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멸종위기 흑두루미 순천만에…밭 사서 볍씨 뿌리며 '보호작전'

황덕현 기자 2023. 1. 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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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월동 중 AI 창궐로 최대 1만마리 방한…현재는 약 5000마리
먹이 1주일에 8톤씩…출입시 3중 소독·철새지킴이 교대근무 중
11일 오후 전남 순천에서 월동 중인 흑두루미가 순천만 상공을 헤엄치듯 날아가고 있다. ⓒ 뉴스1 황덕현 기자

(순천=뉴스1) 황덕현 기자 = 지난 11일, 낮 기온이 13.8도까지 올라가며 초봄 날씨를 보이던 전남 순천의 한 논밭 위로 월동을 온 철새들이 바글거렸다. 기러기, 재두루미, 가창오리 사이로 검고 가는 다리와 몸통, 희고 긴 목이 특징적인 새가 고고하게 거닐었다.

이 새들은 일순간 집단 비행을 시작했다. 지상 100m까지 순식간에 치솟은 녀석들은 순천만 용산 전망대 앞을 휘돌아 단체 비행을 했다. 미세먼지가 가신 푸른 하늘 위를 나는 모습은 하나의 세련된 군무 같았다. 눈 앞의 평야를 산수화로 바꿔준 이 새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다.

이날 목격된 흑두루미는 약 4000여마리, 이튿날(12일) 새벽에는 일시적으로 순천시 추산 5117마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 흑두루미들은 러시아 시베리아 남부 타이가 습지대와 우수리강, 아무르강, 중국 동북부에 번식하다가 겨울철을 맞아 월동을 왔다.

지난 11일 오후 전남 순천에서 월동 중이던 천연기념물 228호·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흑두루미가 하늘을 날고 있다. ⓒ 뉴스1 황덕현 기자

흑두루미는 사실 쉽게 볼 수 있는 새가 아니다. 전세계 1만6000~1만8000마리만 남아있는 희귀 동물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적색 목록의 취약종으로 분류해 관리 중이다. 우리나라도 천연기념물(문화재청)과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환경부)으로 각각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이날 취재에는 중동의 알자지라 방송, 일본 NHK 방송, 중국 국영통신 중국신문, 프랑스 통신사인 시파(SIPA) 프레스 등이 참여하는 등 국제적인 관심이 쏠렸다.

이처럼 희귀한 흑두루미가 지난해 말 순천만에 갑자기 1만마리 가량(9841마리, 2022년 11월21일) 몰렸다. 전세계에 생존해 있는 개체 중 약 60%에 해당한다.

동아시아 주요 월동지인 일본 이즈미시에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확산하자 급거 순천만으로 '피신'했다는 게 순천시 추정이다. 앞서 일본 이즈미시에서는 AI로 흑두루미 1300마리 가량이 폐사했다. 가족과 동지를 잃은 흑두루미는 남해안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을 건너 순천만으로 '이주'했다.

지난 11일, 전남 순천에 흑두루미들이 다른 철새들과 함께 순천만 인근의 한 밭에서 월동하고 있다. ⓒ 뉴스1 황덕현 기자

이후 흑두루미 3000여마리가 다시 이즈미시로 돌아갔고, 현재는 4000~5000여마리가 순천만과 여자만, 갈사만, 고흥호 등에 흩어져서 월동 중이다. 통상 3500마리 가량이 우리 남해안을 찾던 것에 비해 50% 가량 늘어난 셈이다.

갑작스러운 희귀종의 '방한' 증가에 순천시는 1주일에 8톤씩 먹이를 뿌리며 흑두루미를 '대접'했다. 흑두루미가 몰리자 겨우내 뿌리려던 볍씨는 1월이 되기 전에 금방 동이 났다.

순천시는 향후 우리나라를 찾는 흑두루미가 늘 것으로 보고 준비를 강화 중이다. 흑두루미가 한 곳에 여러 마리 몰리며 AI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 인근의 밭과 비닐하우스를 매입해 7604㎡ 가량 월동지를 늘렸다.

볍씨 살포기를 구비하고, 먹이터를 분산하는 등 밀도 낮추기에 주력했다. 지역 주민이 이 지역에 출입할 때는 입구와 탐방로, 출구에서 3중 소독하도록 하는 등 방역을 강화했다. 입구에 있는 철새지킴이 초소에서는 5명의 직원이 교대근무하며 철새 상황과 비인가 출입을 상시 관리 중이다.

순천시는 앞으로 토지를 추가로 매입해 현재 62ha 가량인 월동지를 171ha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또 해당 지역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에겐 벼 미수확금을 보상하고 경작한 벼는 수확하지 않고 존치해 흑두루미 등 철새 먹이로 쓸 계획이다.

지자체가 이같이 흑두루미 관리에 힘 쓴 결과 올 겨울 우리나라에서 폐사한 흑두루미는 5일 기준 192마리로, 일본(1367마리)의 14%에 불과했다. 아울러 월동 개체 숫자는 국내 첫 월동 발견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지난 11일 오후 전남 순천에서 월동 중이던 기러기떼가 천연기념물 228호·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흑두루미가 앉아있는 하늘 위를 날고 있다. 순천만에는 기러기와 흑두루미 외에도 캐나다두루미, 재두루미 등이 월동 중이다. 2023.1.14 ⓒ 뉴스1 황덕현 기자

앞서 순천시는 지난 1999년 흑두루미가 80마리를 처음 확인했다. 이후 순천시는 월동지 인근의 전봇대 282개를 뽑고 환경저해시설을 철거하는 등 희귀종 보호에 나섰다. 월동지인 순천만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 일대를 생태계 보호지구로 설정했다. 이런 노력의 성과로 최근에는 시내 한복판에서 멸종위기종인 노랑부리저어새가 발견되기도 했다.

순천시는 경남 하동 갈사만과 전남 여수·보성의 여자만, 서산 천수만 등에 분산해 월동하는 국내 유입 흑두루미를 보호·관리하기 위해 전남 여수시·광양시·고흥군·보성군, 강원 철원군(세계 최대 두루미 월동지역), 충남 서산시 등과 '흑두루미 서식지 보전 업무협약'을 맺은 상태다. 여수시와 순천시, 광양시, 고흥군, 보성군 등은 향후 정부에 '남해안 흑두루미 벨트'를 조성해줄 것을 공동 건의할 계획이다.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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