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어르신에게 '눈이 부신 날' 선물…영정 촬영 봉사계 '어벤져스'
(춘천=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영정 사진을 촬영하는 날 하루만큼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눈이 부신 날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피부 관리부터 메이크업, 헤어 스타일링까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 봉사를 위해 뭉쳤어요."
강원 춘천시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때 빼고 광내는' 날이 매달 돌아온다.
영정사진 촬영 봉사팀 '눈이 부신 날'이 어르신들의 꽃단장을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책임지는 날이다.
깊게 팬 주름과 검버섯 핀 얼굴 위로 전문가의 섬세한 손길이 닿으면 피부에는 윤기가 돌고 순식간에 화사한 메이크업이 완성된다.
장례를 치를 때 사용하는 영정 사진을 찍기 위한 과정이지만, 거울 속에 비친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우울한 감정보단 즐거움과 설렘이 엿보이는 이유다.
"어르신들이 TV에서나 보던 걸 직접 해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하시면서 너무 좋아하세요. 메이크업하고 머리에 힘준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결혼을 앞둔 젊은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고도 하시고요."
현직 피부 관리사 3명을 비롯해 메이크업 전문가 2명, 헤어 미용사 1명으로 구성된 봉사팀은 지난해 9월부터 춘천효자종합사회복지관 등에서 알게 된 80∼90대 어르신 10∼12명을 대상으로 춘천시 한 웨딩업체에서 매달 이 같은 영정사진 촬영 봉사를 하고 있다.
봉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이들의 손을 거친 어르신들이 아직 40여 명에 불과하지만, 꾸준한 활동으로 1년에 100여 명의 영정 사진을 촬영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환복 지원, 동선 안내는 물론 대기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말동무 역할을 해주며 시간을 채워줄 일반인 봉사자 10여 명과 사진 촬영·인화를 담당하는 봉사자 2명도 여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신생 봉사 단체지만 이들의 일사불란한 팀워크만큼은 웬만한 베테랑 봉사자들 못지않게 호흡이 척척 맞는다.
봉사팀 대표인 피부 관리사 권현우(57)씨는 5년 전 갑작스레 생을 마감한 지인의 빈소를 찾았을 때 제대로 된 영정 없이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보고는 영정사진 봉사를 기획했다.
"돌아가신 분이 평소에 사진 한 장을 안 찍던 분이라서 그런지 유가족조차도 영정사진이 없다고 속상해하셨어요. 그 모습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저희 부모님께 영정 사진을 찍자고 했는데, 왜 아직 멀쩡한데 그런 사진을 찍냐며 버럭 화를 내셨죠. 그때부터 어르신들의 기분을 좋게 하면서 영정을 남길 방법을 고민했어요."
권씨는 이때부터 청담동 고급 샵 등에서 일하는 각 분야의 소위 '에이스'들을 모아 분업과 협업이 가능한 영정 사진 봉사계 '어벤져스'를 꾸렸다.
코로나19 탓에 봉사를 실행에 옮기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이들은 지난해 8월 고유번호증을 발급받고 그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 영정을 찍으러 온 어르신들은 어색한 듯 뻣뻣하게 앉아 있다가도 봉사자들의 농담 몇 마디에 금세 긴장을 풀고 당신들 삶의 궤적을 담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곤 한다.
어르신들의 헤어 스타일링을 맡은 김은숙(47)씨는 "이곳에 방문하는 어르신들은 살아있는 역사책과도 같다"며 "머리를 매만져 드리는 과정에서 본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해주시곤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봉사자들이 웃기도, 울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12월에는 피부암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르신이 이런저런 수다 끝에 '앞으로 더 볼 수는 없겠지만, 행복하게 잘 지내라'는 인사를 했다"며 "유독 그분의 그 한마디는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죽음을 맞이한 순간에 사용할 영정을 찍는 공간에서 삶을 뒤돌아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그 순간에는 아이러니하게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데, 그 오묘함이 봉사자들에게는 감동으로 닿는 셈이다.
지난해 40여 명의 어르신에게 눈이 부신 날을 선사한 이들 봉사팀은 새해에도 춘천 곳곳에 있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봉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권씨는 "어르신들처럼 복지관에 가는 그날까지 봉사를 이어가고 싶다"며 "최근에는 봉사 규모를 키우고 싶어서 팀원들과 여러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taet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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