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애 “표의 비례성 보장, 민주당 내부에서 치열하게 싸워야”
[주간경향] “우리는 ‘험지 배려’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한 자리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피눈물로 싸워온 지지를, 제도로써 보장받는 선거제도의 개혁을 원합니다.” 임미애 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은 지난해 8월 6일 열린 민주당 경북도당 정기대의원대회 도당위원장 출마 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경상북도에서 25.4%의 득표율을 얻었지만, 의석수는 0석이었다. 득표율대로라면 총 13석의 의석 중 3석이 민주당의 몫이어야 하지만 현행 선거제도에서는 표의 비례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 검토’를 제안하면서 선거제 개혁이 정치권 의제로 떠올랐다. 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단순 중대선거구제는 이미 실패한 제도”라고 말했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서는 대선거구제를 도입하되 ‘득표만큼 의석수’를 가져갈 수 있는 비례대표제와 연동된 선거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을 향해서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중대선거구제의 문제점만을 언급하며 선거제 개혁 논의를 소화기로 불 끄듯이 확 꺼버렸다”라고 비판했다. 임 위원장은 “선거제 개혁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치열하게 싸워도 될까 말까 한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라며 “민주당 내에서 먼저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선거제 개혁을 전면에 내세우며 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에 당선됐다. 출마 연설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경북 민주당의 싸움을 시작하고자 한다’라며 ‘피눈물로 싸워온 지지를 제도로써 보장받는 선거제도의 개혁을 원한다’라고 했다.
“당시 출마 연설은 제 마음을 그대로 담은 것이었다. 선거제 개혁은 대구·경북 지역의 민주당 정치인들에게는 굉장히 절박한 문제다. 이 절박함을 단순히 경북지역에서 의석을 하나 얻기 위한 절박함이라고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선거를 앞두고 ‘지역주의가 어느 정도 허물어졌다고 보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하다. 지역주의를 허물고자 하는 유권자들의 의지는 굉장히 강하다. 이제 민주당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평균 27% 정도의 득표율을 보인다. 당선 가능성이 없음을 알면서도 그 정도의 표를 준다는 것은 ‘지역주의를 깨자’라는 유권자들의 의지 표현이다.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유권자들의 의지를 제도로 어떻게 구현할지 답을 내놔야 하는 시점이다.”
-선거제 개혁에 대해 ‘싸움’이라고 했다. 누구와의 싸움인가.
“민주당 내에서 치열한 싸움을 먼저 해야 한다. 선거제 개혁이 논의될 때마다 지역은 번번이 이용만 당해왔다는 걸 오랜 시간 지켜봐 잘 알고 있다. 선거제 개혁이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치열하게 싸워야만 될까 말까 한 일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전당대회 때마다 당 지도부에 출마하는 사람들은 선거제도를 바꾸겠다고 한다. 혹은 당선 가능한 비례대표 순번에 대구·경북 몫의 의석을 배정해주겠다고도 한다. 한때는 우리도 그렇게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비례대표 의석수 한 석을 얻는다고 해서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점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대구 출신, 경북 출신 의원들이 비례대표로 당선이 된 경우는 꽤 많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지역에서 다시 출마하지 않았다. 홍의락 전 의원이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김현권 전 의원이 구미에서 출마한 게 전부다. 선거제 개혁과 관련해 시·도당이 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가 민주당 내에 소수이고 힘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경북에서 6.79%의 지지율을 얻었다. 이를 평균 27%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던 건 우리가 떨어질 줄 알면서도 지역에서 밭을 갈고 선거 때마다 후보를 내왔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검토를 제안했다.
“인터뷰를 보고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한편으로는 윤 대통령의 발언으로 선거제 개혁 논의가 촉발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필 윤 대통령이 선거제 개혁 의제를 던지다 보니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대통령의 의도만 추측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선거제 개혁의 명분은 희석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였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이 다음 총선에 유리한 방향으로 선거제를 개혁하려 한다는 추측이 나온다.
“대통령의 의도가 있건 없건 간에, 그 의도와는 관계없이 우리가 해야 할 개혁의 과제가 있다면 우리 계획대로 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제안한 제도는 비례대표제와 연결되지 않는 단순 중대선거구제로 우려되는 바가 많은 제도다. 하나의 선거구에서 1·2·3등을 뽑는 방식은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실패했다. 실패한 제도를 그대로 따라서 설계하면 안 되는 건 당연하다.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비판에 그치지 않고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거제도가 무엇인지 논의해보자고 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직후 민주당에서는 중대선거구제의 문제점만 이야기하면서 선거제 개혁 논의를 소화기로 불 끄듯이 확 꺼버렸다는 느낌을 받는다.”
-민주당은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서 ‘선거법 개정을 포함한 제도적 정치개혁을 2023년 4월 중 마무리 짓겠다’라는 내용이 담긴 결의안을 93.7%의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그후 몇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선거제 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민주당 지지층은 지금의 선거제도가 유지된다면 윤석열 정부의 실정으로 2024년 총선도 2020년 총선처럼 수도권에서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굳이 영남에서 몇 석을 건지자고 수도권에서 다수 의석을 잃어버리는 일이 생기면 안 된다면서 말이다. 지금의 제도를 유지해 수도권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얻는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게 당 지도부, 민주당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2020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절대다수의 의석을 밀어준 이유는 이 의석을 갖고 정치개혁을 하라는 것이었다. 민주당이 유권자들이 준 정치개혁 과제를 충분히 완수하면 다음 치러지는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이를 평가할 것이다. 지금 지도부가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은 2020년에 부여된 정치개혁의 숙제를 완수하는 일이다. 정치개혁 목표를 이루라고 그 많은 의석을 줬는데 이걸 해내지도 못한 상태에서 2024년 총선에서 또 표를 달라고? 과연 유권자들이 제대로 평가하고 표를 줄까? 그렇게 보지 않는다.”
-어떤 방향으로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할까.
“무엇보다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서울·수도권의 정치인들은 다당제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양당제라도 해보고 싶다. 다당제는커녕 양당제도 못 하는 영·호남에서는 서울·수도권 정치인들의 다당제 논의가 참 공허하게 들린다.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지방소멸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지방소멸과 현행 소선거구제는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지방은 정치가 없다. 정치가 있으려면 여야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의 당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지역 의제가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 지역 의제가 만들어지지 않으니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가 국가 차원의 의제로 설정되지 못한다. 지역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도 지역을 모른다. 지방선거 혹은 총선을 앞두고 후보자를 어떻게 찾는 줄 아나? 해당 지역 출신 고위공직자 중 퇴직을 앞둔 사람의 리스트를 뽑는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내려와 출마하고 당선된다. 이들이 지방소멸 문제를 얼마나 알까. 소선거구제로 지방의 정치가 사라지고 지방의 정치가 사라지면서 지방의제가 실종되고 지방의제가 실종되니까 지방은 그 넓은 땅덩어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여의도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기껏해야 입막음용으로 다리 하나 놔주고 도로 하나 놔주는 식이다. 한국 정치에서 지방은 돈 몇 푼에 입 다무는 존재밖에 안 된다. 또 기재부 입장에서 지방은 천덕꾸러기다. 도로 하나를 닦으려고 해도 인구가 얼마 없기 때문에 번번이 예비타당성조사도 통과하기 어렵다. 누가 지방을 천덕꾸러기로 만들었나. 정치인과 제도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선거제도를 마련해야 지방소멸 해법도 찾을 수 있다.”
-대선거구제로 가야 하나.
“현행 소선거구제하에서는 국회의원이 자치단체장인지 지방의원인지 구별이 안 된다. 예컨대 국회의원 이름으로 ‘탁구장 설치 특별교부세 10억 배정’ 같은 현수막이 걸린다. 그 역할은 자치단체장, 지방의원이 충분히 할 수 있다. 현행 소선거구제에서는 국회의원이 해야 하는 일, 지방의원들이 해야 하는 일, 단체장이 해야 하는 일이 뒤섞인다. 국가의 미래를 놓고 논의하고 정책을 만들어야 할 국회의원들이 골목 정치를 하고 있다. 전체를 놓고 봐야 하는 문제를 자기 지역구 중심으로만 보고 서로 싸운다. 예컨대 경북에 산림박물관을 지어야 한다. 경북 전체를 놓고 보면 이걸 어디에 설치해야 하는지 도민들은 다 안다. 그런데 지역구 국회의원의 다툼 속에서 전혀 뜻밖의 장소에 세워진다. 10~12개 시·군을 하나의 선거구로 묶고 각 선거구에서 5명 이상씩 뽑는다면 지역이기주의, 소지역 분할주의에서 벗어나 서로 협력할 수 있다. 또 대선거구제로 가게 되면 한 선거구 안에서 뽑는 인원이 많아져 국회 구성도 다양해진다. 지금처럼 50대·서울대 출신·남성으로만 공천할 리가 없다. 자연스럽게 청년도 들어가고 소상공인도 들어가게 된다. 여성도 들어가게 될 것이다. 당이 포트폴리오 진용을 짜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정당은 다양한 목소리를 더 빨리, 더 많이 흡수하게 될 것이다.”
-도당위원장 당선 직후, 시·도당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활발히 활동 중이다. 경북도당 정개특위에서 지지하는 선거제도가 있나.
“민주당 경북도당에서 지역 정개특위를 처음으로 구성했다. 현재 영남권 5개 민주당 시·도당에도 정개특위가 구성돼 있다. 지역위원장, 상설위원장, 당원들을 대상으로 선거제와 관련된 토론회, 세미나를 열어 선거제도에 관해 공부하고 있다. 웬만한 국회의원보다 경북의 민주당 당원들이 선거제도와 관련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북도당은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첫 번째가 ‘소선거구제 아웃’이다. 사표의 과다 발생, 지역주의, 정치의 양극화 등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점들이 소선거구제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선거구제 아웃’은 윤 대통령이 말하는 단순 중대선거구제와는 다르다. 그런데도 대통령 인터뷰 이후 민주당 내에서 중대선거구제를 바라보는 눈이 긍정적이지 않다. 이와 구별하기 위해 두 번째로 우리가 모은 의견은 ‘득표만큼 의석수’다. 정당 득표율이 10% 나오면 그만큼의 의석수를 얻어야 한다. ‘소선거구제 아웃’ ‘득표만큼 의석수’를 반영한 선거제도를 지지한다. 현재 발의된 선거법 개정안 중에는 박주민 의원안이 우리의 생각에 가장 부합한다(박주민 의원안은 전국을 대선거구로 나누고 권역마다 6~11인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방안이다. 개방형 비례대표제로 정당 득표율대로 의석수를 배분하고 지금처럼 유권자가 후보도 직접 선출한다). 박주민 의원은 법안을 준비하면서 우리와 계속 논의했다. 우리의 의지가 담긴 법안이기도 하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3월까지 선거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2월 중에 민주당 정치혁신위원회에서 선거제 개혁안을 만들고 이를 당론으로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제 개혁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고 당 지도부에게 우리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할 것이다. 국민과의 소통은 ‘득표만큼 의석수’, ‘이래가 몬산다. 정치 바꿔보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지역 차원에서 국민에게 홍보전을 할 생각이다. 당 지도부에는 2월 당론 확정을 앞두고 우리의 의지를 확고하게 전달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행동을 할 계획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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