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적자 5조원인데…노동규제에 또 1조 낼 판" 韓 투자 가로막는 파견법

이태성 기자 2023. 1. 1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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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노동 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2.유연성이 일자리 키운다③ 파견근로 가능 업종 확대해야

[편집자주] 노동 시장의 양극화, 잦은 파업 등으로 노사 문제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은지 오래다. 주요 국가들과의 노동 시장 경쟁력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어 더 이상 개혁을 늦춰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윤석열 정부도 3대 개혁 과제 중 노동 분야를 첫 손에 꼽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새해를 맞아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함께 성공적인 노동 개혁을 위한 과제와 방향을 모색한다.

"한국의 비정규직 불법파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전기자동차 설비투자는 어렵다."

스티브 키퍼 제너럴모터스(GM) 수석부사장이 2021년 한국을 방문해 낸 우려의 목소리다. 파견근로에 대한 규정이 해외에 비해 지나치게 까다로운 국내 현실이 이 한마디에 그대로 담겨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겪은 후인 1998년 시행된 파견법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일자리 창출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파견법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제정됐다.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각 기업이 모든 공정과 업무를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매우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기업의 효율성을 제고하려는 목적에서다.

국내 파견법은 경비원·사무지원직 등 32개 업종에만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단순 노무 업무가 많은 제조업의 경우 파견근로 허용 대상에 빠져있다. 제조업에서 생산 단가를 낮추고 유연한 인력 수급 및 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근로자를 파견받는 것은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방식임에도 국내에서는 직접 생산공정에 파견 근로자를 쓸 수 없으며, 2년 이상 근무시 원소속과 관계없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때문에 국내 다수의 제조업체들은 하청업체와 파견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을 체결해 공장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도급계약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현행법상 도급계약에서 하청 근로자는 원청업체로부터 구체적인 지휘 명령을 받을 수 없다. 지휘, 명령을 받을 경우 파견 근로자로 간주된다. 파견법 제2조 1호는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ㆍ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으로 근로자 파견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법원은 원청업체의 지시 여부를 엄격하게 해석했다. 원청의 지시가 조금이라도 있을 경우 파견근로에 해당돼 도급계약을 체결한 것은 불법이라는 논리였다. 기업들은 해당 판결이 나온 이후부터 도급계약마저 활용하기 쉽지 않은 상태가 됐다.

현대차·기아 등 사정이 괜찮은 기업의 경우 하청 근로자들을 직고용했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은 기업의 경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GM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GM은 파견법으로 인해 1700명의 하청 근로자들을 직고용해야 할 위기에 처해있다. 그러나 2014년부터 8년째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누적 적자가 5조원대에 달하는 한국GM은 하청 근로자들을 직고용할 여력이 없다. 제네럴모터스 본사는 2020년 한국GM이 하도급 노동자들을 직고용하게 된다면 당장 약 45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GM은 여기에 더해 5년간 직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발생할 추가 비용이 1조원에 달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해외 주요국가들은 파견근로를 이런 식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미국과 영국·프랑스는 전 업종에서 파견 근로를 허용하고 있고 독일(건설업)과 일본(건설·경비·의료·항만운송)도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한국에 투자하려는 해외 기업들도 파견법이 한국 투자를 발목잡는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21년 전국 50인 이상 외국인투자기업 220개사(외국인 직접투자액(도착기준) 50만불 이상)를 대상으로 '외투기업 규제 인식 및 애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외국인투자 활성화를 위해 개선이 필요한 한국의 규제 분야를 노동 규제로 꼽은 응답이 51.4%로 나타났고, 가장 필요한 노동분야 과제로 파견근로 허용을 응답한 답변자는 23.6%에 달했다.

경영계에서는 기업의 투자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해 파견 허용업무 규제 방식을 해외처럼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고 특히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파견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또 현행 파견법에서 사용주의 지휘의 의미를 엄격히 제한하고 구체화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황용연 경총 노동정책 본부장은 "파견법은 파견근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도입된 것인데 지금은 오히려 기업을 규제하고 처벌하는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다"며 "파견법 본래의 취지를 살려 운영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성 기자 lts32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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