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입이면 충분한 젓갈, 누구나 군침 돌게 하는 풍미
본격적으로 김장을 담그기 전에 엄마를 포함해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꼭 젓갈 이야기가 오갔다. 이웃 중에는 고향에서 보내온 좋은 젓갈을 받는 이들이 있었다. 물론 아빠도 부산에 계신 할머니와 작은아버지를 통해 젓갈을 받았다. 동네 아줌마들은 자기만의 김장을 제대로 완성해줄 젓갈을 찾아 이집 저집 다녔고, 젓갈을 끓이고, 섞고, 거르고, 믹서에 넣고 가는 일을 했다. 똑같이 생긴 대문이 조르르 있던 기다란 아파트 복도에 배추가 쌓이고, 소금 포대가 벽돌 위에 놓이고, 젓갈 냄새가 하루 종일 맴돌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도. 지금도 '밥도둑'
비린내라면 질색을 하던 엄마가 유난히 즐겨 드시던 젓갈이 있었다. 갈치속젓이다. 흙탕물에 잠긴 늪지대처럼 어두운 갈색에 질감도 얽히고설켜 괴상하게 걸쭉했다. 오징어나 한치, 명란젓만 골라 먹던 내게 갈치속젓의 생김새는 전혀 반갑지 않았다. 엄마와 오붓하게 점심을 먹을 때면 갈치속젓을 꺼내 겨울 배추에 조금씩 얹어 드시며 "한 입만, 한 입만 먹어봐"라며 권했지만 나는 목을 뒤로 빼고 입꼬리를 내리며 피했다. 향은 꽤 구수한데 아무래도 가시가 있고 이물감이 있을 것처럼 생겨서 싫었다.
한참 뒤 스무 살이 넘어서야 갈치속젓 맛을 보았다. 아뿔싸, 이 절묘한 감칠맛 덩어리를 왜 이재야 먹었나 싶은 억울함과 먹기를 더 강요하지 않은 엄마를 원망하고 싶었다. 구수한 냄새가 일품인 갈치속젓은 그 냄새보다 고소한 맛이 몇 배나 진하고, 감칠맛은 끝없이 깊었다. 안타깝게도 다른 젓갈과 비교해 너무나 적은 양만 있기에 간간히, 감질나게 맛볼 수 있는 귀한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김장철부터는 온갖 맛좋은 젓갈이 번갈아가며 밥상에 올랐다. 김장하는 날 맛좋은 생김치를 실컷 먹은 다음 김치가 알맞게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돋는 겨울 식욕을 젓갈이 있어 잘 다독일 수 있었다.
분해, 발효, 숙성의 황금 레시피
우리가 사계절 흔히 만날 수 있는 젓갈로는 생선으로 만든 것을 꼽을 수 있다. 어류의 알 또는 생식기, 창자, 살집만 발라 담그기도 하고, 뼈와 대가리를 포함하기도 하며, 생선 통째로 젓갈을 담그기도 한다. 새우나 게처럼 껍질이 있는 것은 그대로 담그는 경우가 많다. 손질한 재료에 소금을 듬뿍(약 20%) 넣고 버무려 일정 기간 숙성하면 젓갈이 된다. 숙성의 과정을 보자면 효소와 미생물로 인해 원물이 분해되고 발효되는 것을 거친다.
젓갈의 감칠맛은 주로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생기고, 특유의 점성도 이 과정에서 얻는다. 분해, 발효, 숙성을 거치면서 칼슘 덩어리인 뼈는 거의 부스러지듯 삭고, 껍질은 연해진다. 이렇게 만든 젓갈은 그대로 팔려나가기도 하고, 거르거나 양념하여 반찬처럼 판매되기도 한다. 젓갈은 대체로 뜨끈한 밥과 찰진 궁합을 이루게 되고, 요리할 때 재료나 양념으로 쓰이기도 하며, 다른 재료와 섞여 이를 발효하는 역할도 한다.
차고 넘치는 젓갈의 세계
요즘의 젓갈은 대부분 소금으로만 숙성하는데 간간히 간장을 섞기도 하고, 누룩이나 기름, 술, 엿기름, 마늘이나 생강 같은 향신료를 넣고 발효 숙성하여 만들기도 한다. 일례로 소금과 간장을 섞고 마늘, 생강 등을 넣고 숙성하여 만드는 어육장이 있고, 메조로 지은 밥과 엿기름, 고춧가루, 소금을 넣고 삭히는 식해가 있다. 젓갈의 맛은 직접 보기 전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다, 무엇과 비교할 데 없는 독특한 감칠맛이 난다. 재료마다 확연히 다른 수천 개의 감칠맛은 짜디 짠 소금 이불을 덮고 뻐끔뻐끔, 간혹 숨 쉬며 여러 밤, 여러 낮을 묵은 데서 난다. 이 넓지 않은 영토를 바다가 둘러싼 덕과 무더운 사계절이 있는 덕에 맛보는 황송한 맛이다.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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