 109㏊ 확대하고, 전봇대 161개를 뽑겠다는 계획이다. 순천시는 전깃줄에 걸려 죽거나 다치는 흑두루미를 보호하기 위해 2009년 전봇대 282개를 없앤 바 있다. 순천시는 또 강원 철원군, 충남 서산시, 전남 여수시·광양시·고흥군·보성군과 지난 12일 흑두루미 서식지 보전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장 업무협약을 맺었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순천만에서 흑두루미를 수용하는 데 한계에 다다랐다”며 “지자체들과 서로 긴밀하게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최유성 국립생물자원관 국가철새연구센터 연구사는 “올해 순천만처럼 좁은 지역에 많은 개체가 있으면 조류인플루엔자에 취약하다. 조류인플루엔자로 한 지역의 개체들이 절멸하면 종 전체에 큰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흑두루미가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순천/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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