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입이면 충분한 젓갈, 누구나 군침 돌게 하는 풍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2023. 1. 1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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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맛 이야기’] 뜨끈한 흰쌀밥과 차진 궁합, 사계절 덕에 접하는 황송한 맛
대합 같은 조개류는 젓갈의 재료로 사랑받는다.[Gettyimage]
어릴 때는 옆집, 친구집, 엄마친구집 할 것 없이 집집마다 비슷한 때에 김장을 했다. 얼마나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파트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김장철'이라는 걸 꼬마인 우리들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김장을 담그기 전에 엄마를 포함해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꼭 젓갈 이야기가 오갔다. 이웃 중에는 고향에서 보내온 좋은 젓갈을 받는 이들이 있었다. 물론 아빠도 부산에 계신 할머니와 작은아버지를 통해 젓갈을 받았다. 동네 아줌마들은 자기만의 김장을 제대로 완성해줄 젓갈을 찾아 이집 저집 다녔고, 젓갈을 끓이고, 섞고, 거르고, 믹서에 넣고 가는 일을 했다. 똑같이 생긴 대문이 조르르 있던 기다란 아파트 복도에 배추가 쌓이고, 소금 포대가 벽돌 위에 놓이고, 젓갈 냄새가 하루 종일 맴돌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도. 지금도 '밥도둑'

명란젓. [Gettyimage]
엄마는 부산에서 할머니가 보내주신 젓갈을 김장에 쓰지 않았다. 대신 맑은 멸치액젓과 화사하고 연한 분홍빛이 감돌던 잔 새우젓만 가지고 김치를 담갔다. 부산발 젓갈은 겨우내 우리 식구를 살찌우는 반찬으로 매일같이 식탁에 올랐다. 덩어리가 그대로 있는 멸치젓을 곱게 갈아 고추와 마늘을 잘게 다져 넣고, 고춧가루를 조금 뿌려 섞은 다음 끼니마다 반찬으로, 쌈장으로 상에 올리면 오빠와 아빠는 빠짐없이 젓갈 그릇을 싹싹 비웠다.

비린내라면 질색을 하던 엄마가 유난히 즐겨 드시던 젓갈이 있었다. 갈치속젓이다. 흙탕물에 잠긴 늪지대처럼 어두운 갈색에 질감도 얽히고설켜 괴상하게 걸쭉했다. 오징어나 한치, 명란젓만 골라 먹던 내게 갈치속젓의 생김새는 전혀 반갑지 않았다. 엄마와 오붓하게 점심을 먹을 때면 갈치속젓을 꺼내 겨울 배추에 조금씩 얹어 드시며 "한 입만, 한 입만 먹어봐"라며 권했지만 나는 목을 뒤로 빼고 입꼬리를 내리며 피했다. 향은 꽤 구수한데 아무래도 가시가 있고 이물감이 있을 것처럼 생겨서 싫었다.

한참 뒤 스무 살이 넘어서야 갈치속젓 맛을 보았다. 아뿔싸, 이 절묘한 감칠맛 덩어리를 왜 이재야 먹었나 싶은 억울함과 먹기를 더 강요하지 않은 엄마를 원망하고 싶었다. 구수한 냄새가 일품인 갈치속젓은 그 냄새보다 고소한 맛이 몇 배나 진하고, 감칠맛은 끝없이 깊었다. 안타깝게도 다른 젓갈과 비교해 너무나 적은 양만 있기에 간간히, 감질나게 맛볼 수 있는 귀한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김장철부터는 온갖 맛좋은 젓갈이 번갈아가며 밥상에 올랐다. 김장하는 날 맛좋은 생김치를 실컷 먹은 다음 김치가 알맞게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돋는 겨울 식욕을 젓갈이 있어 잘 다독일 수 있었다.

분해, 발효, 숙성의 황금 레시피

어리굴젓. [Gettyimage]
내가 경험한 젓갈 세상은 사실 한 뼘밖에 되지 않는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는 각 지역마다, 집집마다 셀 수 없이 많은 젓갈이 지금도 익어가는 중일 것이다. 걔 중에는 민물에서 사는 것들로 만드는 젓갈도 있으니까. 근처의 작은 시장에만 가도 젓갈 종류가 열 댓가지는 되고, 같은 재료로 만든 젓갈이라도 뭘 넣고 어떻게 얼마나 숙성하고, 양념은 또 무엇을 썼는지에 따라 맛과 색이 저마다 달라진다.

우리가 사계절 흔히 만날 수 있는 젓갈로는 생선으로 만든 것을 꼽을 수 있다. 어류의 알 또는 생식기, 창자, 살집만 발라 담그기도 하고, 뼈와 대가리를 포함하기도 하며, 생선 통째로 젓갈을 담그기도 한다. 새우나 게처럼 껍질이 있는 것은 그대로 담그는 경우가 많다. 손질한 재료에 소금을 듬뿍(약 20%) 넣고 버무려 일정 기간 숙성하면 젓갈이 된다. 숙성의 과정을 보자면 효소와 미생물로 인해 원물이 분해되고 발효되는 것을 거친다.

젓갈의 감칠맛은 주로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생기고, 특유의 점성도 이 과정에서 얻는다. 분해, 발효, 숙성을 거치면서 칼슘 덩어리인 뼈는 거의 부스러지듯 삭고, 껍질은 연해진다. 이렇게 만든 젓갈은 그대로 팔려나가기도 하고, 거르거나 양념하여 반찬처럼 판매되기도 한다. 젓갈은 대체로 뜨끈한 밥과 찰진 궁합을 이루게 되고, 요리할 때 재료나 양념으로 쓰이기도 하며, 다른 재료와 섞여 이를 발효하는 역할도 한다.

차고 넘치는 젓갈의 세계

새우젓. [Gettyimage]
젓갈의 종류는 죄다 읊기 힘들 정도로 많다. 생선으로 담그는 것으로는 갈치젓, 까나리젓, 꽁치젓, 가자미젓, 동태젓, 멸치젓, 민어젓, 밴댕이젓, 조기젓, 자리젓 등이 있다. 딱딱한 껍질을 가진 갑각류 젓도 생각보다 많다. 꽃게를 비롯해 참게, 돌게, 방게 등 다양한 게로 젓을 만들고 여기에 풋젓(봄), 육젓(6월), 차젓(7월), 추젓(8월), 동백젓(9~10월)처럼 계절마다 다른 새우로도 젓을 담근다. 오징어 같은 종류를 꼽자면 낙지, 꼴뚜기, 한치가 있고, 굴 같은 것을 보자면 바지락, 대합, 백합, 소라, 오분자기 등으로 다양하다. 생선을 통째로 쓰지 않고 내장이나 아가미로만 만든 것으로는 명태나 대구의 아가미젓, 전어밤젓, 조기속젓, 창란젓, 갈치속젓, 게웃젓 등이 있다. 명태 알로 만든 명란젓과 같은 맥락으로는 대구알젓, 청어알젓, 게알젓, 성게알젓, 조기알젓 등으로 또 다양하다.

요즘의 젓갈은 대부분 소금으로만 숙성하는데 간간히 간장을 섞기도 하고, 누룩이나 기름, 술, 엿기름, 마늘이나 생강 같은 향신료를 넣고 발효 숙성하여 만들기도 한다. 일례로 소금과 간장을 섞고 마늘, 생강 등을 넣고 숙성하여 만드는 어육장이 있고, 메조로 지은 밥과 엿기름, 고춧가루, 소금을 넣고 삭히는 식해가 있다. 젓갈의 맛은 직접 보기 전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다, 무엇과 비교할 데 없는 독특한 감칠맛이 난다. 재료마다 확연히 다른 수천 개의 감칠맛은 짜디 짠 소금 이불을 덮고 뻐끔뻐끔, 간혹 숨 쉬며 여러 밤, 여러 낮을 묵은 데서 난다. 이 넓지 않은 영토를 바다가 둘러싼 덕과 무더운 사계절이 있는 덕에 맛보는 황송한 맛이다.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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